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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정신 잃을 때까지 폭행당해…직장 내 데이트폭력, '개인의 일'인가?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8.04.10 17:14 수정 2018.04.10 17: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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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정신 잃을 때까지 폭행당해…직장 내 데이트폭력, 개인의 일인가?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같은 병원 의사인 남자친구로부터 수년간 상습 폭행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피해 간호사는 인대가 두 번이나 끊어지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맞아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피해자는 가해 남성으로부터 약물로 살해하겠다는 협박까지 당했다고 호소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가해 의사의 폭행에 관해 징계를 논의하는 위원회를 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병원 밖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이고 '개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병원 고충 처리로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과연 이 같은 병원 측의 처사는 적절한 걸까요?

■ 병원에서 만난 두 사람…갈수록 심해진 남자친구의 폭행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 A 씨는 2012년부터 같은 병원의 전공의와 사귀게 됐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났을 때부터 남자친구의 폭행이 시작됐고 그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관련 사진A 씨는 반복된 폭행에 정신을 잃고 자신이 일하던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출동했던 119 구급대원의 구급기록에는 혼수상태에 빠진 A 씨가 출동한 구급대원을 붙잡고 "때리지 말라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습니다.
관련 사진A 씨에 따르면, 남자친구는 폭행 뒤 값비싼 반지를 사주며 결혼하자고 하는 등 온갖 회유를 늘어놨습니다. 그게 안 되면 협박을 일삼았고 폭행 사실이 병원에 퍼지지 않도록 매번 거짓말을 강요받았다고 A 씨는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가해자는 A 씨의 치료기록을 몰래 열람해 진술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사진■ '데이트폭력' 가해 의사 징계한다더니…입장 바꾼 병원

다년간의 폭행에도 해당 의사는 진료기록 무단 열람한 사실만으로 2개월 면허정지 처벌을 받았습니다. A 씨의 전 남자친구 가족 측은 폭행과 이로 인한 상해가 당사자 합의를 통해 이미 끝난 사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전 남자친구는 해당 병원에서 수련의를 마치고 전문의 자격까지 취득해 현재 공중보건의로 군 복무 중입니다. 반면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던 A 씨는 지난해 5월 병원 일을 그만뒀습니다.

그렇다면 왜 당시 폭행에 관해서는 징계가 이뤄지지 않은 걸까요? 동국대 일산병원 측은 폭행 의사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병원 내의 업무상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 집에서 발생한 데이트폭력이었기 때문'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습니다. 법률전문가의 의견에 따랐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또 피해 간호사가 폭행 사실과 이유를 지속적으로 은폐해서 피해 사실을 즉각 인지하기는 불가능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2년 전, 병원 관계자들은 피해 간호사와의 면담에서 "직원이 병원 외부에서 폭행 사건에 연루됐더라도 징계가 마땅하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또 당시 녹취록에는 병원이 이전에도 폭행 피해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는 정황도 담겨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SBS 취재진은 동국대 일산병원에 취재를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거부한 상황입니다.
*그래픽
녹취록 1 실루엣 처리
[당시 병원 지원팀장] "밖에서 때리고 안에서 근무해보세요"
[당시 진료부장 (현 동국대 일산병원장)] "그럼 잘리는 거지"
녹취록 2 실루엣 처리
[당시 진료부장(현 동국대 일산병원장)] "수간호사도 지금 모르는 거예요?"
[병원 관계자] "아는데...일단 최근에 일어난 폭행은 원외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혼자 해결을 잘했으면 하는 것 같더라고요" //■ 직장 내 데이트폭력, '개인의 일'로만 치부해도 되나…

이처럼 같은 직장 동료 사이에 벌어진 데이트폭력인데도 개인 일로 치부돼 조직 차원의 대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주변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자체가 피해자에게 힘든 일이고, 가해자가 상급자일 경우 피해자는 더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동국대 일산병원의 경우, 가해 의사와 피해 간호사의 소속부서는 달랐지만 병원 내에는 가해 의사와 같은 학교 출신인 지인이 상당수였습니다. 지난 2016년, 병원 측과 피해 간호사의 면담에서도 이런 어려움이 제기됐는데요. 당시 병원 측은 "병원 안에서는 위험할 게 별로 없으니, 마주쳐도 피하지 말라"는 입장만 내놨습니다.

한국성폭력 상담소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SBS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피해 여성들에게는 직장 내 데이트 폭력도 외부에서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폭력이고, 어떤 폭력은 다루고 어떤 폭력은 다루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굉장히 무책임한 처사"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
[SBS 원종진 기자]
"단지 폭행이 밖에서 일어났다고 조직이 눈 감는다면 피해자 점점 더 위험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두며 조직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태도 전환이 필요합니다" //
(취재: 원종진, 신정은 /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안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