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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MB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취재파일] MB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드루킹 관련 수사에 밀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조금씩 잊히고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의 학습효과 때문인지, 전직 대통령 구속이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5월 3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됐지만, 검찰 조사를 거치며 웬만한 것들이 다 나와 별로 새로울 게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수사 과정에서 나오지 않았던 피고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검찰과 피고인, 양측 논리가 팽팽하게 맞붙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진실에 좀 더 다가설 수 있는 겁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지만, 20여 년 이상을 제기된 이 전 대통령 관련 의혹의 진실에 좀 더 다가서기 위해 재판 실황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일반 시민 방청객이 아무도 없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검찰 소환 조사 때 지지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이 전 대통령의 불출석은 이미 예고돼 있었으니 더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처음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시작에 앞서 한 예상이었다.

오판이었다. 이 전 대통령의 첫 재판은 예정보다 20분 늦은 어제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됐다.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으로 가는 2층 출입구에는 2시부터 10여 명의 시민들이 줄을 섰다. 1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 혼자 온 사람부터 5~6명씩 무리를 지어온 사람까지 나이대나 구성도 다양했다.

오후 2시 20분쯤. 강훈 변호사와 피영현 변호사, 김병철 변호사 등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3명이 법정으로 들어섰다. 지난 3월 14일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당시에도 조사실에서 이 전 대통령 곁을 지켰던 3인이었다. 예고한 대로 이 전 대통령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준비기일엔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 공소사실 낭독에만 10여 분…핵심은 역시 '다스'
이명박 전 대통령
오후 2시 28분. 정계선 부장판사 등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 재판부가 법정에 들어서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350억 원대 횡령 및 110억 원 뇌물수수 등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16개 혐의를 7개로 범주화해 공소사실을 낭독했다. 그럼에도 공소사실 낭독에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까지 포함하면 7개 중 절반이 넘는 4개가 다스 관련이었다. 검찰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다스 실소유주’ 규명임을 증명하는 셈이었다.

검찰의 공소사실 낭독 이후 재판장인 정계선 부장판사의 검찰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대형 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서울중앙지법 부패전담부의 첫 여성 재판장인 정 부장판사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일정한 목소리로 특유의 억양을 섞어가며 쟁점을 정리했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들은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인지, 뇌물 관련 청탁의 유무 등 향후 재판 과정에서 법리적 쟁점이 될 사안들을 명확히 했다. 그리고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이 전 대통령 측의 의견이 이어졌다.

● MB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공소 사실에 대한 의견은 변호인단의 좌장 격인 강훈 변호사가 직접 이야기했다. 이 전 대통령은 사실 관계를 알지 못 했다거나 설혹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지 몰랐다는 게 핵심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공소사실 중 핵심인 다스와 삼성의 소송비 대납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스 비자금 조성 통한 업무상 횡령 혐의 관련해 비자금 조성 및 공모관계, 전달을 통해 업무상 횡령을 했다는 것 자체를 전부 부인합니다.”

“다스의 BBK 투자금 140억 원 회수와 관련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실 자체를 보고 받은 바 없습니다.”

“삼성의 다스 소송비 대납 문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송비 대납 사실 자체를 보고받거나 허용했거나 묵인했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삼성이 에이킨 검프에 지급한 돈이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한 것인지 (정상적) 삼성 업무의 대가인지 의문이 있습니다.”


●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입장 바뀌었나?…"바뀐 건 없다"

“몰랐다, 죄가 안 된다, 단순 실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입장은 바뀐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고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와 관련해선 입장이 바뀐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 전 대통령은 김성호 전 원장 시절 2억 원씩 2차례, 원세훈 전 원장 시절 2차례에 걸쳐 2억 원과 10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에 넘겨지기까지 10만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돈의 수수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어제 재판에서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강훈 변호사의 다음 발언 때문이었다.

“국정원 뇌물 부분은 4개 사건으로 이뤄져 있는데 변호인 측은 우선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에 전해져 공적으로 쓰인 데 대해서는 뇌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략)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2억 원 수수한 것은 보훈단체 지원금으로 쓰인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뇌물 사실 자체에 대해 법률적 다툼을 하고자 한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이 2억 원씩 2차례 돈을 전달했다는 것과 관련해서 1번은 사실 자체를 다투고, 1번은 받은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사실 관계를 다투려고 한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 구속 당시 MB 청와대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사실을 부인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 당시에는 6억 원에 대해선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취지로 입장이 다소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정에서 강훈 변호사의 발언 취지는 6억 원 중 4억 원에 대해서 수수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쪽으로 또 한 번 입장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훈 변호사는 재판 이후 이 전 대통령의 입장이 바뀐 건 전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강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은 10만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돈은 보고받거나 승인하지 않아 몰랐다는 입장은 그대로”라며, “대통령 모르게 수석들이 국정원 돈을 받은 게 문제가 된다면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부하직원들이 대통령 모르게 돈을 받았다고 해도 공적으로 쓴 부분이 뇌물인지를 법리적으로 다투고, 받은 돈을 어디에 썼다는 것인지 검찰에 증명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복사비만 3천만 원"…증거 인부 순서 놓고 벌어진 공방 뒤에 숨은 전략

어제 재판에서 혐의별 증거 채택 순서를 놓고 검찰과 피고인 측 간의 예상치 않은 공방이 벌어졌다. 다스 관련 증거부터 채택을 하자는 검찰과 다스 관련 증거는 양이 방대해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니 다른 것부터 하자는 변호인단 간의 의견이 엇갈린 것이다. 검찰은 변호인단에 신뢰의 문제까지 제기했다.

“저희는 서류 등사해 드린 지 10여 일이 지났고 5월4일까지 변호인들께서 증서 인부를 해 준다고 하니 선의를 믿고 저희 공판전략을 노출한 거나 다름없는데, 지금 와서 저희는 'ABC' 순으로 하고 싶다는데 ‘CBA’순으로 하고 싶다고 하니 너무 예상 못했던 바다.” (검찰)

이에 대해 강훈 변호사는 이렇게 답했다.

“이번 사건은 복사비만 3,000만 원 정도가 나오는데 이런 사건 겪어본 적이 없다. 양도 8만 페이지라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다. 양이 적은 것부터 충실히 보면, 증거에 부동할 부분이 적어진다. 시간을 끌자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형사 재판은 결국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재판부를 얼마나 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설득하느냐에 달려 있다.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재판부를 일단 설득시켜놔야 비자금 조성과 삼성 소송비 대납 등 핵심 혐의 입증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때문에 다스 관련 혐의부터 살펴보자는 것이다.

변호인단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혐의부터 다투고, 핵심 쟁점은 뒤로 미루는 게 당연히 유리하다. 시간이 지나면 재판부의 체력도 떨어질 것이고, 공판 진행이 상대적으로 덜 밀도 있게 진행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다. 강훈 변호사는 복사비와 시간적 제약, 검찰에 비해 적은 변호인 숫자 등 상황 논리를 대며 재판부를 설득하려 했다.

● 공판준비기일 한두 차례 더…본 재판은 23일 시작될 듯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이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입장은 관철되지 못 했다. 재판부는 다스 관련 혐의부터 증거 인부 등을 하기로 했다. 혐의 사실의 절반 이상이 다스 관련인 만큼 당연한 결정이었다. 다만, 검찰을 거칠게 공격하는 후배 변호사를 달래고, 검찰의 주장에 수긍하면서 한편으로 반대 논리를 제시하고, 때론 앓는 소리를 하면서 재판부를 설득하려 한 강훈 변호사는 노련해 보였다.

재판부는 증거 인부 순서와 증인 신청 여부 등 결정할 것이 많은 만큼 오는 10일 공판준비기일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다. 17일에도 한 차례 더 공판준비기일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출석해야 하는 본 재판은 23일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 변호인 측은 동부구치소에 수감된 이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좋지는 않다며, 본 재판에는 당연히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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