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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 문경새재 과거길 ③

[라이프]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 문경새재 과거길 ③
# 문경새재 넘어갈 제 /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안개가 스미듯 밀려든다. 길은, 또 산은 시나브로 안개의 장막 너머로 멀어져간다. 그래서일까 가야할 길은 더 먼 듯만 하고, 마음은 저절로 바빠진다. 하지만 달리 방도도 없다. 길 위에 있는 한 길은 계속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면서... 그냥 가보는 것이다.
- 문경새재길 47-1
문득 안개의 행렬을 헤치며 걷는다는 독특한 경험 때문일까. 너울대며 흐르는 안개 너머로 왠지 애간장을 녹이는 피리 소리가 앞장을 서고, 뒤이어 구슬픈 노랫가락 한 소절쯤은 들려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고요와 침묵에 장악당한 회색의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는 귀를 열어 환청이라도 들어야 할 것 같은 으스스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콧노래라도 흥얼거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마저 생긴다. 아마도 그 노래는 아리랑이 적당할 것이다.
- 문경새재길 47-2
그 옛날 재를 넘던 나그네가 지친 몸을 나무 등걸에 의지한 채로, 애끓는 폐부 저 아래에서부터 끌어올린 절절한 목소리로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오 /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며 맺히고 쌓인 정한들을 쏟아내던 그때처럼 말이다. 일설에는 ‘아리랑 쓰리랑’은 ‘영혼을 맞이하고, 이별의 슬픔을 참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니, 이 고요함과의 이별을 위해서라도 아리랑 한 소절쯤은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느껴진다.
 
문경새재 아리랑비(碑)
실제 문경새재는 아리랑의 고향이기도 하다. 문경새재 아리랑이 그 주인공이다.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홍두깨 방망이 팔자 좋아 / 큰 아기 손아귀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 제 /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옛길박물관에 전시된 아리랑 음반들
구한말의 선교사 헐버트는 아리랑을 서양음계로 처음 채보하여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1896년 2월호)'에 실었는데, 그 아리랑이 바로 문경새재 아리랑이었던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문경새재 아리랑은 흥선대원군이 추진했던 경복궁 중수에 동원된 인부들이 그들의 아픔과 그리움을 담아 부르던 노래였는데, 그 노래가 널리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되었다고 한다. 
선교사 헐버트가 채록한 아리랑 서양음계와 소개된 잡지
하지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길고 험한 문경새재를 넘다보면 어느 결엔가 고단한 몸에 배인 땀과 눈물을 비집고 노랫가락 한 소절쯤은 저절로 흘러나올 듯도 싶다. 이 길고 무료한 산길을 노래마저 없다면 무슨 낙으로 걷는단 말인가. 그들의 신산한 삶은 노랫말이 되고, 애절한 마음일랑은 가락이 되어 그들의 지친 발걸음에 얹혀 산을 넘고 재를 넘어 흘러 흘러갔을 것이다. 
‘문경 초점‘ 표지석
안개 속을 더듬으며 얼마를 더 걸었을까. 다시 옛길이 나타난다.
 
문경새재가 낙동강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문경 초점‘ 표지석이 보인다. 느닷없는 장소에서 만나는 의외의 정보다. 낙동강의 발원지가 문경이라고? 강원도 태백이 아니고? 기록에 의하면 문경새재도 낙동강의 발원지가 맞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낙동강의 근원은 봉화현 태백산 황지, 문경현 북쪽 초점, 순흥 소백산이며, 그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문경새재 역시 엄연한 낙동강의 발원지였던 것이다.
 
문경새재의 낙동강 발원지
# 있는 그대로를 보며,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
 
비가 잦아들자, 안개는 더 짙어진다. 멀리 보이는 길은 가뭇한 안개 속에서 실루엣만 남았던지라, 내가 길 위에 있다는 사실 자체마저도 잊게 한다. 오래전 김승옥이 쓴 ‘무진기행(霧津紀行)의 그 무진처럼 음울하고 또 답답하다. 가야 할 길의 비현실적인 모습에 나그네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잊은 채 안개가 이끄는 대로 그냥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 문경새재길 50
그렇게 흐르듯 걷는 사이, 길이 옅어지니 차라리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있음을 깨닫는다. 두려움과 편안함은 한 끗 차이라더니, 설사 안개가 제 아무리 짙더라도 길이야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설마 이 신작로 위에서 길이야 잃겠냐는 배짱까지 생긴다. 그러자, 오리무중(五里霧中)의 풍경이 차라리 선경(仙境)을 거니는 듯 외려 경이롭고 반가운 풍경이 되고, 이마저도 행운임을 깨닫게 된다.
- 문경새재길 51
“현실을 대하는 최고의 방법은 고정된 세계관을 버리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라더니 실제가 그랬다. 내 눈에 안 보인다고 하늘에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니듯, 길도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은 기대와 ‘다른’ 상황이나 환경을 무덤덤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새삼 ‘그냥 보는 것’과 ‘이해하며 보는 것’의 차이가 여행자와 관광객을 구분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여행자는 현재 보이는 것을 보는 반면, 관광객은 보러 온 것을 본다.’고 하지 않던가. 눈앞의 풍경도, 사람도, 있는 그대로 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인정하면 될 일이다.
영남 제3관문인 조령관의 모습
희뿌연 안개의 행렬 너머로 조령관이 보인다.

드디어 문경새재 과거길의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조령관은 문경새재 3관문 중 마지막 관문으로, 조령산성의 관문이다. 그리고 조령관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의 경계인 백두대간 상에 자리하고 있으니, 저 문만 지나면 이제는 충청도 땅이다.
- 문경새재길 53
# 못난 길이 들려주는 풍성한 이야기

길은 조령산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다.
 
원래 못난 사람이 이런 저런 풍파에 사연은 오히려 풍성하듯, 어쩌면 길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잘나지 못해 어느 산골짜기 모퉁이 옆,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 외딴 곳의 길들이 시골 아낙의 주름진 손과 얼굴의 애잔한 고랑을 타고 쉼 없이 흐르던 이야기들처럼,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 뿌리 역시 깊고 넓으며 또 단단할 것이라는 짐작이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좁고 못난 길이 더욱 애잔하고 마음이 간다. 그 속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미소 머금은 채로 들을 수 있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 문경새재길 53-1
그 길을 걸어야 했던 약초꾼이며, 보부상들이며, 그리고 고단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길을 걸었을 수많은 이름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져 있으니 그 이야기의 그릇이 얼마나 넓고 또 깊을 것인가.
- 문경새재길 53-2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내리막길은 내리막길이라서 주는 즐거움이 있다. 너울너울 춤추듯 걸을 수 있는 여유가 그것이다. 내리막길은 힘겹게 오르막길을 올라온 이에게 주는 선물이라면 선물이다.
 
하지만 내리막길에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주는 무료함이 더불어 동반한다. 그렇게 격정적이지도 않고, 긴장도, 감동도 덜하다. 특히나 재를 넘고 산을 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 문경새재길 54
# 단순한 삶을 살아라!
 

저 멀리 휴양림의 통나무집들이 보인다. 오늘의 여정의 마지막 지점에 다다랐나 보다.
 
문경새재 과거길을 걸으며 ‘단순한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여행의 기술(Vagabonding)>이란 책의 저자인 롤프 포츠가 전하는 충고 역시 다름 아닌 ‘단순한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
- 문경새재길 54-1
“단순하게 살아갈 때 대담해질 수 있고, 낯선 땅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다. 또한 당신의 열정과 호기심을 좇아 독립심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걷는 것을 허락하는 것도 단순한 삶이다. 집에서나 길에서나 단순하라. 그래야 지금까지는 거의 무시돼왔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 즉 당신의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시간의 여유가 허락될 것이다.”
 
단순한 삶이란,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세상은 나를 포함하는 모두를 의미한다. 열린 마음은 바로 그 ‘세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려는 관용과 인내심을 키워가는 과정’이라고 롤프 포츠는 말한다.
- 문경새재길 55
그렇게 여행을 한다는 것은, 특히나 도보여행을 한다는 것은 익숙함과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조금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습관을 연마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각의 재발견’ 같은 것 말이다. 평소에는 의미 없던 대상에 새로운 관심과 애정을 느끼고, 고통과 외로움마저도 선선히 감당하는 자신과도 만나고, 그렇게 어느 순간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 문경새재길 55-1
#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최소한 도보여행에서는 정답이다
 
단순함이나 시각의 재발견을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은 아마도 집을 나서는 ‘용기’일 것이다.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의 ‘존 뮤어 트레일’의 주인공인 존 뮤어 역시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차 한 봉지와 집 뒷담장을 넘을 수 있을 정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최소한 도보여행에서는 정답이다. 길 위에 자신을 올려놓기만 하면 그 다음은 가지말래도 간다. 다리와 발의 속성이 그렇다.
- 문경새재길 55-2
<여행하지 않을 자유>를 쓴 피코 아이어 역시 ‘떠나라’고 충고한다. ‘떠남’은 긍정적인 선택이며, 일상의 틀에서 벗어날 기회라고 그는 말한다.
 
‘떠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뭔가가 마음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다. 당신이 일상적인 틀에 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따난다는 것은 불만의 토로가 아니라 긍정적인 선택이다. 떠난다는 것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계속 움직이기 위한 방향 전환이다.’
 
어디론가 떠날 준비가 되셨는가? 신발끈을 고쳐 매고 길 위에 서면 될 일이다. 봄날의 유혹에 못이기는 척 스르르 끌려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 옛날 나그네들이 매고 다니던 괴나리봇짐
그 옛날 나그네들이 매고 다니던 괴나리봇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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