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믿고 보냈는데…부실 급식에 학대 의혹까지

[취재파일] 믿고 보냈는데…부실 급식에 학대 의혹까지
학대 피해 아동 학부모
“경악스러웠거든요.. 사실 국공립이라고 해서 더 믿고 안심하고 보냈던 건데”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는 '바늘 구멍' 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라면 믿고 보낼 수 있다는 부모들의 생각에 대기자는 넘쳐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새 정부 출범 당시,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공약은 수많은 '워킹대디', '워킹맘'들의 기대를 높였습니다. '2022년까지 국공립 어린이집을 매년 450개씩 확충해 이용률을 4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구체적인 목표치도 있었습니다. '바늘 구멍'과 같은 국공립 어린이집 입소였는데, 수를 늘려 구멍을 키우겠다는 소식은 반가울 수밖에 없습니다.

● 국공립 어린이집은 왜 인기가 높을까?

실제로 국공립 어린이집의 인기는 무척 높습니다. 2018년 3월 기준으로 어린이집 정원은 21만 9천여 명이고 이미 19만 2천여 명이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 대기자 수는 23만 6천여 명에 달합니다. 대기 인원이 어린이집 정원 이상으로 많은 겁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저렴한 비용, 믿을 수 있는 교사, 잘 짜여진 식단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원장 재량에 따라 원비를 책정하는 사립 어린이집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고, 유아교육관련 전공자나 임용고시를 통과해 국가교육공무원 자격을 갖춰야 교사를 할 수 있습니다. 또 나라에서 권장하는 식단에 맞춰 아이들 밥과 간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어린이집 운영 전반을 구청 등 지자체가 나서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부모들의 신뢰도 높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접한 두 곳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부모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한 곳은 아이들 권장 식단에 한참 못 미치는 간식과 밥을 제공했고, 한 곳은 교사의 거친 손길에 아이들이 다치기도 했습니다. 상식에 벗어난 모습으로 SBS 보도 이후 부모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 "선생님 배고파요."…아이들에게 미안했던 교사

강서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는 배 1개를 3등분 한 1쪽과 우유 3컵을 10명의 아이들에게 나눠 먹였습니다. 텅 빈 식판에는 깍두기처럼 잘게 잘린 배 조각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12명의 점심이라고 받은 사진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닭고기와 나물 반찬은 식기 바닥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조리사에게 원장 모르게 쌀을 조금씩 더 넣고 밥을 지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제보를 받아 취재에 나선 기자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린이집 교사
“저희는 고추장을 더 이상 안 먹어요.”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나면 본인들이 먹을 밥이 없어 굶거나 컵라면을 사다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근처 편의점에서 즉석 밥을 사 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찬은 주로 고추장이었습니다. 고기나 생선 반찬은 부족했고, 반찬이 남지 않으니 고추장을 반찬 삼아 밥을 먹었다는 겁니다. 어린이집을 퇴사한 교사는 고추장 반찬이 지겨워 더 이상 고추장을 먹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해당 어린이집에서 일했던 조리사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합니다. 조리사는 원장이 조리 업무에 지나치게 관여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콩나물 한 봉지를 사면 반씩 덜어 쓰라고 하고,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떡 개수까지 하나하나 정해줬다는 겁니다. 조리사는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해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합니다. 조리사는 결국 일을 그만뒀습니다.

● 토할 때까지 음식을 먹이고…팔꿈치 탈골되기까지

서초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도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어린이집의 한 교사는 앉아 있는 여자아이의 다리를 두 손으로 잡아끌어 밥상 앞에 앉힙니다. 아이는 뒤로 벌렁 쓰러지며 머리를 찧습니다. 울음이 터진 아이에게 교사는 숟가락을 갖다 대며 밥을 먹입니다. 아이는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교사가 떠먹이는 밥을 계속 먹다가, 결국 '왈칵' 토를 합니다. 교사의 거친 행동은 다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 있는 여자아이의 팔을 잡아끌어 앉히거나 남자아이의 입 주변을 꼬집기도 합니다. 이 어린이집을 다니던 3살 아이는 교사의 거친 손길에 팔꿈치가 탈골되어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린이집 관계자 몇 명이 용기를 내어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학대 의심 교사의 문제 행동을 원장도 알고 있었지만, 쉽게 항의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합니다. 일단 어린이집 내에서 원장의 위세가 '절대적'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원장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교사나 조리사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교사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원장에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 학대 어린이집 교사
학부모들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했던 것을 흔한 투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팔이 빠졌을 때는 교사의 실수로만 생각했지, 학대를 의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믿고 보낸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학대 정황을 뒤늦게 알아차린 학부모들은 진정을 냈고 경찰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또 해당 어린이집 원장의 보조금 횡령 의혹도 제기하며 진정을 접수했습니다.

● 위탁 운영하는 국공립 어린이집, 이대로 괜찮을까?

우리나라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스웨덴 등 복지국가와 달리 80% 이상을 민간 업자나 법인 단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리 주체인 구청 등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위탁 업체 모집 공고를 내 위탁할 곳을 선정하거나 재심의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교사들을 채용하는 등 어린이집 운영하는 것은 원장의 몫입니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좋은 민간업자를 선별하고 민간업자가 서비스를 잘 제공하는지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가 잘 마련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구에서 국공립 보육시설을 일상적으로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하고, 인력도 부족하다. 일상적으로 점검이 이뤄지지 않으니 문제가 누적될 수 있고 조기에 발견하기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초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정기점검을 나서지만 일상적인 점검이 이뤄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마저도 모든 어린이집을 정기 점검할 수 없고, 평가인증점수 등에 따라 우선순위를 둬 찾아간다고 합니다. 문제가 된 어린이집은 작년에도 정기 점검을 했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점검을 하면서 학대 의심 정황을 미리 알지 못했냐는 질문에 대해 구청의 한 관계자는 "민원 사항이 아니라면 미리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라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서 지자체들은 너도나도 확충 계획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수요를 만족할 수 있도록 국공립 어린이집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관리·감독하고 운영되는지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어린이집 부실 운영의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 몫이기 때문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