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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GM의 '선의'를 믿어도 될까요?

정부-GM 협상의 문제점 ①

[취재파일] GM의 '선의'를 믿어도 될까요?
'한국GM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는 GM(제네럴모터스)의 발표로 불거진 이른바 '한국GM 사태'가 석 달 만에 일단락됐습니다. GM 본사와 협상을 벌여온 우리 정부는 지난 10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관계 장관 회의를 열고 '협상 타결'을 공식화했습니다.

협상의 핵심은 '돈'이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GM 본사가 한국GM에 빌려줬던 돈 3조원을 출자로 전환하고, 이후 한국GM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사용될 신규자금 4조7천억 원은 GM과 산업은행이 지분율에 따라 83:17의 비율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산업은행 지원을 대가로 우리 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GM을 팔고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GM 본사로부터 받았습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협력업체를 포함해 한국GM의 생존에 영향을 받는 일자리가 15만6천 개에 달한다며, 이번 협상 타결이 이 일자리들을 보호하는 건 물론 국내 산업생산과 수출, 지역경제 전 방위에 걸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거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협상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번 협상을 '윈윈 협상'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협상 과정을 지켜봐온 외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잘못된 협상'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협상 결과는 하나인데 평가는 전혀 다른 것이죠. 이들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고, 정부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이번 협상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되는 건 신규자금의 성격입니다. 국민 혈세로 충당되는 산업은행의 돈은 전액 출자금인데도, GM의 돈은 대출금이어서 본사가 꼬박꼬박 이자를 빼가는 구조라는 겁니다.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경영부실의 책임을 물어 GM측에 차등감자(대주주의 경영책임을 묻기 위해 대주주에게 불리한 비율로 자본금을 줄이는 것)를 요구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 상황이 마치 사업하는 사람이 자신의 회사에 친구 돈을 출자금으로 집어넣고 자기 돈은 대출금으로 책정해 이자를 받아가는 셈이라며,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말이 되지 않는 이 상황'은 GM이 한국GM을 정상화시키고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나는 사업으로 키울 계획이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한국GM에 대한 산업은행의 실사결과도 논란거리입니다. 그동안 한국GM이 자본잠식 상태에 이를 정도로 수익이 나지 못한 데에는 GM 본사의 과도한 대출이자나 연구개발비 부과, 또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나 부품에 대한 지나치게 낮은 가격 책정 등이 문제로 지적됐지만, 실사는 GM이 다른 외국 생산기지에서도 이런 식으로 경영을 한다며 '이익 빼돌리기'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습니다.

물론 실사의 구체적인 내용과 근거는 GM과 산업은행이 맺은 비밀유지협약에 의해 여전히 비공개로 남았습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매출액 대비 현대기아차에 비해 월등히 높은 연구개발비를 부담하고 있는데도 신차 라이센스는 하나도 가지지 못한 한국GM의 문제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또 실사 결과 정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면 앞으로 한국GM은 어떻게 수익을 내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여기에 새로 배정된 신차의 차종을 놓고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한국에 장기간 남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면 신기술이 탑재된 친환경 미래자동차를 한국 공장에 배정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지만, GM은 당장 돈이 될 SUV 차량 등을 배정하는 데 그쳤습니다. GM이 사업의 핵심역량을 친환경 미래자동차 쪽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기에, 업계에선 이곳에서 장기적인 사업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는 겁니다.

정부도 할 말은 있습니다. 'GM이 6조9천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한 건데, 한국에서 사업을 잘 하겠다는 의지가 없이 이게 가능한 일이냐?'는 거죠. 하지만 이 주장에도 역시 반론은 제기됩니다. GM이 출자전환하는 기존 대출금 3조원은 어차피 지금 당장 한국을 떠나도 대부분 회수하기 어려운 돈인데다, 새로 대출금 형식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힌 3조9천억 원의 경우엔 희망퇴직금 등 구조조정에 사용될 8천5백억 원 외에 나머지 돈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겁니다. 10년에 걸쳐 집행될 예정인데다 그 용처 또한 매우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하나의 협상 결과에 이렇게 서로 다른 평가가 나오는 건 왜일까요? 취재과정에서 발견한 양측의 근본적인 차이는 'GM의 선의'에 대한 믿음 여부에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GM이 한국GM을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한 기업으로 키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믿는 측과 한국에서 단물만 빼먹고 철수비용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측 사이의 간극이었습니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종료됐고, 산업은행은 8천억 원 규모의 금융제공확약서를 GM에 제공했습니다. GM의 속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차차 알게 될 것이고, 이번 협상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때 다시 내려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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