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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하나의 봄'을 떠올리다 - 파주 감악산(紺嶽山) 둘레길 ①

[라이프] '하나의 봄'을 떠올리다 - 파주 감악산(紺嶽山) 둘레길 ①
봄은 남해에서도 북녘에서도 오지 않는다
너그럽고 빛나는 봄의 그 몸짓은,
통일은 제주에서 두만까지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디딘
아름다운 논밭에서 움튼다

겨울은, 바다와 대륙 밖에서
그 매운 눈보라를 몰고 왔지만
이제 올 너그러운 봄은, 삼천리 마을마다
우리들 가슴 속에서 움트리라.

(하략)


<껍데기는 가라>는 시로 유명한 신동엽 시인의 시, <봄은>이다.
임꺽정봉에서 바라본 감악산 장군봉의 모습
● 남북정상회담, '하나의 봄'을 기억하다

굳이 이 시로 글을 여는 이유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우리 땅 한반도에 몰고 온 그 봄기운에서, 또 그 훈풍에서 벗어날 방법이 아직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사는 땅, 하늘, 바다 어디에서도 서로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
"우리는 대결하며 싸워야 할 이민족이 아니라 단합하여 화목하게 살아야 할 한민족이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


휴전(休戰) 후 65년만의 감격적인 '판문점 선언' 앞에서 우리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가 손 내밀면 금방이라도 만질 수도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제껏 평화와 통일은 어쩌면 레토릭(修辭)로만, 명제로서만 존재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한반도를 넘어 전(全) 지구적이다.
평화로 향하는 길은 지속되어야 한다.
비록 일부에서는 우려가 상존하고, 또 이마저도 정쟁의 수단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지만, 그것만이 그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길이라면, 또 그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면, 우리는 그들을 또 이해(?)해야 한다. 다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그들의 몰락을 재촉하는 일이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이 꽃을 보러 어찌 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찌되었건 봄날의 햇살은 화사하다 못해 눈이 부셔 좀이 쑤실 지경이다.

그렇게 봄날은 또, 어디론가 떠날 것을 재촉한다. 머무름으로써,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동행하지 않음으로써 민족적, 시대적 과제를 또, 과거의 분열과 파괴, 공포의 시궁창에 처박으려는 그들을 보면서 새삼 머무름마저도 죄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러니 어찌 머물러 스스로를 파괴하고자 욕심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또,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한다.
길 가장자리에서 붓꽃이 길을 밝히고 있다.
길 위로 봄이 지천이다

도착한 곳은, 북녘땅 마식령산맥에서 출발한 물줄기가 한탄강과 어우러져 임진강이 되어 흐르는 곳, 파주의 끝에 위치한 감악산이다. 감악산은 휴전선에서 불과 4km밖에 되지 않는 분단의 현장이면서, 오랜 세월 동안 군사적 이유로 입산이 금지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접경지역이면서 중심이 될 수도 있는 곳(합쳐지면 접경이 중심이 된다), 감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길은 저 너머 햇살 가득한 봄날 속으로 뻗어 있었다. 신록에 겨운 봄 햇살은 이파리마다 몽글몽글 매달려 박하 향처럼 빛살을 터트리고, 갈팡질팡 갈 곳 몰라 하는 바람은 이파리며 꽃들이 드러내는 부드러운 살갗을 더듬느라 정신줄마저 놓은, 그런 날이었다.
운계폭포에 찾아온 봄
그나마 길은 흔들릴 수도 가벼울 수도 없는지라, 봄바람 하늘거리는 저편에서 다만 좌우로 번갈아 휘어져 흐를 뿐, 들뜨지 않는다. 정중동(靜中動)이란 어쩌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머물러 있으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 강이 그러하듯, 길도 무심한 듯 누워있으나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길은 생명들을 실어 나르는, 느리지만 꾸준한 긴 열차였던 것이다. 비록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하여 똑바름과는 거리가 먼 모양새지만,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가는 이웃이며, 친구이기도 하다. 돌아간들 무엇이 문제일 것인가.
길 위로 봄이 지천이다.
길 위에 서자, 그야말로 봄이 지천이다.

봄은 햇살로도 오고, 꽃으로도 온다. 그중에 으뜸은 신록의 푸르름이 아닐까. 투명하기까지 한 푸르른 녹음이 우거진 봄 산은 그야말로 연초록 물감 천지였다.
감악산 출렁다리
●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을 걷다

주말이 아닌데도 산으로 가는 사람들로 길이 붐빈다. 감악산 출렁다리를 걷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 많은 탓인가 보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중년의 사랑을 이어주던 그 다리가 감악산 출렁다리다.

실제 감악산 출렁다리는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린 신의 한 수로 평가받으며 이 지역에서는 대표적인 지역 명물이 되었다. 2016년 9월, 길이 150m의 이 출렁다리를 개장한 이래 누적 관광객 수가 이미 110여만 명(2018년 4월 기준)에 이른다고 하니,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면 진정 놀라운 성과인 것이다.
출렁다리 위에서 사람들은 추억을 쌓는다.
감악산이 위치한 파주시 적성면과 광탄면은 파주의 최북단이면서, 또 군사 접경지역이다. 그러니 변변한 산업기반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과거 미군부대가 철수한 이후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지역경제는 감악산 출렁다리가 몰고 온 변화를 여실히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오리라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다.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였던 셈이다.

주차장이기도 한 만남의 광장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출렁다리는 '경기 5악(五岳)' 중 하나인 감악산(해발 675m) 기슭에 지상 45m 높이로 설치되어 있다. 성인 900명이 동시에 통행할 수 있으며, 게다가 초속 30m의 강풍과 진도 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다니, 걸으면서 느껴지는 약간의 흔들림은 그저 즐기면 될 일이다.
파주 감악산길 9
초록의 산등성이를 연결해놓은 빨간 출렁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핸드폰을 들어 추억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고, 작은 흔들림에도 꺄악~~ 즐거운 탄성이 터진다.

감악산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는 이 출렁다리를 건너야 한다. 출렁다리를 건너는 와중에 두어 팀의 추억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그들이 바라는 사진이었기를….
진달래가 지천이다.
● 운계폭포 가는 길

출렁다리를 지나자 진달래가 지천이다. 운계폭포로 이어지는 나무데크길 옆으로 햇살을 머금은 꽃잎들이 야한 몸짓으로 연신 유혹을 한다.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는지라 그들을 카메라에, 또 마음에다 담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는 폭포, 비룡폭포라고 불리기도 하는 운계폭포다.
비룡폭포라고 불리기도 하는 운계폭포
폭포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을 하는 듯 조용하고 그저 그윽하다. 자신이 가진 풍채에 비해 물줄기는 가늘었고, 또 그만큼 조용조용히 자신이 내놓을 수 있는 만큼의 물만 떨구고 있었다. 하지만 장마의 계절이 오면 그 넓은 풍채에서 쏟아내는 물줄기가 그야말로 장관이리라. 어느 여름날에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감악산이 휴전선에서 4km 남짓한 곳에 있는지라, 오랫동안 입산금지구역이었던 덕택에 운계폭포 역시 많이 알려지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고 하나, 앞으로는 아마도 인산인해, 줄을 서서 폭포를 친견(?)해야 할 날이 오래지 않아 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운계폭포에도 봄은 그득하다.
걷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거나, 또 아름다운 꽃을 만나거나, 또 무언가 이야기가 숨어 있는 상황을 만나면, 걸음은 저절로 느려지고 카메라는 무슨 사명이라도 띠고 있는 양 저절로 바빠진다. 운계 폭포에서도 그랬다. 걱정스러운 것은 출렁다리에서도, 이곳 운계 폭포에서도 여정이 지체되고 있음이다. '(떠난 자리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여행의 명제는 또 하나의 구속이 되어 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여행은 언제나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 둘레길을 걷다 산을 오르는 이유

운계폭포를 벗어나자, 걸어야 할 길이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져 있다. 이제부터는 감악산 둘레길이다.

감악산 둘레길은 파주시와 양주시, 그리고 연천군을 지나는 순환형 둘레길로, 손마중길, 천둥바윗길, 하늘동네길, 임꺽정길, 청산계곡길 등 총 5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열심히 걸으면 하루에 완주 가능한 21km 정도다.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다.^^ 무리는 하지 마시라~

어디로 가야 하나? 나름 둘레길 지도를 펴들고 일정 시간 내에 도착 가능한 코스를 찾아본다. 우선은 원점회귀가 가능한 코스여야 했다.
길 너머에는 언제나 또 길이 있다.
지방, 특히 군·면 단위의 둘레길을 걷다 보면 제일 부담스러운 것이 택시요금이다. 택시를 타고 10~20분 정도를 이동할 뿐인데도, 택시요금은 대부분 1만 5천 원에서 어떤 경우에는 3만 원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그놈의 미터기는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거의 주유기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지라, 심장이 덜컹할 정도다. 게다가 택시가 출발지를 떠나 승객이 있는 장소까지 오는 거리만도 만만치 않고, 거의 왕복 요금의 요율이 적용되어 요금이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원점회귀 코스를 고집하지만, 길이 어디 내 맘대로 이어져 있더란 말인가.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다. 그러니 버스가 있는 지역이면 천만다행이지만, 부득불 택시를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도 길은 낙엽들의 쉼터다.
그러다 보니 오늘의 코스는 완주할 수 없다는 시간적 제약으로, 둘레길 약간과 감악산 정상을 넘어 오는 원점회귀 코스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청산계곡길'을 걷다가 '부도탑 쉼터'에서 감악산의 장군봉으로 이어지다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다.

짙어지는 녹음과 달리 아직도 길은 낙엽들의 쉼터다. 그럼에도 길은 햇살을 담뿍 품은 채로 행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라고…. 지난 겨울, 사람이 그리웠노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붓꽃이 지나는 행인에게 환한 미소를 건넨다.
● 꽃에 대한 사람의 사랑은 짝사랑일 뿐…

먼저 들꽃들이 인사를 한다.

붓꽃이며, 제비꽃, 개별꽃, 노랑제비꽃, 고깔제비꽃 등이 길 가장자리에서 홀로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꽃씨 하나가 기어이 꽃을 틔워 올렸나보다. 그렇게 누가 바라봐주지 않아도, 제 삶이 비록 작고, 또 여려도, 자신이 그곳에 살고 있음을 짙고 고운 색감으로 드러내며, 기어이 지나는 이의 손을 잡아끈다.

그래서 야생화는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일부 무리 지어 있는 그들도 있지만, 무리 지어 있어도 그들은 개별적이고 독립적인지라 굳이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서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 서서 스스로의 생을 즐기다 바람처럼 스러지고 만다. 또 그렇게 바람에 실려 다음 생에는 또 다른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꽃을 피워 올릴 것이다. 그 강건함으로, 그 끈질김으로, 땅에 뿌리를 박고 봄을 노래하기에 그들에게는 외로울 틈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외로움마저도 삶의 부분인지라, 그들은 대범하게 자신의 삶과 자신의 방식으로 마주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제비꽃과 노랑제비꽃 (노란색)
문득 어느 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한다. 꽃 옆에서는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꽃이 기다리는 것은 벌과 나비지 사람이 아니라고.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는데, 사람은 공연히 그들의 사랑을 방해만 한단다. 결국 사람의 꽃에 대한 사랑은 짝사랑일 뿐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특히 그 꽃이 야생화일 경우에 사람은 야생화의 삶 자체와 터전을 망가뜨릴 수 있는 파괴자가 될 수도 있음을 늘 유념하라는 당부가 귓가에 맴돈다.

타자(他者)가 되어 보는 것,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여린 생명과의 만남에서는 더욱 중요해 보인다.
감악산 둘레길 중 청산계곡길을 걷다.
● 청산계곡길을 걷다

길의 이정표는 청산계곡길을 가리킨다.

감악산 둘레길의 각 코스의 이름들이 생경하면서도, 정겹고 또 친근하다. 청산계곡길이며, 손마중길, 천둥바윗길, 임꺽정길, 하늘동네길, 감악산 둘레길의 각 이름들은 그냥 지어진 이름 같지가 않다. 나름의 의미와 이유가 숨어 있는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지역의 학생들이 전 코스를 답사한 후에 길의 특성에 맞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순수한 아이들의 관찰과 이해가 지어준 이름인 것이다. 아름다운 이름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이름 속에 길의 특성이 배여 있음은 걷는 이에게 또 다른 정보일 수도 있고, 가끔은 이름이 대상을 규정하기도 한다.
봄볕에, 야생화에 길이 깨어난다.
길은 아스라하고 또 빛살들이 춤추는 공간만큼은 흥이 절로 난다. 그래서일까. 발걸음도 가볍다. 봄의 정기를 받아 다리에 힘이 붙는 느낌이다. 게다가 들꽃들이 앞 다투어 길을 밝혀 주고 있으니 길은 더욱 풍성해지고 환해진다. 봄날을 맞아 걷는 진정한 첫 둘레길인지라,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다.

길은 흙길이었다가 돌길이었다가 또 흙길이기를 반복한다. 출렁다리에서 북적이던 많은 사람들은 둘레길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홀로 걷는 봄길이 고요하고 또 나른하다. 하지만 한가로움이 주는 평화로움은 역설적이게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고요함에는 또 다른 풍요로움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산이 품었던 물줄기를 내어놓자, 계곡은 작은 폭포를 이룬다.
길은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아직은 메마른 계곡이지만, 산은 조금씩 몰래몰래 품었던 물을 풀어놓고 있는가 보다. 간간이 또르르~ 구르는 계곡 물소리가 그윽하고 또 청아하다. 봄은 초록의 색감으로, 계곡의 단아한 물소리로도 다가오고 있었다.
고깔제비꽃
● 이름을 불러주지 못하는 미안함

길 가장자리에 고깔제비꽃이 소담스럽다. 봄날이면 우리나라 산과 들 어디서건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이 제비꽃이다. 제비꽃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피는 꽃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사실 제비꽃은 오랑캐꽃을 비롯해 너무나도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꽃이기도 하다. 장수꽃, 씨름꽃, 민오랑캐꽃, 병아리꽃, 외나물, 옥녀제비꽃, 앉은뱅이꽃, 가락지꽃, 참제비꽃, 참털제비꽃, 큰제비꽃 등이 모두다 제비꽃의 다른 이름이다. 보는 이에 따라 이름도 달랐던 것이다. (*야생화 백과사전 참조)
제비꽃은 오랑캐꽃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이름이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인데, 황대권의 옥중 편지글인 <야생초편지>에 따르면, "그 옛날 제비꽃이 필 무렵이면 오랑캐가 쳐들어 와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제비꽃은 나물로도 먹을 수 있는데, "어쩌면 오랑캐에게 양식을 다 빼앗겨 버리고 나물로나마 연명하려고 들판을 헤매다 마주친 꽃인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꽃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 뒤에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까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이름이 무엇이든 길에서 만나는 봄의 귀인들은 늘 반갑다. 그들을 만나는 재미 역시 길을 걷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꽃들이 산천에 가득한데, 내가 그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여 그 이름들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근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살가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언젠가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조금 더 반가웁게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노랑제비꽃
● 장군봉을 향하여

길은 장군봉을 향하여 꺾어진다. 이제는 본격적인 산행이다. 장군이라…. 이름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그것도 악(嶽)자가 들어 있는 산이면서, 경기도 5악(嶽) 중 하나인 감악산의 장군봉이라…. 기세가 예사롭지가 않을 것임을 예감하지만, 가보는 것 말고는 달리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작은 비록 오르막이지만 낙엽들이 발목이 빠질 만큼 수북하다. 차라리 낙엽이 미끄럼판 역할을 하는지라, 걸음이 더디다. 하지만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는 게 산인지라 가보면 이 산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을 터이다.
사방이 진달래 천지다.
짧은 오르막길을 벗어나자 진달래가 휘황한 빛을 뿜어낸다. 온 사방이 진달래 천지다.

아뿔싸! 드디어 악산(嶽山)으로서의 진면목이 서서히 드러나려나 보다.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지고 그마저도 바위덩어리다. 저절로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일정 부분은 걷는 것이 아니라 기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진달래는 바위틈에서건 길 위에서건 한창이었다.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은 채 어디든 뿌리박을 한 뼘의 공간만 있다면, 그곳이 어디건 그들에게는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강인한 생명력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들의 삶이. 그들의 터전이. 그들의 생명력이 불이라도 붙은 양 온 산을 불태우고 있었다.
진달래가 불이라도 붙은 양 온 산을 불태우고 있었다.
평화로운 에너지는 없다더니 고난의 길이 전투력을 키우는 모양새다.

물레방아가 그렇듯. 아니 다른 모든 발전기가 그러하듯, 새로운 힘은 언제나 지키려는 관성과 나아가려는 동력 사이에 발생하지 않던가. 산이 난이도를 높여 사람의 접근을 거부할수록 사람은 새로운 힘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법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억지로 끌어올린 젖먹던 힘마저도 관성의 에너지라고 우기는 이유다.
특별히 험할 것도 없는 것이 우리네 산들의 성정(性情)이 아니던가.
하지만 알고 보면 특별히 험할 것도 없는 것이 우리네 산들의 성정(性情)이 아니던가.

거친 척 인상을 쓰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거칠지도 못하면서 얼굴만 붉히다 이내 속마음을 들켜버리는 떠꺼머리총각처럼... 거친 듯 보여도 속으로 들어가면 이내 푸근해지고 마는 것이 우리네 산들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한들, 저질 체력의 그에게는 꽃길이되, 꽃길이 아니었다. 떠꺼머리총각의 인상마저도 버거웠던 것이다.
붓꽃
개별꽃
바위틈에는 붓꽃이, 나무 둥치 아래에는 개별꽃이 피어 아는 체를 해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 반가울 틈이 없었던 것은, 불문곡직 저질 체력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좀 더 부드러운 환경에서 만났더라면 감격적인 해후를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곳이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인걸, 이방인이 탓할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이 있어야 할 장소에서 그들이 자아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자태로 생(生)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산은 암벽을 넘어서 오라 한다.
● 어찌 길이 꽃길만 걸을 것인가.

길은 여전히 산을 향하고 산을 오르는 여행자는 손발을 다 동원하고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 어찌 길이 꽃길만 있을 것인가.

새롭게 여행자의 각오(?)를 다진다. 뻔뻔스러움과 배짱으로 일단 가보자는 진격의 정신을 찾아 일깨우고, 두려움 없는 전진을 외쳐본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어설픈 위로와 위안은 낙오와 실패를 담보하는 보증수표일 뿐이다.^^

온갖 대단한 군사용어를 다 동원해 스스로를 다그쳐 보지만, 둘러보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길은 기껏해야 진달래의 손아귀 안에서 맴돌 뿐이다. 그들의 포위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길은 애당초 진달래의 땅이었던 것이다.

진달래꽃들이 지천인, 꽃길을 걷는 이는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양 온갖 수선을 떨며 오르고 있었지만 꽃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얼마나 가소로웠을 것인가. 어느 시인의 길은 '가도 가도 황톳길'이었지만, 지금 내 앞의 길은 '가도 가도 길은 진달래꽃길'이었다. 황톳길처럼 막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힘은, 들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장군봉이 보인다.
● 119로부터 걸려 온 전화

한동안을 허겁지겁 걷노라니, 산정이 머지않았음인지 가야 할 봉우리가 눈앞이다. 그때 울리는 전화벨소리~ 문자가 왔다.

어라! 119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안내 문자였다. 무슨 일이지? 119에서 왜 내 위치를 파악하셨나? 그럴 개연성이라고는 일도 없는데…. 살짝 걱정과 의문이 머릿속을 채워나가려는 찰나, 이유는 의외로 싱거웠다.

그 이유란 것이 주머니 속에 든 핸드폰이 지 맘대로 119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긴급전화로, 그것도 2통씩이나. 그런데 문제는 전화를 한 이가 아무 말 없이 끊으니, 119에서는 긴급 상황으로 인식을 했고,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역으로 내게 3통의 전화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119가 내게 전화할 당시, 그 지역은 통신 불가 지역이라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러자 119는 위험에 처했거나 조난으로 인식을 했었나 보다. 그 결과가 위치조회였고, 그 내역이 산이 높아지고 통신가능 지역에 이르자 내게 닿았던 것이다.
길에는 가도 가도 진달래꽃 천지다.
나 아니어도 바쁘신 소방대원 여러분에게 걱정과 부담을 드려 미안한 마음 가득이다. 사소한 실수와 지역적 특수성 때문이라 하지만, 여러 통의 전화와 위치 추적이라는 절차를 진행하면서 그분들은 다양한 매뉴얼을 점검하고,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 아닌가. 걱정 끼쳐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겼지만, 그분들의 노고에 새삼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그 와중에도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국가가 나의 안전에 대해 이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미안한 일이기는 하지만, 반면에 내 딴에는 얻은 소득도 있었다는 말이다.
소나무와 진달래
불탄 자리에서도 생명은, 더디지만 피어난다.

나아가는 길 곳곳에서 진달래는 자기를 알아 달라 카메라 셔터를 재촉하는 와중에, 다다다닥... 저 멀리 딱따구리도 저 있음을 알아달라고 부리가 부서져라 나무를 쪼아댄다.

봄은 그렇게 만물을 소생시키고 있었다. 바람마저도 얼마 전 그 바람이 아니다. 그 바람 속에는 꽃들의 향기도, 녹음에서 벗겨낸 푸른 물감도 녹아 있는 듯하다. 그러니 달고 싱그럽다.
진달래는 꽃을 뽐내고자 잎조차도 마다하고 피는 꽃이다.
그리고 새삼 깨닫는 것 중 하나는 진달래의 붉음이 바위나 잿빛 나무 등걸과 만나면 더 화사해진다는 사실이다. 역시 배경이 중요하고, 진달래는 그러한 배경을 활용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꽃이었던 것이다. 제 꽃을 뽐내고자 잎조차도 마다하고 피는 꽃이 아니던가.

그러니 소나무 틈바구니에서도, 바위 절벽에서도 진달래는 전혀 기죽을 이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산불 난 자리에서도 꽃은 핀다.
얼마를 더 걸어갔을까?

산 정상이 지척인데, 어라~ 언젠가 이곳에 산불이 났었다 보다. 나무의 밑동이며, 산자락 곳곳에 새까맣게 그을린 자국이 여럿이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산은 상처 위에 생명이라는 연고를 바르며 소생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재생의 노력이 절절한 만큼 인간의 부주의가 안타까워진다.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그래서인지 간만에 입주위로 버캐가 낀다. 대단한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닌데, 몸이 저 혼자 엄살이 심하다. 아직도 갈 길은 멀고, 또 험하다. 정신 차리자! 몸아~

봉우리로 가는 길은 밧줄에 의지해야 할 지점도 여럿이다. 지나온 산봉우리가 아득하다.
파주 감악산길 34
● 산에 오르려거든…

산을 오르다 보면 제일 경계해야 할 사항은 바로 자만과 만용이다. 나 역시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물론 전문적인 산악인도 아니고 그저 주변의 야트막한 산을 오르는 게 전부이지만, 어설픈 자만과 산을 얕본 죄로 응징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제 체력을 제대로 알지 못함이 문제였던 것이다.

자신의 체력을 돌아보지 않고 '그 정도쯤이야~'를 남발하는 순간 산은 가혹하게 응징을 한다. 문제는 낙상이나 낙오를 당하였을 경우, 산에서는 즉각적인 대처가 쉽지 않으니, 작은 부상에도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체력을 돌아보지 않고 만용을 부릴 때 산은 가혹하게 응징을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알고, 자기만의 보폭을 유지하면서, 그리고 자연을 향해 마음과 눈을 열고 그들과 더불어 걷노라면, 건강한 땀이 몸을 적시고, 그 땀 위로 흐르는 바람에서 우리는 건강한 삶을 경험하고, 삶의 희열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푸르른 산이 주는 자유와 작은 성취, 그리고 자연의 경이로움, 유별난 야생화의 그 앙증맞은 기적과의 대면은 또 다른 산행의 묘미이자, 덤이다.
장군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
● 장군봉에 오르다

장군봉이 눈앞이다. 장군봉이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중간 기착지인지라 여기만 오르면 감악산을 9할은 오른 셈이다.

부들부들 떨면서(^^) 수많은 바위를 넘고 넘어 다다른 곳. 장군봉이다.

가끔 산 정상에 올라보면 겨우(?) 내가 여기를 오르려고 그렇게 기를 쓰면서 올라왔나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지난했던 오르는 과정에 비해 산 정상의 초라함이 먼저 눈에 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살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어떻게 하지도 못하는 결과에 매달려, 스스로 땀 흘리며 지나온 과정을 너무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던지….

나 역시 그랬다. 걷기 위해 장군봉을 오른 것이지, 장군봉을 오르기 위해 걸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그렇게 오른 장군봉은 생각 외로 수수했고(?), 그저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한 커다란 바위덩어리일 뿐이었다.
절벽에 뿌리박고 사는 소나무와 진달래. 그들의 생명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 생명에게 박수를…

산을 오르다 놀라는 풍경 중 하나는 나무며 꽃들의 무한한 생명력과 마주할 때이다. 특히나 흙 한 줌, 물 한 방울도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긴 세월을 살아낸 그들을 만날 때면 저절로 박수를 치게 되고, 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다.

살아내야 한다는 그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그들은 이렇듯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을 부지하고, 나아가 너무도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바위 위에 뿌리박고 사는 양지꽃
바위 절벽 중간의 어느 한 뼘의 틈에서 생의 자리를 발견한 소나무며, 진달래. 그리고 또 다른 바위틈에서 화려한 봄날을 만끽하고 있는 노랑제비꽃은 그 자체로 생명이 가진 위대함이며, 우리에게 전하는 '그래도 살아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 다음은 임꺽정봉이다. 어여! 또 가보자~
바위뿐인 절벽에서도 생명은 자란다. 소나무의 늠름한 자태가 차라리 경이롭다.
▶ [라이프] '임꺽정의 난',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 파주 감악산 둘레길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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