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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올라갈 때의 그 길은 길도 아니었구나! - 파주 감악산 둘레길 ③

[라이프] 올라갈 때의 그 길은 길도 아니었구나! - 파주 감악산 둘레길 ③
▲ 불꽃같은, 화사한 꽃 같은 삶을 꿈꾸지만, 언제나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삶이 가지는 속성이다.
 
#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아! 정말... 그랬더라면...”
 
말기암 환자들이 남기고 간 그들의 마지막 목소리를 기록한 책,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의 한 구절이다. 저자인 브로니 웨어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간병인으로 일하며 생의 마지막에 털어놓는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생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다름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라는 어떤 의미에서의 후회였다고 말한다.
 
왜 그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쉬움과 후회라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들은, 또 우리는 ‘내가 원하는 삶’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또 어쩌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았더라도 그 원하는 삶을 살아갈 용기가 부족해서 빚어진 일인지도 모른다. 또는 성공과 부(富)라는 막연한 환상에 기대어 무지개를 쫒던 소년처럼 뒤늦은 회한에 휩싸인 그런 경우였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내’가 빠져버린 채로, 세상이 원하는 질서와 요구라는 큰 물결에 저항 한 번 못해본 채로 떠밀려온 결과가 마지막 순간에는 후회로 귀결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설사 가는 길이 바윗길일지라도 사람들은 그 길 위에서 꿈을 꾼다.
사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마음먹은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용기만 있었더라도, 막연한 욕심 하나만 줄였더라도, 또 스스로를 계발하는데 조금만 더 시간을 쏟았더라도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웠을지도 모르고, 후회의 정도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글을 열었을 것인데, 몇 줄 써놓고 보니 모르는 것 천지다. 또 어쩌면 산다는 것이, 그 삶이란 이름의 무엇에는 정답이란 것이 없기에, 쉽사리 어떤 정의를 내리는 것도, 답이라고 제시하는 것도 언감생심 난망한 일인지라,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다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분명한데, 가는 방법은 각인각색 수천만 갈래의 길이 있는지라, 각 개인은 그 길을 찾아 꿋꿋이 걸어가야 할 용기와 체력, 혹여 동행이 있다면 동행인에 대한 사랑과 배려만큼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싶다.
 
나 역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지라, 생각이라는 것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우리는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사유와 성찰이라는 근사한 표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내 삶에 대해서...
 
이쯤에서 구호 한 번 외치고 가자!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후회 없는~ 삶을~ 살자! 하더라도~ 조금만~ 후회하면서~ 살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내가 원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글쎄~ 지금은 산을 오르는 것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어여~ 가자! 얼마 남지 않은 길이건만, 길은 마지막 힘까지도 짜내라고 재촉을 한다. 아니 길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인지도 모르겠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는 것이 산이라는 옛 선인의 말씀을 되뇌이며 힘을 내 본다. 그까이꺼~ 그래봤자 하늘 아래 뫼가 아니던가.
현호색이란 이름은 씨앗이 검다는 의미와 척박한 땅이라도 어디서건 잘 자란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호색이란 이름은 씨앗이 검다는 의미와 척박한 땅이라도 어디서건 잘 자란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 드디어, 정상
 
아, 그 와중에 현호색(玄胡索)이 아는 체를 한다. 무리지어 손을 흔들고 있던 지라, 비록 내 가야 할 길이 멀고 험하고 또 몸이 힘들더라도, 남북정상회담 가던 대통령이 차를 세워 환송객을 모른 척 하지 않았듯이, 나도 걸음을 멈추고 그들과 눈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현호색이란 이름은 씨앗이 검다는 의미와 척박한 땅이라도 어디서건 잘 자란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서양 사람들은 현호색의 꽃 모양이 마치 종달새 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속명을 그리스어로 종달새를 뜻하는 코리달리스(Corydalis)로 부른다고 한다. 이름을 짓는 방법에서도 동양 문화권은 내면적 통찰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고의 결과인 반면, 서양은 시각적인 외모에 치중한다는 느낌을, 문득 받는다.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감악산 정상을 나타내는 비(碑)
꾸역꾸역 올랐다. 드디어 감악산 정상(675m)이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럼에도 히말라야 산맥의 중봉(中峰) 정도는 올라온 느낌이다.^^
 
기대와 다르지 않게(?) 정상은 휑뎅그렁한 헬기장이다. 정상에 서면 임진강을 넘어 개성의 송악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했거늘, 아쉽게도 날로 사나워지는 미세먼지 탓에 어슴푸레하게나마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저 방향에 개성이 있겠거니 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남북정상회담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이제는 북녘 땅이 미지의 땅이 아닌, 현실의 땅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비록 미세먼지의 공습으로 임진강과 그 너머에까지 이어지는 우리(?) 땅과의 감격적인 해후를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지만, 어쩌면 머지않아 내 발로 다시 북녘 땅을 밟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내가 밟았던 북녘 땅은 매번 가슴을 뛰게도, 뭉클하게도 했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정상 부근에서 만난 꽃무더기
# 하산 하는 길
 
올라와 보면 별 것도 아니었던 것을, 사람들은 거기가 어디든 정상을 향해 줄달음질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난다. 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헛헛한 것을...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어차피 산봉우리 중 하나인 장군봉과 임꺽정봉과 감악산 정상은 어떻게 다를까? 나는 왜 기어이 감악산 정상을 올라갔던가? 조금이라도 더 높아서? 정상을 밟아야 이야깃거리가 되니까? 자기만족? 이유는... 그냥 더 걷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해 두자.^^ 어쩌면 내가 알지 못하는 (높은 곳을 지향하는)학습된 관성이 나에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법륜사로 가는 길을 택했다.
길의 시작은 잘 정비된 계단이었으나, 머지않아 길은 바위와 어우러져 있었다.
정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내려가는 나와 올라가는 그들이 마주쳤다. 그들은 아이 둘과 부부. 아이 둘은 둘 다 미취학아동처럼 보였는데, 그들에게는 등산이 일상인 듯 마치 소풍가듯 가벼워보였다.
 
이런, 나는 무릎을 질질 끌고 올라갔던 그 길을, 그 어린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재잘대며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 우울함이라니... 그동안의 투덜거림이며, 이마저도 작은 성취라고 우쭐대던 마음은 벌써 쥐구멍을 찾고 있었으니... 강도 높은 훈련(?)을 포함하는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 함이 분명했다.
길은 계곡인 듯 아닌 듯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는 뜀뛰기의 연속이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왜 이 모양이란 말인가. 바위 천지다. 계곡인 듯 아닌 듯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는 뜀뛰기의 연속이다. 걷기 실종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 올라갈 때의 그 길은 길도 아니었구나.
 
올라갈 때의 그 길은 길도 아니었구나. 탄식이 절로 나온다. 올라갈 때의 바윗길보다 내려갈 때의 바윗길이 훨씬 더 힘들다더니, 제대로 실감한다. 무릎이 받는 하중도 그만큼 더 세지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은 나이도 아니라며, 무릎이 나이 든 티를 내려한다. 아서라~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단다.
예전에 참숯을 제조하던 숯가마터.
가는 길 중간에 동그랗게 돌로 쌓아올린 우물터 같은 것이 보인다. 무심코 지나치려는 찰나 숯가마터라는 설명이 눈에 뜨인다. 아! 옛날에는 이렇게 숯을 제조했었구나.
 
설명에 따르면, 먼저 숯이 될 통나무를 적당한 크기(1.2~1.5m)로 잘라 가마 안이 가득 차도록 통나무를 세워쌓고, 그런 다음에 지붕을 만들어 흙으로 덮은 다음 입구에 불을 놓고, 나무에 불이 다 붙으면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폐한 후, 7일 정도 지나 숯을 꺼내면, 이것이 바로 흙탄(炭)이라고 한단다.
 
이 감악산에는 1960년 후반까지도 이렇게 숯을 굽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실제 내려오는 길 여러 곳에서 가마터를 볼 수 있었다.
길은 험해도 나무들은 따스하고 또 푸르다.
# 길과 무릎의 불안한 동행
 
길은 험해도 산색은 여전히 푸르렀고, 바람마저 싱그러웠다.
 
길과 계곡이 서로 어우러져 이어지는 이 몹쓸(^^) 하산길이 아니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을... 실로 길과 계곡의 경계는 애당초 중요하지 않았고, 계곡이 길이고 길이 곧 계곡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가끔씩 멈춰 서 바라본 푸른 하늘과 그 아래의 푸른 나무들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마음을 비우고 뜀뛰기하듯 걷는 걸음도 나름 운치가 있다. 무릎이야 조금 아프겠지만, 아직도, 그래도, 이만하면, 젊다고 우겨도 되는 나이가 아니던가.
변화무쌍한 바윗길을 걸을 때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 것이다.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될 일이다. 굳이 멀리 바라볼 필요도,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한 치 앞을 모르는 변화무쌍한 바윗길을 걸을 때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 것이다. 고개를 숙인 채로 겸손한 자세(?)로 길과 나를 일치시켜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사색이니 생각이니 하는 것들은 들어설 틈도 없는 지라, 그저 묵묵히 가면 되는 것이다.
 
#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새삼 우리네 삶도 바윗길을 걷듯 그렇게 걸어가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놓인 현실에 적응하면서 설사 그것이 장애물 넘기라 하더라도 가볍게 뜀뛰듯 지나다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지 않겠는가.
느긋하게 걸어라. 그러면 될 일이다.
그러다가 문득 느닷없이, 생각나는 둘레길 예찬 하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너무 높이 올라가면 내려가는 길 역시 멀고 험한 법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는 등산이 요구하는 오르고 내리는 롤러코스터의 여정이 버거워 둘레길을 좋아하고, 또 그 길 위에서 나름 춤추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높이 오르지 않아도 행복할 방법이야 늘리고 늘렸지 않겠는가.
 
자기 합리화는 항상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하다. 나 역시도 그렇다. 화병 나는 것보다는 적당히 스스로를 기망하면서 사는 일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철학자들은 이럴 때 ‘만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설사 그 길이 험하다 할지라도, 삶은 지금 이 순간이다.
따지고 보면 이 푸르른 날에 길이 조금 험하다 한들 그게 또 무슨 대수란 말인가. 지금 이 산에, 이 길 위에 내가 있고, 이 무한한 자유와 푸르름이 넘쳐나는데... 이 싱그러운 바람을 또 어디 가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이다.
 
만족하면 될 일이다. 그저 처한 상황과 가진 것에 대한 만족만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삶에는 애당초 기준 같은 것도 없지 않은가. 내 기준은 내가 정하면 될 일이다. 우리가 듣고 배워왔던 그 기준들은 어쩌면 그들의 기준이었지, 내 기준은 아니었음을, 그런 이유로 각자만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나도 그대도,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제야 길과 계곡은 서로의 길을 가기로 결심을 했나보다.
# 돌길만 아니라면.... 차라리 고맙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산이 낮아질 무렵 길은 드디어 계곡과 자웅동체로서의 지난한 여정에 이별을 고한다. 진즉에 그랬으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지금이라도 계곡을 벗어난 길의 용기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저 돌길만 아니라면 차라리 고마운 일이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아비가 걸어간 길이 아이에게는 참고할 만한 그 무엇이기를...
그리고 문득 생각나는 욕심 하나. 얼마 전 입대한 아들 녀석이 깡마른 성미의 아비일지라도 아비와 더불어 지내던 그 때가 차라리 좋은 시절이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내가 그렇다. 늘 부족해 보이고, 아이처럼만 보이던 녀석의 부재 앞에서 아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녀석의 부재가 서운하고, 녀석이 그립다. 속 좁고 부족했던 아비는 그래도 그 놈이 괜찮은 놈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감악산 법륜사 전경
# 오후 5시, 산사의 범종 소리가 산을 넘어 속세를 떠난다.
 
오후 5시, 목적지가 머지않았음인가. 뎅뎅뎅~ 산 아래 법륜사의 범종 소리가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른다. 불가(佛家)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중생들을 위해 범종을 두드린다는데, 과연 그러함인지 소란스럽던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한 번, 두 번... 서른세 번이었던가. 저녁 예불을 아뢰는 범종 소리이건만, 절집 밖의 새들도 아뢰야 할 예불이 있기라도 하는 양 서둘러 그들의 둥지로 향하는 날개짓이 부산스럽다. 산길을 배회하던 도보여행자도 하산을 서둘러야 할까보다.
 
저 멀리 떠나온 그 자리, 출렁다리가 산과 산 사이에 아스라이 걸려 있다.
저 멀리 출렁다리가 걸려 있다. 돌아갈 자리다.
* 여행정보
 
- 금촌역, 문산역, 적성전통시장에서 감악산 출렁다리까지 가는 2층 버스 운행(주말, 공휴일)
 
- 자동차 : 감악산 출렁다리 주차장(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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