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다시 뜨겁게!] 36년 만에 쓴 기적의 드라마! 본선에서도 쓸 수 있을까?

러시아 월드컵 참가국 분석 : C조 페루

[취재파일-다시 뜨겁게!] 36년 만에 쓴 기적의 드라마! 본선에서도 쓸 수 있을까?
▲ 월드컵 진출을 확정한 뒤 열광하는 페루 국민들

2017년 11월 15일(현지 시간) 페루는 말 그대로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지진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지진 감지 애플리케이션 경보까지 울렸습니다.

이날은 페루가 36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날입니다. 수도 리마에서 열린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페루가 뉴질랜드를 꺾고 러시아행 마지막 티켓을 따내자 온 국민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지진 감지계가 이를 지진으로 착각한 겁니다. 열광에 빠진 국민들을 위해 페루 정부는 다음 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축제를 이어갔습니다. 페루는 러시아를 찾는 32개국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짜릿한 드라마를 쓰며 가장 마지막에 합류했습니다.

● 힘겨운 남미 예선
C조 편성
10개국 가운데 4.5개국이 본선 티켓을 얻는 남미 예선은 거의 절반에 달하는 팀이 본선에 오르는, 수치상으로는 확률이 가장 높은 대륙별 예선이지만, 역설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획득하기 가장 어려운 예선이기도 합니다. 1930년 1회 대회부터 단 한 번도 본선행을 놓치지 않는 브라질을 비롯해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 등 세계적인 강자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어 다른 나라들에게는 남미 예선 통과가 본선보다 더욱 힘든 게 현실입니다. 1982년 이후 한 번도 남미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페루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 예선도 힘겹게 시작했습니다. 첫 경기인 콜롬비아 원정에서 2대 0으로 진 것을 시작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밥 먹듯이 패했습니다. 초반 6경기에서 1승 1무 4패로 부진에 빠진 페루는 볼리비아와 7차전(2016년 9월 1일)에서도 2대 0으로 져 러시아행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 'Lucky Seven' 반전의 7차전

하지만, 이 7차전이 행운의 열쇠가 됐습니다. 국제축구연맹 FIFA가 ‘이 경기에서 볼리비아가 부적격 선수(이전에 파라과이 대표로 뛰었던 넬슨 카브레라)를 투입했다’며 볼리비아의 몰수패를 선언해, 페루의 패배는 갑자기 3대 0 승리로 바뀌었습니다. FIFA가 행운의 승리를 안겨준 뒤 페루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파라과이 원정(2016년 11월 10일)에서 4대 1 대승을 거뒀고, 2017년 들어서는 패배를 몰랐습니다. 모든 팀들이 힘겨워하는 베네수엘라 고지대 원정을 2대 2로 비긴 뒤 우루과이와 볼리비아, 에콰도르를 상대로 3연승을 질주했습니다. 마지막 원정 경기인 아르헨티나전도 무승부를 거두자 8~9위를 맴돌던 페루의 순위는 어느덧 5위까지 올라왔습니다.
 
▲ 페루에 플레이오프행 티켓을 안겨준 게레로의 '간접(?)' 프리킥

그리고 남미 예선 마지막 경기인 콜롬비아와 홈 18차전에서 또 한 번의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페루는 콜롬비아 로드리게스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1대 0으로 끌려가던 후반 23분 페널티 지역 바깥 오른쪽 지역에서 프리킥 기회를 잡았습니다. 직접 프리킥이 아닌 간접 프리킥을 얻었는데, 여기서 프리키커로 나선 페루의 주장 파올로 게레로가 아무 생각 없이 직접 슈팅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오른발 슈팅이 콜롬비아 골키퍼 오스피나의 손을 스쳐 골문 구석을 찌르자 심판은 득점을 인정했습니다.

간접 프리킥이었기 때문에 슈팅이 그대로 성공하면 득점이 인정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오스피나 골키퍼의 손끝을 맞았기 때문에 골이 인정된 겁니다. 이 행운의 골로 1대 1 무승부를 거둔 페루는 승점 1점을 추가했고, 승점이 같아진 칠레와 골득실에서 앞서며 대륙간 플레이 오프행 티켓이 주어지는 5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7차전의 2대 0 패배가 3대 0 승리로 변하면서 승점 추가는 물론 골득실에서 +5의 효과를 본 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뉴질랜드와 홈 앤드 어웨이로 치른 마지막 승부에서 1승 1무를 기록한 페루는 세계 최고의 축구 축제에 참가하는 마지막 주인공이 됐습니다. 

● 게레로에 웃다 울고…
게레로와 더불어 페루 대표팀의 정신적인 지주인 파르판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며 남미 예선에서 5골을 넣은 에디손 플로레스와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인 제페르손 파르판 등 많은 선수들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힘을 보탰지만, 가장 큰 공헌을 한 선수는 역시 파올로 게레로였습니다. 남미 최고 공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게레로는 플로레스와 함께 팀내 최다인 5골을 기록했고, 오스피나 골키퍼의 자책골을 이끈 콜롬비아전 운명의 슈팅도 날렸습니다. 하지만 게레로는 남미 예선이 끝난 후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서 코카인 성분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되고 말았습니다.

12개월 자격 정지를 받아 월드컵 본선 출전이 불가능해진 게레로는 그가 마신 차의 주전자에 자신도 모르게 소량의 성분이 묻어있었던 것 같다며 고의성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워낙 미세한 양이 검출된 만큼 FIFA도 이를 받아 들여 징계 기간을 6개월로 경감해 줬습니다. 그리고 이달 초 6개월의 징계 기간이 끝난 게레로는 소속팀 브라질 플라멩고의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고, 이 경기는 페루 전역에 생방송될 정도로 온 국민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게레로는 지난 14일 발표한 25인의 러시아 월드컵 예비명단에도 포함돼 생애 첫 본선 무대의 꿈을 눈앞에 뒀는데, 막판에 세계 반도핑 기구 WADA의 벽에 막혀 다시 꿈이 좌절됐습니다. WADA는 게레로의 징계 기간을 경감한 FIFA의 결정이 잘못됐다며 스포츠중재재판소 CAS에 제소했고, CAS는 공식 발표를 통해 WADA의 제소를 받아들였습니다. 게레로가 의도적으로 코카인 성분을 복용한 건 아니지만, 그가 마신 차에 금지된 물질이 함유돼 있었으며 이는 일정 부분 선수의 과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개막을 한 달 앞두고 단 며칠 사이에 몇 번이나 희비가 엇갈린 끝에 페루는 결국 에이스 없이 본선 무대에 나서게 됐습니다. 페루 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32골)을 자랑하는 게레로가 빠진 상황에서 페루가 다시 한번 남미 예선처럼 드라마 같은 반전을 쓸 수 있을 지 궁금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