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제보하기

[취재파일] "최소 10년간 GM 먹튀 막았다"…과연 그런가?

정부-GM 협상의 문제점 ②

곽상은 기자 2bwithu@sbs.co.kr

작성 2018.05.14 11:26 수정 2018.05.14 12:11 조회수
프린트기사본문프린트하기 글자 크기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최소 10년간 GM 먹튀 막았다"…과연 그런가?
GM과의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원한 건 분명했습니다. GM이 떠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산업은행의 8천억 원 자금지원 외에도 크고 작은 당근들을 제공했고, 결국 그 대가로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GM을 팔고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GM 본사로부터 받았습니다.

GM의 약속은 앞으로 5년간 지분매각이 제한되고 이후 5년간도 지분 35% 이상의 1대 주주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조항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여기에 산업은행은 지난해 10월 만료된 비토권 즉 한국GM이 총자산의 20%를 넘는 자산을 매각, 양도 혹은 취득할 때 산업은행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해 대주주에 대한 견제장치도 다시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GM의 먹튀(먹고 도망감)를 최소 10년간은 막았다'는 정부 발표를 두고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앞으로 10년간 한국GM을 팔고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GM이 한국에서 '지금처럼'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건 여전히 위험하다는 주장입니다. 왜일까요?

잠시 호주의 사례를 살펴보죠. 호주에서 2000년대 들어 15억 달러가 넘는 정부 보조금을 받아온 GM은 보조금이 끊기자 2013년 현지 공장 폐쇄를 발표하고 지난해 실제 폐쇄 작업을 완료했습니다.

눈여겨봐야 할 건 GM이 여전히 '호주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GM이 '철수'라는 단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GM은 호주에서 디자인센터와 수입차 판매 법인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생산 공장을 폐쇄하고도 여전히 '철수'했다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호주 정부가 원했던 건 생산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고 자국의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GM에 거액의 지원금을 제공하며 기대했던 건 수입차 판매망 유지가 아닙니다. 때문에 GM은 여전히 '호주에 남아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GM이 호주에서 먹튀를 했다'고 말합니다.

다시 우리 협상 결과로 돌아와 볼까요? GM이 호주에서처럼 국내에서도 생산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한다면 우리에겐 막을 방법이 있을까요? 답부터 말하자면 '없다'입니다. GM이 한국GM 자체를 다른 기업에 팔아버리지 않는 한 '지분유지 의무'를 어기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산업은행의 비토권을 행사해 공장 폐쇄를 막는 건 어떨까요? 안타깝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산업은행의 비토권은 '총자산의 20% 넘는 자산'을, 그것도 '매각'할 때에만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공장을 폐쇄하는 등의 구조조정에는 개입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산업은행이 가진 지분율 17%를 근거로 주주총회에서 반대를 한다면 혹시 공장 폐쇄를 막을 수 있을까요?(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은 보통주 총수 85% 이상 찬성 시 결의 가능) 역시 불가능합니다. 공장 폐쇄는 주주총회 결의사항이 아닌 이사회 결의사항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GM 군산 공장 폐쇄 결정도 이사회에서 GM 측 이사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됐습니다. 산업은행 측 이사들은 관련 안건을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받아보았으며, 이사회에서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결과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사외이사를 3명이나 두고도 왜 GM의 잘못된 경영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냐는 취재진의 지적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GM 쪽 이사는 7명이고 산업은행 쪽 이사는 3명에 불과한데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며 "뭘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협상 타결로 GM의 먹튀를 최소 10년간 막았다고 하지만, GM이 국내 생산 공장을 폐쇄하거나 과거 군산 공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매출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공장의 가동률을 낮추고 이른바 '좀비 공장'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산업은행에는 이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군산 공장에서 일어난 일이 다른 공장에서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호주에서 일어났던 일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고 또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유감스럽지만 GM 측 이사들의 최우선 고려사항은 한국GM의 이익이 아니라 GM 본사의 글로벌 경영전략입니다. 그들은 이전에도 GM 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한국GM에 불리할 수 있는 자산매각 결정 등을 내려왔고, 그때마다 그 비용은 매번 한국GM이 감당해내야 했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한계를 산업은행도 인정합니다. GM이 의도적으로 공장을 폐쇄하거나 20% 미만의 자산을 매각하는 건 막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GM의 먹튀를 최소 10년간 막았다'는 정부 측 주장에도 불구하고, GM이 10년 안에도 시장 상황에 따라 공장의 생산량을 줄이고 철수비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얼마든지 취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렇게 먹튀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 이번에도 역시 GM의 '선의'에만 기대야 하는 걸까요? 국민의 혈세로 충당되는 산업은행의 돈 8천억 원과 크고 작은 지원책을 제공하면서도 여전히 GM이 한국GM을 경영하는 방식에 대해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를 할 수 없는 현실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요?

협상은 종료되고 산업은행의 8천억 원 금융제공확약서가 이미 GM 손에 쥐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상 결과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건 이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GM의 운명을 놓고 GM이 10년 뒤 어떤 결정을 내릴지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우리에게 플랜B는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GM이 10년 뒤 한국을 떠나도 한국GM의 독자생존을 가능하게 할 대책이 있는지, 없다면 그 근로자들과 협력업체들의 생존을 위한 대책을 10년 동안 만들어나갈 플랜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10년 전에라도 GM이 생산 공장의 문을 닫겠다고 위협하며 추가 지원을 요구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도 묻고 싶습니다.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면, 정부는 당장 그 계획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정부는 10년 뒤 또다시 이렇게 끌려다니는 협상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군산 공장 근로자들의 눈물과 국민 혈세 8천억 원을 대가로 벌어놓은 10년이란 시간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허송세월해서는 안 됩니다.

▶ [취재파일] GM의 '선의'를 믿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