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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판다] "미국이 5·18 무력 진압 용인했다"…미 국무부 비밀 문건 첫 확인 (풀영상)

▶ [끝까지판다①] 美, '광주 최종 진압작전' 용인…비밀 문건 첫 확인

<앵커>

지금부터는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에 담긴 1980년 5월의 진실에 대해서 탐사보도팀이 취재한 내용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오늘(15일)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냐 하는 내용입니다. 미국 정부가 신군부의 무력 진압을 용인했다는 의혹 제기와 정황은 그동안 많았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었는데 SBS 탐사 보도팀이 미국이 최종 무력 진압을 사실상 용인했고 또, 자국 입장에 관한 성명을 내면서 신군부와 상의까지 했던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먼저 최종 진압을 앞둔 시점에 미국의 움직임이 어땠는지 박세용 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기자>

계엄군의 최종 진압 작전 돌입 13시간 40분 전인 80년 5월 26일 오전 10시 20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가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긴급 전문입니다.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27일 0시부터 진압 작전이 시작된다는 말을 들었다는 내용입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광주의 무법 상황이 길어지는 것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군사 작전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고 보고합니다.

광주의 참상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최종 진압 작전 계획을 전달받았을 때 사실상 용인하는 자세를 보였던 겁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그러면서 초기 상황을 악화시킨 공수부대에 관해 언급합니다.

"공수부대의 초기 행위가 아주 걱정스러웠다"며 "탈환 작전에 공수부대는 배제했으면 한다"고 최광수 비서실장에게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바로 뒤에는 "그래도 공수부대는 투입될 것"이라는 판단을 덧붙였습니다.

그 뒤 1989년 미국은 5·18에 관해 낸 첫 서면 입장에서 최종 진압 시작 전 시민군이 중재를 요청했는데 글라이스틴 대사가 자기 역할이 아니라면서 거절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재의/5·18 기념재단 조사위원 : 전두환의 강경 진압에 동의를 하는 이런 모습이 곳곳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국 쪽에서 잘 몰랐다, 책임이 없다가 아니고, 잘 알고 있었다.]

계엄군의 강경 진압을 사실상 용인했던 미국은 그 불똥이 반미 감정으로 튀는 것은 걱정했습니다.

당시 광주를 장악한 신군부는 방송을 통해 미국이 계엄군 투입을 용인했고 군의 광주 통제를 격려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해당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국무부에서 단호하게 부인하는 성명을 낼 것이라고 두 차례에 걸쳐 계엄사령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압박한 것으로 비밀 전문은 기록했습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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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끝까지판다②] '모르는 척' 美, 성명서도 신군부와 사전 조율

<앵커>

미국 정부가 당시 신군부와 조율한 내용은 더 있습니다. 미국은 계엄군의 강경 진압 문제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는데 이에 관해 성명을 내면서 신군부와 사전에 상의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어서 장훈경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공수부대가 총검을 사용해 수많은 부상자가 생겼다는 소문이 돈다', '질서 회복을 위해 많은 군사력이 투입될 텐데, 이미 수년간 상처가 될 상당한 피해가 발생했다' 비밀 전문을 보면 미국 정부는 처음부터 계엄군의 과잉 진압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재의/5·18기념재단 조사위원 : (미국) 문서에도 보면 최초 사망자가 '농아'라는 사실을 이렇게 밝혀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에 광주에서는 그런 내용을 알 수도 없었죠. 굉장히 5분 단위, 10분 단위로 (미국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남도청 집단 발포 다음 날인 80년 5월 22일, 주한 미국 대사관이 미국 국무부에 비밀 전문을 보냅니다.

"23일 발행되는 한국 신문에 실릴 수 있도록 22일 국무부가 성명을 발표하길 바란다"며 초안을 보낸 건데, 전문에는 신군부와 청와대가 성명 초안에 동의하는 것은 물론 환영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또 성명이 발표됐는데 진압 작전을 하면 미국이 난처하니 적어도 이틀 동안은 군사력 동원은 하지 않기로 확약받았다고 돼 있습니다.

거의 그대로 발표된 국무부의 성명은 평화적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외부 세력, 즉 북한이 상황을 악용하려 할 경우 강력 대응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희송/전남대 5·18연구소 교수 : 군인이 벌이고 있는 잔혹한 살상행위를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미국이지 않을까. (그런 미국이) 광주에서 자행되고 있는 군의 잔혹한 진압을 제어하는 영향력을 행사했어야 하는데…]

성명은 한국군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미국이 강경 진압을 막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었고, 그래서 신군부는 환영했던 겁니다.

(영상취재 : 조창현, 영상편집 : 조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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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판다③] 5·18 살상 알았으면서 "몰랐다"…드러나는 美 거짓말

Q. 美 국무부 문건, 기존 미국 입장과 다른 점?

[SBS 박세용 기자 :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미국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낸 것은 딱 한 번입니다. 전두환 씨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뒤인 1988년인데, 그해 여름에 국회에 5·18 진상조사 특위가 만들어졌고, 여기서 글라이스틴 당시 대사가 나와서 증언해 달라고 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그건 거부하면서 미국 정부 차원의 성명서를 냈던 것인데요, 당시 성명서 결론이 뭐냐면 "미국은 광주의 폭력 사태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민간에 대한 한국군의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앞서 보셨다시피, 이미 수많은 시민이 참혹하게 살상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글라이스틴 대사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만나서 최종 진압 작전을 금방 할 것을 다 알면서, 시민 살상을 막기 위한 얘기는 안 했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이 광주 상황과 계엄군의 움직임을 거의 실시간 파악하고 있었고, 국무부 성명 내용까지 상의할 정도로 신군부와 정보를 교류하고 의견을 조율한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는 점도 의미가 있습니다.]

Q. "전두환 씨가 진압 결정"…법원 결정은?

[SBS 박세용 기자 : 광주지방법원에서 결정이 나왔는데요, 전두환회고록 1권에 보면, 전두환 씨가 본인은 5·18 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는 취지로 쓴 부분이 있습니다. 여섯 곳 정도가 되는데, 법원이 이것을 포함해 36개 표현을 허위사실로 판단했습니다. 회고록이 북한군 개입설 같은 허위사실을 담아서 지난해 이미 출판 금지가 됐었는데, 전 씨가 문제 된 부분만 까맣게 지우고 다시 책을 내서 5·18단체가 또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두 번째로 출판 금지 결정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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