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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검사 성폭력 사실 알고도 덮은 검찰…윗선 개입했나?

여가부 친고죄 보도자료 1
'이제 성폭력범죄는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

2012년 11월 23일 여성가족부가 낸 보도자료의 일부다. 전날 국회 성폭력 특위가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를 의결한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친고죄는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 등 고소권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와 처벌이 가능한 범죄를 말한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된 이유를 여성가족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여가부 친고죄 보도자료 2
'성폭력범죄와 같은 중대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합의를 위해 피해자를 협박하여 2차 피해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성폭력은 중대 범죄지만, 가해자 처벌을 위해서는 피해자가 용기를 내야만 하는 잘못된 관행을 타파해 가해자 처벌을 용이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1심 판결 전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합의하면 소가 취하되는 탓에 '합의금을 목적으로 고소했다'는 식의 악의적인 누명과 소문을 나는 걸 바꾸자는 취지도 담겨 있었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는 2013년 6월부터 시행됐다.

● 친고죄 폐지 이후 발생한 전직 검사 A 씨 사건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전직 검사 A 씨. 사건은 친고죄 폐지 이후인 2015년에 발생했다. 그런데 A 씨는 수사는 물론 감찰도 받지 않고 검찰을 떠났다.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아 변호사 개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A 씨에 대한 감찰과 수사가 없었던 것은 검찰이 성추행 사실을 몰랐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2015년 5월 14일 경향신문은 A 씨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했다. 옷을 벗고 나간 A 씨가 후배 여검사를 성추행, 나아가 성폭행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검찰은 해당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후에도 의혹 제기는 계속됐지만, 검찰은 언급을 삼갔다. 그렇게 전직 검사 A 씨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감찰은 안 했지만, 진상조사는 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전직 검사 A 씨 사건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서 검사가 과거 검찰 내 후배 여검사에 대한 성폭행도 있었지만 덮였다고 언급하면서다. 서 검사의 폭로 당시 대검은 전직 검사 A 씨 관련 의혹에 대해 기자에게 "정식 감찰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진상조사는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검사는 "성추행, 나아가 성폭행 의혹이 제기된 사안에 대해 정식 감찰에 착수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사건 자체를 덮으려고 한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공무원은 감찰 조사가 시작되면 조사가 끝나 그에 따른 처분이 내려질 때까지 사표를 내더라도 수리되지 않는다. 현직일 때 징계를 받은 검사는 변호사 개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직 검사 A 씨가 법조 명문가 출신인 점 등을 감안할 때 검찰이 감찰에 착수하지 않은 건 사건을 의도적으로 덮은 게 아니냐는 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 "전직 검사 A 씨 조사조차 안 했다. 관련 음성 파일은 복구가 안 되고 있다"

그래도 A 씨에 대한 조사는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검찰은 감찰은 아니지만 진상조사는 했다고 한 만큼, 당사자인 A 씨를 상대로 사실 관계 파악은 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당사자 조사는 조사의 ABC인 만큼,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그런데 기자는 최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2015년 당시 전직 검사 A 씨를 대검 감찰본부가 불러 조사한 적이 없고, 그 결과 성추행 조사단이 대검으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엔 A 씨 당사자를 상대로 한 조사 기록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2015년 당시 진상 조사와 관련해 사건 관계인의 진술을 녹음했는데, 녹음파일이 현재 존재하지 않고 복구도 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당시 검찰이 대놓고 전직 검사 A 씨 관련 의혹은 덮은 셈이었다.

SBS 취재결과, 성추행 조사단이 넘겨받은 자료 중 A 씨 당사자와 관련한 2015년 당시 조사 결과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대검은 그 이유가 A 씨를 불러서 조사하지 않았기 떄문 아니냐는 질문에 말을 아끼고 있지만, 문서로 말하는 공무원의 습성과 조사의 근거를 남기는 검사의 특성을 감안할 때 2015년 당시 A 씨에 대한 조사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수사 안 한 건 직무유기, 윗선에서 덮었으면 직권남용"

또, 사라진 음성 파일은 A 씨에게 피해를 당한 후배 여검사 B 씨의 진술이 담긴 음성 파일인 것으로 SBS 취재결과 드러났다. 음성 파일 복구가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고, 대검 감찰본부에 와서 B 씨가 진술할 당시 B 씨는 피해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도 추가로 확인됐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B 씨가 진술을 거부하거나 피해 사실을 부정했더라면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수 있다. 단순 의혹만으로 수사를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검 감찰본부는 피해자 B 씨에게서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청취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수사를 했어야 했다. 앞서 살펴봤듯이 사건 발생 시점은 성폭력 범죄 친고죄 폐지 이후인 2015년이다. 그리고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한 현직 검사는 이와 관련해 "당시 대검 감찰본부가 피해자 의견 청취를 통해 피해사실을 알게 된 것은 사건을 인지한 것"이라며, "대검 감찰본부는 감찰권뿐만 아니라 수사권도 가지고 있는 만큼 전직 검사 A 씨를 수사하지 않았던 건 당시 대검 감찰본부 검사들이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당시엔 친고죄가 폐지됐던 만큼 수사기관인 검찰은 성폭력 범죄를 인지했다면,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와 무관하게 수사를 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앞서 살펴봤듯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를 폐지한 이유다.

● 검찰총장 직속기구인 대검 감찰본부…사건 은폐에 윗선 개입됐나?

대검 감찰본부는 검찰총장 직속 기구다. 때문에 통상 대검 감찰본부와 관련된 사안은 검사장급인 감찰본부장을 통해 검찰총장에게 직보된다. 현직 검사가 연루된 범죄, 특히 성폭력 범죄라는 범죄의 중대성을 감안했을 때 2015년 당시 대검 감찰본부가 피해자 B 씨를 상대로 청취한 피해 사실도 당연히 감찰본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게 보고됐을 것으로 보인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검 감찰본부의 간단한 보고 체계, 현직 검사에 대한 수사는 대검 지휘부가 사실상 결정하는 관행 등을 고려할 때, A 씨에 대해 감찰과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건 당시 검찰총장 등 지휘부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 지휘부가 A 씨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막았다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범죄를 인지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검사들이 수사를 못 하도록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SBS는 2015년 당시 전직 검사 A 씨를 상대로 한 당사자 조사가 없었던 것은 맞는지, 왜 관련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지, 그리고 수사는 왜 하지 않았는지를 물어보기 위해 당시 검찰총장과 감찰본부장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통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 2015년 당시 대검 지휘부 수사 불가피…조사단은 돌파할 수 있을까?

복구되지 않고 사라진 피해자 B 씨의 진술녹음 파일과 가해자 A 씨 당사자에 대한 조사 기록 부재, 친고죄 폐지 이후 성폭력 범죄 피해사실을 인지하고도 수사는 물론 감찰도 이뤄지지 않았던 사실. 성폭력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검사 A 씨를 둘러싼 2015년 당시 대검의 행적은 의혹투성이다. 의혹 해소를 위해 수사가 불가피하다.

의혹을 해소할 열쇠는 성추행 조사단이 쥐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검찰 최고위급이었던 인사들을 상대로 한 수사를 조사단은 돌파할 수 있을까? 검찰 안팎에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지배적이다. 서지현 검사 폭로 이후 2달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수사가 보여주듯, 조사단이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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