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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MB 재판 ② - '증인' 없이 '증거'로 다툰다

전형우 기자 dennoch@sbs.co.kr

작성 2018.05.11 17:33 수정 2018.09.10 17: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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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MB 재판 ② - 증인 없이 증거로 다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조금씩 잊히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전직 대통령 구속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5월 3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됐지만, 검찰 조사를 거치며 웬만한 것들이 다 나와 별로 새로울 게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던 피고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검찰과 피고인, 양측 논리가 팽팽하게 맞붙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진실에 좀 더 다가설 수 있는 겁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20여 년 이상을 제기된 이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의 진실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 재판 실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 5월10일, 이명박 전 대통령 2회 공판준비기일(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 '증거 동의'로 달라진 재판 분위기

재판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과 변호인 측이 증거를 두고 기싸움을 벌이던 것과 달리, 두 번째 준비기일은 양측 목소리가 높아진 적이 없었다. 첫 기일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를 넘어서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가 있다고 의심했다. 증거를 입증하는 순서도 검찰이 제시한 'A-B-C'가 아닌 거꾸로 'C-B-A'식으로 하자고 주장하면서 변호인 측에서 흥분된 목소리도 나왔다. 검찰도 증거가 전부 동의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입증 계획을 세우고 나왔다.

재판의 방향이 바뀐 건 기일 이틀 전. 이 전 대통령 측이 검찰의 증거에 모두 동의한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동의한 증거에는 다스 비자금 조성, 삼성 소송비 대납,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등 혐의로 조사받은 공범과 참고인들이 진술한 검찰 조서가 포함된다. 검찰이 이들을 조사한 조서를 증거 채택에 동의하면서 법정에서 증인을 새로 불러 잘잘못을 따지는 긴 과정이 생략된다.

이 결정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본인의 의중이 반영됐다. 강훈 변호사에 따르면 "5년 동안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검찰에 가서 그런 진술하게 된 개인적 사정들이 다 있을 텐데 그걸 법정에서 추궁하는 게 대통령으로서 할 도리가 아닌 것 같다. 그런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드리는 것도 안 될 일"이라는 게 이 전 대통령이 증거에 동의한 이유다.이명박 전 대통령 검찰 조사 불만● 반기는 검찰, 증거로 맞서겠다는 변호인 측

검찰은 이 결정을 반겼다. 검찰이 조사해서 제출한 증거들이 모두 법정에서 유무죄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효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보여줬던 팽팽했던 긴장감이 두 번째 기일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이유다. 검찰 측은 재판에서 상당히 유리해진 것으로 판단하고 빠르게 1심을 진행해 마무리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을 상대하는 만큼 재판 진행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 수사를 진행했던 검사를 포함한 '공소유지 전담팀'을 꾸렸다. 직접 이명박 전 대통령을 조사한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장과 송경호 특수2부장, 다스 특별수사팀 부팀장을 맡아 이끌어온 노만석 검사 등 부장검사만 세 명. 이 전 대통령 조사 당시 참석해 조서를 작성했던 이복현 부부장 검사 등 7명이 이날 법정에 나왔다.

변호인 측은 증거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건 전혀 아니라고 했다. 혐의를 자백했다거나 불리하니까 한발 물러선 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재판에서 혐의를 벗을 수 있는 물증을 제시해 입증하겠다는 뜻이다. 이날 변호인 측은 재판부에 금융계좌 추적과 청와대 출입기록, 삼성에 대한 사실조회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청와대 출입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출입기록을 통해 입증하고, 다스 자금이 이 전 대통령까지 도달하지 않고 처남 김재정 씨에서 멈춘 걸 보여주기 위해 돈의 흐름을 파악하겠다는 거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모은 증거와 진술조서로 구성된 논리의 탑을 부수기 위해 대응되는 증거를 찾는다는 취지다.

하지만 변호인 측의 호언과 달리 증거를 증거만으로 맞서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검찰이 증거 동의에 반색한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변호사들도 이 전 대통령에게 대부분의 증거에 동의하지 말자고 설득했다. 며칠을 고민했다는 이 전 대통령은 변호사들의 의견과 달랐다. "가능한 한 객관적인 물증을 찾아서 검찰 논리에 반박해 법리 싸움을 해달라"고 변호인에게 요청했다. 검찰과 달리 변호인 측은 강제로 증거를 수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변호인 측은 1회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에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강훈 변호사 / 이명박 전 대통령 측
"사실 변호인 측은 갖고 있는 수단이 없어서요. 압수를 할 수도 없고. 사실조회를 법을 통해 하더라도 그쪽에서 거부하면 안 되는 거고요. 솔직히 저희들은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 있는 공관 출입기록 이런 것을 보고 싶은데요. 그걸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자체는 상당히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청와대 경호실 서버에 남아 있는지 자체부터 확인해야 하는데 확인할 방법 없습니다. (다스 소송비 대납 관련해서는) 삼성 본관에 있는 다른 로펌의 컨설팅 계약 서류 보고 싶은데 삼성에 협조 요청해도 되지가 않을 겁니다. 변호인 측은 어떤 것을 확보하고 싶은데 어떤 수단 확보해야 할지 정확히 몰라서 이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정계선 부장판사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
"실제로는 제출하고 싶은 증거 자체가 확보가 안 돼 있고, 확보할 방법 막막하다는 말씀이시네요. 당연히 신청하시는데 확보 수단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특정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겠지만."


● '어떻게 비춰질지' 신경 쓰는 MB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판에서 다툴 자신의 유불리보다 밖으로 어떻게 비춰질지에 더 신경 쓰는 모양새로 보인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동의한 이유도 김백준 총무기획관 등 청와대 직원들, 자신이 임명한 국정원장인 원세훈·김성호, 자신과 반평생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등 돌린 이들과 법정에서 대면해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원치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전 대통령의 당 수치가 높아 구치소에서는 병원으로 외부진료 갈 것을 조언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거절했다.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증거 동의'라는 첫 단추로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과 다른 양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검찰을 믿지 못한다며 대부분의 증거에 동의하지 않았다. 100여 명이 넘는 증인들이 법정에 서야만 했고 구속기간 6개월 안에 재판이 끝내지 않아 '지연 전략'이라고도 비판받았다. 구속이 연장되자 박 전 대통령은 법원도 공정하지 않다며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 재판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증거가 부동의 됐을 경우, 검찰이 불러야 할 증인은 190여 명, 검찰 측 신문 시간만 121시간이 필요했다. 증거 동의로 이 과정이 모두 생략되면서 검찰 측 증거조사는 14회 정도의 재판을 진행하면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변호인 측 증거조사는 이들이 요구한 증거가 확보되느냐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검찰과 변호인 측 모두 이날 증인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재판은 '증인'없이 '증거서류'로 법정에서 혐의를 다툴 것으로 보인다. 진행과정에서 몇 명의 증인을 부를 수 있지만 대규모로 부를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까지는 검찰이 모아서 법정에 제출한 증거는 압도적인 규모인데 변호인 측은 마땅치 않다. 법정을 나온 강훈 변호사는 과로한 탓인지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