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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부 메일에 기록된 '삼성의 평창올림픽 유치 로비'

[취재파일] 내부 메일에 기록된 '삼성의 평창올림픽 유치 로비'
'삼성' 'IOC' '평창올림픽' '로비' '후원' '비밀계약'

삼성 내부 관계자들의 2010년 이메일을 관통하는 단어들입니다. SBS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의 검찰·특검 수사자료 일부를 취재 과정에서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자료를 분석하다 흥미로운,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면 약 2개월 후인 2010년 2월부터 12월까지 삼성 수뇌부에서 오고 간 이메일입니다. '삼성' 'IOC' '평창올림픽' '로비' 같은 단어가 곳곳에 박혀 있었습니다. 추려보니 관련 이메일은 모두 139건이었습니다.

수시로 오고 간 지시와 보고. 중심엔 황성수 당시 삼성전자 상무가 있었습니다. 위로는 오너 일가인 김재열 제일모직 전무(현 제일기획 사장)와 삼성 사장단, 아래로는 해외에 근무하는 직원까지…조직은 높고 넓었습니다.

● 삼성에 보고된 '디악리스트'…"평창유치 로비하겠다"

2010년 5월 7일. 이영국 당시 삼성전자 상무는 삼성 관계자들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보냅니다. "사흘 뒤 회의 때 쓸 것"이라면서 "우리 리스트와 오버랩 여부 등 표기한 표 1장 작성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 이메일엔 'Confidential list(비밀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27명의 IOC 위원의 영문 이름이 빽빽하게 적혔습니다. 당시 올림픽 개최지 투표권을 가진 인물들이었습니다.

눈에 띄는 건 이 메일을 보낸 사람입니다. 파파 마사타 디악.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회장이자 당시 아프리카 IOC 위원이던 라민디악의 아들입니다. 삼성은 이 명단을 '디악 리스트'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대체 이런 이메일을 왜 보냈을까요. 12월 2일, 황성수 상무가 윤주화 경영지원실 사장에게 보고한 이메일엔 리스트의 목적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라민디악이 아들 파파디악을 대리인으로 세워 리스트의 26명(본인 제외, 육상 관련 21명·육상 외 5명)을 직접 찾아다니며 평창을 위한 로비활동을 하겠다는 겁니다.

방송에선 이름의 맨 앞 자만 보도했지만, 실제 명단에 거론된 IOC 위원들은 대부분 IAAF의 전·현직 임원들이거나 아프리카 지역 IOC 위원들이었습니다. '국제 스포츠계의 거물' 라민디악이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걸로 보이는 명단인 셈입니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If France loses(프랑스가 진다면)'라고 쓴 대목입니다. 13명의 IOC 위원들이 이 항목에 포함되어 있는데, 당시 평창의 경쟁 상대이던 프랑스 안시가 1차 후보에서 탈락하면 포섭할 수 있는 IOC 위원의 이름을 적은 걸로 해석됩니다.
파파디악, 삼성에 IOC 위원 로비자금, 성공보수까시 요구
공짜는 없었습니다. 라민디악·파파디악 부자는 삼성에 대가를 요구합니다. ① 다이아몬드리그에 3년 동안 950만 달러 후원 ② 라민디악 회장의 정치 홍보 자금 150만 달러 ③ 2011년 1월부터 6월까지의 캠페인 비용 150만 달러를 달라는 겁니다.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메일 분석 결과, 삼성과 파파디악 간 협상은 굉장히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삼성 관계자와 파파디악도 서울과 베이징 등에서 여러 번 만났습니다.

양측은 논의 끝에 결국 2010년 12월 27일, '합법으로 포장된' 합의안을 도출합니다. 황성수 상무는 이 합의안을 "표면상으로는 아프리카 시장 활성화를 위한 스포츠마케팅 전략에 의거 아프리카 총괄 차원에서 AAC 가 주관하는 모든 육상대회를 후원하는 것" "계약 배경에 라민디악 혹은 그룹이 완전히 배제되어 있어 주어진 상황하에서는 가장 안정한 방법"이라고 평가합니다. '표면상' '배경에 라민디악 혹은 그룹이 완전히 배제' 등의 표현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SBS는 아프리카 현지 취재를 통해 이 계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강력히 추정되는 삼성과 아프리카육상연맹(AAC·CAA) 간 후원계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수상한 마케팅 계약도

후원 계약 외에, 마케팅 계약 형태로 돈이 건네진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2010년 8월 15일, 이영국 상무는 올림픽 관련 해외 정보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동구권 스포츠계 유력인사인 A 씨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빨리 보내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김재열 전무는 A 씨와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A 씨가 설립한 마케팅회사 관계자의 명함이 건네지는데, 삼성은 이 회사와 제일기획 간 홍보 대행 계약을 추진합니다. 10월 18일. 황성수 상무는 김재열 전무에게 "5천만 불 규모의 협상안을 준비했고 한 달 뒤 미팅을 진행한다"고 보고합니다. 이후 의미심장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삼성은 A 씨에게 섭외를 부탁할 IOC 위원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고, 11명의 IOC 위원에 대한 성향을 A 씨에게 묻는 질문지도 작성했습니다. 민감한 자료도 손에 쥡니다. A 씨가 버진아일랜드 소유의 회사를 통해 400만 유로의 로비자금을 계약했던 과거 계약서 사본도 확보한 겁니다. 삼성과 A 씨 간 관계가 급물살을 탄 것으로 보이는 근거들입니다.

삼성과 A 씨가 맺은 계약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취재진은 국제투명성기구가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국제스포츠계의 부패 문제를 분석한 보고서인데, 마케팅 회사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했습니다. 합법적으로 보이는 자금이 마케팅 계약 형태로 흘러가서 실제 뇌물이나 로비자금으로 기능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삼성은 해당 계약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 "그룹 드러나지 않게" 스스로 숨으려 한 삼성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삼성이 가장 신경 썼던 일 중 하나는 자신을 감추는 것이었습니다. IOC 윤리규정상 삼성은 특정 지역의 유치활동을 지원할 수 없습니다. 로비 자금을 회삿돈으로 썼다면 법적인 문제에 엮일 수도 있습니다. 삼성 역시 이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걸로 보입니다. 스스로 로비를 감추려는 정황이 내부 이메일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김재열 전무가 2010년 10월 19일, 황성수 상무에게 보낸 이메일입니다. '조심'이란 제목의 이 메일에서 김 전무는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의 뇌물 스캔들을 사례로 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합니다. 당시는 삼성이 IOC 위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던 시기였습니다.

삼성은 곧바로 해외 거점장들이 IOC 위원을 접촉할 때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합니다. "(IOC) 위원이 취업 알선·반대급부 등을 요구할 경우 긴밀히 협의하여 대응할 것"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은 대사관이나 제3자의 추가 개입은 금지" 등의 구체적인 지시가 해외 거점장들에게 전달됩니다. 삼성 제품 선물에는 금지령까지 내렸습니다.
삼성, IOC 위원 명단 로비리스트 메일링, 파파디악
● 핵심은 정경유착…"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9년 12월 특별사면됐습니다. "평창 올림픽 유치에 힘을 보태달라"는 게 명분이었습니다. 이듬해 2월,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 복귀합니다. 그리곤 일련의 과정이, SBS의 보도대로 진행됐습니다.

검찰은 지난 9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삼성이 2007년 11월부터 2011년 11월까지 뇌물을 제공하고 특별사면 등 혜택을 누렸다고 판단했습니다. 지속적으로 뇌물이 건네졌고, 유무형의 특혜가 꾸준히 베풀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전형적인 정경유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스 소송비 대납만이 특별사면의 유일한 대가라고 보는 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평창 올림픽 유치 로비 역시 같은 선 위에 있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삼성이 이명박 정권 내내 누렸던 혜택 역시, 특별사면 외에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희 회장이 IOC 위원 자격으로 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과 삼성이 회사의 자금과 조직을 동원해 IOC 위원에 대한 로비를 벌이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둘을 구분할 능력만큼은, 우리 사회가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웨덴에서 만난 당시 IOC 위원인 아르네 융퀴스트는 "평창은 이미 몇 차례의 도전으로 IOC 위원들에게 매우 잘 알려진 후보지였고, 평창이 개최지로 확정됐을 때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취재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얘기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삼성의 로비 없이도 올림픽을 유치할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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