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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여성 자기결정권 vs 태아 생명권…다시 심판대 오른 낙태죄, 헌재의 판단은?

[리포트+] 여성 자기결정권 vs 태아 생명권…다시 심판대 오른 낙태죄, 헌재의 판단은?
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판단하기 위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공개변론이 6년 반 만에 오늘(24일) 다시 열렸습니다. 공개변론에서는 태아에게 생명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낙태를 처벌하는 것이 여성의 신체 자유를 침해하는지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11년 11월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두고 첫 공개변론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어 이듬해 8월 헌재는 '낙태죄에 대해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낙태가 만연하게 될 것에 대한 우려' 등을 이유로 합헌결정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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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락된 것 같았던 낙태죄 위헌 여부가 최근 다시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2013년 낙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A씨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지만 거부당하자, 지난해 2월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낸 것입니다. 6년여 만에 헌재가 다시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낙태죄, 헌재는 과연 이번에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 '낙태한 임산부'도 '낙태 시술한 의료인'도 처벌받는 현행법

현행 형법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이 약물 등으로 낙태를 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습니다. 또 임신 중절 수술을 하거나 낙태 관련 약을 처방한 의료인 역시 2년 이하의 징역을 받게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낙태가 불법행위인 만큼 자연유산 유도약도 수입 및 판매가 금지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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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조산원을 운영하던 송 모 씨는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며 낙태시켜 달라는 김 모 씨의 부탁을 받고 낙태 시술을 했습니다. 이후 송 씨는 김 씨의 애인 박 모 씨로부터 고소당해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송 씨는 형법 제270조 1항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하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는데 기각되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 4 대 4 찬반양론 팽팽…2012년 낙태 처벌 '합헌' 결정 난 이유는?

공개변론 이후 약 9개월 만에 헌재의 결론이 나왔습니다. 당시 헌재는 낙태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도록 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당시 1명이 공석인 상태에서 8명의 헌재 재판관 중 4(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합헌결정이 나온 겁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태아가 비록 생명 유지를 위해 모(母)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헌재는 낙태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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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강국, 이동흡, 목영준, 송두환 재판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전면적,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불법 낙태로 임부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험이 초래되는 사례가 빈발하는 현실에 비춰보면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낙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대립 넘어 사회적 논의 필요하다"…청와대 청원 올라온 낙태죄 논란

헌재의 합헌 결정 이후에도 낙태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지난해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낙태죄 폐지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이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지지를 받았고 지난해 11월 26일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은 낙태 처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조 수석은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임신중절이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며 "2010년 자료에 따르면 추정 낙태 건수는 16만 9천여 건이지만 의료기관에서 행해진 합법적 인공 임신중절 시술은 1만 8백여 건으로 합법에 의한 영역은 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낙태를 줄이려는 입법 목적과 달리 불법 임신중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을 꼬집은 겁니다.

이어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며 낙태에 대한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임신중절 음성화'와 '불법 시술', '해외 원정 시술', '위험 시술'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조 수석은 강조했습니다. 또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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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관 9명 중 6명 "낙태죄 손질 필요"…6년 전과 다른 결정 나올까?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인가, 태아의 생명권이 먼저인가를 두고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팽팽히 맞서는 상황입니다. 오늘 공개변론이 진행된 헌재 앞에는 낙태죄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이 각각 열렸습니다.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측은 "여성은 자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폐지에 반대하는 측은 "헌법 정신은 모든 생명의 보호"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해 헌재가 지난 2012년과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현재 9명 헌재 재판관 가운데 이진성 헌재소장을 비롯한 6명은 낙태죄 손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헌재소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낙태죄 처벌조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공식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헌재는 오늘 공개변론을 마친 뒤 평의를 거쳐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릴 예정입니다. 이 헌재소장 등 5명의 재판관이 오는 9월 한꺼번에 퇴임하는 만큼 그 이전에 결론을 낼 것으로 전망됩니다.

(기획·구성: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전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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