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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굽잇길의 설렘과 그리움 - 온달평강 로맨스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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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첫걸음이 문제다

도보 여행에서는 언제나 첫걸음이 문제다. 게다가 걷고자 하는 길의 시작이 오르막을 향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아! 그 막막함이라니…. 다리에 힘은 빠지고 맥박은 저절로 거칠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의와 반문…. "꼭 걸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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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렇게 편리에 길들여진 몸일망정 막상 길 위에 몸을 부려놓기만 하면, 몸은 이내 그 태업의 의사를 접고 체념과 오기를 동시에 발동시키면서 길에 순응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짧은 시운전 과정을 거치기만 하면 길과 몸은 원래 한 몸이었던 양 이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마침내 그들은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에스컬레이터 위를 걷는 양 저절로 움직이게 된다. 둘레길이 가진 묘미다.

굳이 높은 등성이를 오르는 것이 아닌지라 그가 설사 저질체력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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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듣는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

봄이라 했건만 봄의 기척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졌다.

4월이 머지않은 날이었음에도 찬바람이 매서웠던 그 날, 단양의 <온달길>에는 마치 소금이라도 뿌려놓은 듯 뽀얀 잔설이 길을 가리고 있었다. 봄과 겨울은 산에서, 그 산이 품고 있는 길 위에서도 때를 잊은 듯 낯선 동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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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길은 <소백산 자락길> 중 6자락길로, <온달평강 로맨스길>이 정식 명칭이다. 여기서 "자락"은 "길게 뻗어 나간 산이나 강 따위에서 갈라져 나간 갈래"를 말하는데, "산자락"의 그 "자락"이다.

경북 영주시, 봉화군, 충북 단양군, 강원도 영월군의 3개도 4개시·군에 걸쳐 있는 <소백산 자락길>은 소백산을 한 바퀴 감아 도는 둘레길로, 전체 길이는 360리, 약 140여km에 이르고, 모두 열두 자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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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평강 로맨스길>은 경남 함양의 지안재와 더불어 구비길로 유명한 보발재에서 시작된다. 보발재까지 태워주시는 택시 기사님의 입담이 구수하다. 온달길은 가을이 더 좋다고, 가을에 다시 꼭 오라고 부탁 아닌 부탁을 하신다. 마침 보게 된 보발재의 단풍 사진에 새삼 감탄사를 발하게 된다.
보발재의 단풍 (사진=한국관광공사)
# 굽잇길에는 설렘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온달길은 대부분의 길이 임도(林道)다. 그래서 길의 폭이 넉넉하고 또 편안하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소요하듯 걸으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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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서자, 공연히 가슴이 시원해지고 차가운 날씨 탓인지 정신까지 명료해진다. 한편으론 아무도 없는 이 너른 공간을 홀로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까지 느껴진다.

고요와 침묵이 점령한 이 공간에 도보 여행자와 간간이 부는 바람만이 유이(唯二)한 소음유발자다. 발밑에는 한 철을 길 위에서 보낸 낙엽들이 바스락대며 무너져 내리고, 산 위에는 산맥을 넘어온 바람에 메마른 나무들이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달그락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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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굽이굽이 이어진다.

길을 걸을 때 모퉁이를 돌아 이어지는 굽잇길을 만날 때면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든다. 쭉 뻗은 길이 단편적이면서 무료하고 또 지나치게 도발적이라면, 굽이굽이 돌아가며 이어지는 굽잇길은 수줍은 처자의 몸짓인 듯 알 수 없는 설렘과 그리움을 품고 있다. 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길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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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으로는 구비마다 알 수 없는 설움과 아픔을 발견할 때도 있는데, 양장같이 길게 이어진 길이 어지러운 삶의 흔적처럼 보여서인지도 모른다. 늙으신 어머니의 긴 회한처럼 그렇게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은 우리네 인생과 닮아 있는지라, 어쩌면 구비는 성장의 한 켜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의 나이테마냥 그렇게 맴을 돌며 한 켜 또 한 켜씩 세월을 품고, 그 세월 속에 못다 한 삶의 이야기를 쟁여놓으며 그렇게 돌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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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아직도 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들강아지가 아는 체를 한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그래도 봄날이라고 솜털 가득한 얼굴을 내밀며 눈인사를 건넨다.

그럼에도 길은 아직 봄을 실감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초록의 날들은 아직도 먼먼 나중의 일이라도 되는 양 기척조차 없다. 대궁만 남은 잡초들이 길 양편으로 늘어서 행인에게 길을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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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다. 실수로(?) 챙겨온 장갑이 요긴하다. 설마 4월이 머지않은 봄날에 추위 때문에 장갑을 낄 줄이야 그 누가 알았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음지에서는 잔설이 낙엽 속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더니, 가야 할 그때를 알지 못하는 지난 계절의 심통에 봄은 안절부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개만 내민 채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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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뿔싸! 잔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낮은 절벽의 한 귀퉁이에는 한겨울에도 보기 힘들었던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봄 구경을 하겠다고 나섰더니 사실은 겨울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즈버~ 남도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꽃들의 기척은 정녕 남의 나라의 이야기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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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추위에 떨고 있는 주위 풍경에 눈이 간다. 특히나 아직은 봄이 멀게만 느껴지는 헐벗은 나무들이 애처롭다 못해 짠하다.

그런데…. 찬찬히 보노라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도 싶다. 그들은 당연히 헐벗은 몸으로 오들오들 추위에 떠는 불쌍한 모습이어야 하는데. 나름 의외다 싶을 정도로 꿋꿋했던 것이다. "그래! 춥다. 그래서 뭐?" 하는 식의 도발적 뻔뻔함이랄까? 어떤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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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알 수 없는, 나름 기상 같은 어떤 무엇이 엿보였던 것이다. 일종의 당당함이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리지는 않겠다는 결기 같은 것도 드러나 보인다. 무심코 바라본 나무들에게서 그 옛날 가난했지만, 자존심 강하고 깡다구마저 좋아 작은(?) 골목에서는 나름 큰소리치던 옛 친구를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비록 험한 세월일지라도 그 세월을 헤쳐 나가는 힘은 누구에게나 있었던 것이다. 산 위의 잡목도, 가난했던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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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품을 팔아 이곳에 있는 이유

길이 높은 까닭에 저 멀리 산봉우리를 벗 삼아 길을 걷는다. 소백산맥의 준령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걷는 이와 기꺼이 동행을 자처함이 반갑다.

가끔은 어떤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열리고 마음은 저절로 환해진다.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뿌듯함이 있다. 그 뿌듯함이라는 것의 정체는 새로운 것과의 만남일 수도, 부족한 나와의 조우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새로운 발견이다. 무심결에 발견되어지는 것들은 계획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던지라, 그래서 또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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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굳이 멀리 발품을 팔아 여기까지 온 이유 같은 것이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마는, 느긋하게 걷다 보면 그 이유들이 저절로 내 안으로 들어와 쌓인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걷고 있구나 하는 놀람? 뭐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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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 중 하나는 존재의 확인이다. 의식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공존의 의미와 공존의 의미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기에 새롭게 다가서는 존재의 의미. 존재마저도 관계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는 어설픈 짐작. 그리고 존재를 의식함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 자유란 무언가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틀 안에서 배려하고 배려 받는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또 문득문득...

그렇게 짧은 생각의 조각들과 길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찾아낸 것"이 아니라 걷는 순간순간 그냥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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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다 마음의 문제였구나

얼마를 더 걸었을까? 길 자장자리에 평상 하나가 놓여 있다. 이쯤에서 쉬어가라는 뜻일 게다. 배낭을 내려놓고 물 한 모금을 들이키며 먼 산을 바라보자, 걸으면서 느끼던 고요와는 다른 고요를 깨닫게 된다. 소음은 소음이되 소음이 아닌 특별한 소음이 녹아있는 고요, 마치 명상음악을 틀어놓은 한밤의 고요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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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던 새들이 한웅큼씩 떨구고 가는 지지배배 울음소리며, 마른 잎들이 사각대며 서로의 몸을 부딪는 소리는 가벼우면서도 깊고 또 아득하다. 행여 바람들이 떼 지어 몰려올 때면 숲은 제 안에 가두어두었던 소리를 쏴아~ 하고 토해내는데, 차라리 장중한 오케스트라의 클라이막스의 느낌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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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있으되 소음이 아닌, 고요의 공간 속으로 모두가 가라앉는 와중에, 소리들은 마음속에 하나둘 와서 박힌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행운마저도 삶의 크기였으며, 삶은 반드시 가진 것의 크기를 재는 게임만은 아닐 수도 있음을 아슴푸레하게나마 인식하게 된다. 결국은 마음의 크기였구나, 스스로의 협량한 마음이 문제였구나, 결국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여기에서도 정답임을, 웃프게(?) 깨닫게 된다.

그러다 문득, 고요와 고독은 자웅동체의 다른 얼굴임을 깨닫게 된다. 혼자라는 사실이 던져주는 적막함은 고독과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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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독은 나를 보호해 주는 한편, 끊임없이 베어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나는 때때로 적극적으로 고독을 찾는다. 나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고독이란 얼마쯤은 불가피한 환경이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마치 산(酸)이 병 밖으로 넘쳐흐르듯 고립감은 사람의 마음을 침식한 끝에 녹여버릴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양날의 칼과 같다. 고독은 나를 보호해 주는 한편, 끊임없이 베어낸다.”며 작가인 자신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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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삶을 반추하고 성찰의 기회를 주지만, 한편으론 외로움이란 이름으로 다가와 삶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는 그의 안목은 적확하다. 실제 "혼자"라는 전제를 품은 고요나 고독은 훈련이 필요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훈련되지 않은 누구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폐쇄나 감금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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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미셀 푸코가 말하는 침묵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느껴진다. 그에게 침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의식”이라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긴 여정에서 온전히 자신을 돌아볼 휴지(休止)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은 삶에 대한 반추이자 성찰을 위한 여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침묵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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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독과 침묵의 시간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탐험하고 알아가는 시간과 기회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과정인 것이다. “인생의 여정에서 반추의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참된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충고는, 그래서 주효하다.

생각이 많았음인가. 어느 순간 길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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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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