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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세기의 회담 이렇게 무산되나"…북·미 정상회담 제안부터 취소까지 77일

[리포트+] "세기의 회담 이렇게 무산되나"…북·미 정상회담 제안부터 취소까지 77일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큰 진전을 이뤄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발표로 전격 취소됐습니다. 며칠 전부터 '연기론'이 솔솔 피어 나오긴 했지만 회담 취소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회담 성사를 위해 중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우리 정부도 곤혹스러워하며 '불씨'를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입니다. 북미정상회담의 시작부터 취소까지 77일 동안의 지난 과정을 '리포트+'에서 준비했습니다.

■ 평창에서 싹 틔운 북미정상회담…문 대통령 팔 걷고 나서다

북한과 미국의 고위급 인사가 처음 맞닥뜨린 건 지난 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었습니다. 개회식에는 트럼프 정부의 2인자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참석했고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부부장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냉랭했습니다.

폐회식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은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보고 인사나 악수를 건네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분위기를 깨려 노력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폐회식 당일 김영철 부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을 만나 "한반도 문제의 본질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북미 대화가 조속히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는 당시 문 대통령이 한반도의 비핵화 필요성을 직접 거론하며 북측 대표단을 설득했다고 전했습니다. 핵 문제는 남북 간 논의 대상이 아니라며 반발해온 것과 달리 김영철 부위원장은 진지하게 경청했습니다.

북측이 북미 대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내자 우리 정부는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 특사단은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이 끝난 지 열흘 만인 3월 5일 북한으로 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3월 8일 특사단은 미국 워싱턴으로 향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안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말했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직접 기자회견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파격적인 제안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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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덩달아 바빠진 김정은 위원장…폼페이오 전격 방북

북미 대화를 향한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자 북한도 바빠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 25일 전용열차 편으로 극비리에 방중해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집권 후 첫 외국 방문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으로 돌아온 직후인 3월 31일 극비리에 방북한 당시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마이크 폼페이오 국장을 만났습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후 폼페이오는 "북한이 긴장 완화와 관련해 한국에 한 약속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만남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폼페이오가 워싱턴으로 돌아온 지 8일 뒤인 4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 회의에서 "북한과 5월 또는 6월 초에 만날 것"이라며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이뤄질 것을 공개적으로 발표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만나는 세기의 회담이 성사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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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에 봄이 오는가"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억류 미국인 석방

한반도에 불기 시작한 훈풍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절정에 달합니다. 4월 27일 판문점에서는 역사에 남을 남북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남북 정상이 도보다리에서 30분 넘게 긴밀한 대화를 하는 장면이 세계에 생중계됐습니다.

판문점 선언을 마친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에는 중국 랴오닝성 다롄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1박 2일 동안 회담을 가진 김정은 위원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남북정상회담의 경과를 전하고 북미정상회담에서 진행될 여러 논의를 미리 나눈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으로 달려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트럼프 정부는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5월 9일 폼페이오 장관이 다시 평양을 찾으면서 해소됐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을 마친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3명까지 데리고 워싱턴으로 돌아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새벽에 공항까지 나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치하했습니다. 그리고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고 발표하며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의 장소와 날짜를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화답도 빨랐습니다. 5월 12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겠다고 발표하며 세기의 만남에 박자를 맞췄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이런 빠른 조치에 "매우 똑똑하고 정중한 몸짓(very smart and gracious gesture)'이라고 극찬하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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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턴부터 최선희까지'…급변한 북미 기류 그리고 회담 취소

분홍빛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변했습니다. 존 볼턴 미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강경 발언이 시작이었습니다. 볼턴 보좌관은 북한이 폐기한 핵 물질을 미국으로 가져와야 한다며 포문을 열었습니다. 과거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가 제거된 뒤 체제 전환을 이룬 이른바 '리비아 모델'을 상기시키는 발언이었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21일 미 폭스뉴스와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 핵폐기, 후 보상'이라는 사실상 '리비아 모델'을 다시 언급했습니다.

북측은 "무지몽매한 소리"라며 반발했습니다.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문제 삼아 예정된 남북고위급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신경전에 트럼프 대통령도 돌아섰습니다. 지난 19일 '북한에 리비아 모델 적용하지 않겠다'며 한 발 빠지는가 싶었던 트럼프 대통령도 '조건에 맞지 않으면 북미정상회담 안 할 수 있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북한은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받아쳤습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24일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있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리비아식 결말을 경고한 펜스 부통령에게는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라며 조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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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 발언에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늘(25일) 아침까지 펜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대응책을 논의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를 결정한 뒤 김 위원장에 대한 편지 문구를 하나하나 직접 불러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취소는 평소 즐기던 트위터가 아닌 공식 서한을 통해 발표됐습니다. 한국 특사단을 통해 북한의 대화 요청을 받아들인 지 77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디자인 : 전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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