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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히잡 쓴 아랍 소녀들이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는 이유

[취재파일] 히잡 쓴 아랍 소녀들이 '한국 아이돌'에 열광하는 이유
며칠 전 요르단 현지인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해주려고 수도 암만에 있는 한국 식당을 찾았습니다. 그때 건너편 테이블에서 비빔밥을 먹고 있는 히잡 쓴 여인 둘을 봤습니다. 각종 나물 반찬들은 물론이고 비빔밥을 고추장에 아주 맛있게 비벼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감탄하던 차였습니다. 더욱 놀란 건 그중 하나가 "저기요, 아주머니"라고 한국인 주인을 부르며 빈 접시에 반찬을 수북이 채웠을 때였습니다. 너무도 신기한 나머지 통성명을 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무나였습니다. 몇 개의 단어 빼곤 사실 한국어를 하지 못했지만, 밥 먹는 모습만큼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습니다.
'요르단 한류 사랑' 페이스북 채널 운영자이자 두 아이 엄마인 무나는 최근 팔로워 1만 3천 명을 달성한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무나는 요르단에서 K-POP을 비롯해 여러 가지 한국 소식을 전달하는 페이스북 채널인 '요르단 한류 사랑(https://web.facebook.com/Jordan.kpop.lovers)' 운영자였습니다. 2011년 채널을 운영한 이래 올해 4월 기준으로 팔로워 수가 1만 3천 명을 넘었습니다. 이는 요르단에서 최대 규모의 K-POP 채널입니다. 아랍어권을 통틀어서도 K-POP을 다루는 유명 채널들의 팔로워가 가장 많아야 10만 명 정도인 걸 감안하면 요르단이란 작은 단일 국가에서 팬들의 결집력이 매우 강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르단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에 주요르단 한국대사관이 K-POP과 관련한 행사를 할 때면 반드시 함께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먼저 그녀에게 현재 요르단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룹을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손가락 셋을 들어 보였습니다. 하나는 BTS(방탄소년단)이고 두 번째는 엑소, 세 번째는 슈퍼주니어라는 겁니다. 팬클럽 운영 초기에는 슈퍼주니어 팬이 대부분이었는데 엑소와 BTS가 등장하면서부터 후발 두 그룹의 팬들이 서서히 많아졌고 현재 팬클럽의 세력을 양분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벌였던 K-POP 페스티벌 모습
이어 요르단 젊은이들이 K-POP을 대체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무나는 팬들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대체로 한국 아이돌들이 심장이 멎을 만큼 멋있고 노래도 아랍 대중음악들과 다르고 새롭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무나를 만나기 전에도 요르단에 있는 몇몇 K-POP 팬들에게서 들었던 대답과 대동소이했습니다.

종합해보면 그들은 한국 아이돌 멤버들이 지닌, 어려 보이면서도 아기처럼 보이는 뽀얀 외모(?)를 선호합니다. 그들은 아이돌 사진을 보면서 아랍어로 '라띠이프'라는 형용사를 쓰곤 하는데, 영어로 치면 'cute', 귀엽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그들은 자기네 아랍 대중음악을 진부하게 여기며 좋아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아랍 대중음악들은 아랍 음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한국 대중음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아기 같은 귀여운 외모와 칼군무, 아랍 음악과 차별되는 댄스 음악이 아랍 소녀들을 사로잡는 요소들로 보입니다. 
지난해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벌였던 K-POP 페스티벌 모습
또 하나, 무나가 한국 아이돌들의 매력으로 꼽은 건 '꾸준한 활동'이었습니다. 한국 그룹들은 쉼 없이 활동하고 앨범을 내면서 팬들이 한눈을 팔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들이 너무 좋다고 설명했습니다. 무나는 아이돌 그룹 '틴탑'의 골수팬입니다. 2010년 틴탑이 데뷔했던 시절부터 좋아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발매한 모든 앨범을 사 모았다고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무나는 13살이 되던 해인 2008년 K-POP 팬이 됐고, 이후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페이스북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정기적으로 친목 모임을 가져왔습니다. 장터를 열어서 아이돌 관련 상품이나 스스로 그린 팬아트를 주고받기도 하고, 때로는 공연 무대를 마련해 서로 갈고닦았던 K-POP 노래를 부르고 아이돌 춤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K-POP 행사를 준비하고 기획할 때마다 머나먼 요르단까지 와서 자리를 빛내줄 수 있는 한국 아이돌이 없다는 점이 늘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한국 문화를 즐기고 나누는 행사인데 아이돌은커녕 일반 한국인조차 없어서 난감할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나마 4년 전 한국 드라마 '미생'을 촬영하려고 한국 배우들이 요르단에 왔을 때 이곳 K-POP 팬들이 제일 설레고 기뻐했다고 전했습니다. 올해는 오는 4월 27일에 암만 시내에서 '2018 K-POP 페스티벌'를 열 계획입니다. 무나는 저더러 행사에 오면 엄청난 팬들의 열기를 직접 느낄 수 있을 거라며 초대했습니다. 저는 가기로 흔쾌히 약속했습니다.
지난해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벌였던 K-POP 페스티벌 모습
K-POP 페이스북 채널을 운영하면서 뭐가 어려우냐고 묻자 관련 소식을 얻는 것이라고 그녀는 답했습니다. 무나는 직접 한국어를 배워보려고 했지만,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로 된 자료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물론 영어로 된 연예계 뉴스나 관련한 홈페이지를 찾기도 하지만, 최신 소식이나 깊이 있는 정보를 얻는 것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주요르단 한국 대사관에서 정기적으로 K-POP 소식을 번역해서 주는 게 제일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한국 아이돌 그룹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바람도 말했습니다.

"아이돌 오빠들이 요르단을 찾아와줬으면 무척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영상통화 식으로라도 팬미팅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무나는 과거 K-POP 행사를 기획했던 자료들을 보여주며 한국 대사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히잡을 쓰고 아랍어를 말하는 이곳의 소녀들. 그들은 오늘도 한국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보며 '오빠'를 외칩니다. 또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발음조차 어려운 한글 랩 가사를 부르려고 애씁니다. 한국인인 저보다도 훨씬 더 해박한 한국의 연예계 소식을 알려줄 때도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K-POP 팬은 요르단 전체 인구 중에서 극소수이긴 합니다. 그러나 머나먼 요르단 소녀들에게 아무런 연도 없는 한국이란 나라에 무한한 호감을 주고, 나아가 한국어를 배우게까지 하는 K-POP의 힘은 실로 상상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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