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의 내용은 지난해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표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일본 헌법 시행 70주년 연설에서 "헌법 9조 1항(전쟁 금지), 2항(군대 보유 금지)을 그대로 둔 채 자위대를 명문으로 써넣는 것은 국민적 토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10개월 만에 나온 시안은 도돌이표처럼 아베 총리 발언으로 돌아온 겁니다. 한 번 보시죠.
9조의 2 제1항 : 1, 2항의 규정은 우리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지켜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자위의 조치를 갖는 것을 막지 않으며 그를 위해 실력조직으로서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내각의 수장에 해당하는 내각총리 대신을 최고지휘감독자로 한 자위대를 보유한다. |
시안 속 '실력조직'이라는 표현도 이미 지난해 6월에 나왔습니다. 자 위대는 군대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사전에도 없는 '실력조직'이라는 단어를 꺼내 든 겁니다. 꼼수 궤변 명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베 총리의 라이벌인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내용이 1년 전과 동일하다. 지난 1년간의 논의를 집대성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자민당의 개헌은 갈 길이 멉니다. 단계별로 살펴보면 [1] 시안을 '자민당 초안'으로 최종 확정하고 [2] 공명당과 협의해 '연립여당 최종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공명당은 9조 개정에는 소극적이고 대신 교육무상화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3] 중의원 헌법심사회에 제출해 야당들과 협의해 [4] 최종안을 만들어 국회에 발의합니다. 아사히 신문은 당장 올해 안에 국회 발의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자민당으로선 연립여당 공명당, 야당들, 그리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설득에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자위대의 위헌성입니다. 2항에 전력을 보유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탱크, 전투기, 항공모함을 가진 자위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일본 정부는 국회에 제출한 설명서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에니와 사건>
1962년 홋카이도 에니와 마을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노자키 형제가 인근 자위대 부대의 통신선을 끊어버립니다. 육상자위대의 잇따른 포격훈련으로 생활에 큰 지장이 생긴 것은 물론 소들의 우유 생산량까지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자위대는 "방위용 물건을 파괴했다"며 이들을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삿포로 지방검찰청 검사가 형법상 '기물손괴죄'로 처리해도 될 이 사건을, 자위대법 121조 '국방용 무기파괴죄'로 기소합니다. 이에 노자키 형제는 "자위대법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고 반박합니다.
재판 증인에는 다나카 요시오 전 통합막료회의 사무국장(우리 합동참모본부 장성)까지 나왔습니다. 다나카 전 국장은 "우리나라를 침략해오는 것에 대해 싸우는 것을 군대라고 말한다면 자위대는 군대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삿포로 지방법원에서 자위대의 위헌성을 다투는 법정 싸움이 이어지자 일본 언론들은 크게 주목했습니다.
점차 위헌 결정이 나올 것 같자 일본 정부와 재판부 측은 고민합니다. 3년간 41회에 이르는 공판 끝에 1967년 3월 재판부는 뜻밖에 판결을 내립니다. "통신선은 방위용으로 볼 수 없으므로 형제는 무죄. 따라서 자위대 위헌 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지난해 일본에선 다큐멘터리 '헌법을 무기로-에니와 사건, 알려지지 않은 50년 만의 진실'이 공개됐습니다. 다큐에서 쓰지 미츠오 재판장의 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80세가 넘어 아버지가 제게 당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위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최고재판소(대법원) 쪽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헌법 판단은 회피하라'고 했다고..."
<나가누마 나이키 기지 소송>
1969년 항공자위대는 홋카이도 나가누마 지역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농림성은 대규모 산림을 제공하면서 해당 산림의 보안림(보호산림) 지정을 해제해줍니다. 삼림법의 '공익상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지역주민 300여 명은 "미사일 기지는 공익이 없고 오히려 지역을 위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위대 자체도 위헌"이라고 주장합니다.
나가누마 소송은 또 한 번 일본을 뒤흔듭니다. 1심을 맡은 삿포로 지법 후쿠시마 시게오 판사는 1973년 역사적인 자위대 위헌 판결을 내립니다. "일본 국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절의 군사력을 폐기했고 영구 평화주의를 국가의 기본방침으로 정립했다. 편성 규모 장비 능력 등에서 볼 때 자위대는 분명히 군대이다. 헌법에서 보유를 금지한 전력(戰力)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일본 헌법 전문(前文)에 적힌 '우리는 세계 국민들이 평화 속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들며 미사일 기지가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합니다.
물론 1심 판결은 이후 2심과 최고재판소에서 뒤집어집니다. 2심 법원은 "고도의 정치성이 있는 국가행위는 명확하게 위헌무효라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법심사의 범위 밖에 있다"(이른바 통치행위론)고 판단합니다.
<자위대 이라크 파병 소송>
2004년 이후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시작되자 일본 진보계 인사들이 민사 소송을 벌입니다. 전국 10개 법원에서 모두 '민사상 청구권이 없다'며 기각을 당했는데, 나고야 법원만이 1심과 2심 항소를 받아줍니다. 그리고 2008년 나고야 고법도 "원고들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판결문 속에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항공자위대가 전투지역인 이라크 바그다드에 무장 미군을 수송하는 것은 헌법 9조 1항(전쟁 금지)에 반한다"는 자위대 해외파병에 대한 위헌 판단을 내린 겁니다. 또 이른바 평화적 생존권에 대해서도 '침해됐다'는 인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 인권으로 법원에 그 보호와 구제를 요구할 수 있다"면서 헌법적 기본권이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도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대한 판결이지, 자위대 존재 자체에 대한 판결이 아닙니다. 자위대 존재 자체의 위헌성을 밝히려는 일본 양심 세력들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자위대의 위헌성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그 방식과 방향에 따라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국제 질서 전체가 흔들립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 속에 일본 양심세력들의 활동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겁니다. NHK 여론조사(3월9-11일 1208명 대답)에선 '헌법개정 자위대 명기'에 대해 찬성 35.7%, 반대 23.4%,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 32.4%, 모르겠다 8.5%라고 답했습니다.
1962년 홋카이도 에니와 마을에서 목장을 운영하던 노자키 형제가 인근 자위대 부대의 통신선을 끊어버립니다. 육상자위대의 잇따른 포격훈련으로 생활에 큰 지장이 생긴 것은 물론 소들의 우유 생산량까지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자위대는 "방위용 물건을 파괴했다"며 이들을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삿포로 지방검찰청 검사가 형법상 '기물손괴죄'로 처리해도 될 이 사건을, 자위대법 121조 '국방용 무기파괴죄'로 기소합니다. 이에 노자키 형제는 "자위대법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고 반박합니다.
점차 위헌 결정이 나올 것 같자 일본 정부와 재판부 측은 고민합니다. 3년간 41회에 이르는 공판 끝에 1967년 3월 재판부는 뜻밖에 판결을 내립니다. "통신선은 방위용으로 볼 수 없으므로 형제는 무죄. 따라서 자위대 위헌 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1969년 항공자위대는 홋카이도 나가누마 지역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자 합니다. 농림성은 대규모 산림을 제공하면서 해당 산림의 보안림(보호산림) 지정을 해제해줍니다. 삼림법의 '공익상 이유'를 내세웠습니다. 지역주민 300여 명은 "미사일 기지는 공익이 없고 오히려 지역을 위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위대 자체도 위헌"이라고 주장합니다.
나가누마 소송은 또 한 번 일본을 뒤흔듭니다. 1심을 맡은 삿포로 지법 후쿠시마 시게오 판사는 1973년 역사적인 자위대 위헌 판결을 내립니다. "일본 국민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일절의 군사력을 폐기했고 영구 평화주의를 국가의 기본방침으로 정립했다. 편성 규모 장비 능력 등에서 볼 때 자위대는 분명히 군대이다. 헌법에서 보유를 금지한 전력(戰力)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일본 헌법 전문(前文)에 적힌 '우리는 세계 국민들이 평화 속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들며 미사일 기지가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합니다.
물론 1심 판결은 이후 2심과 최고재판소에서 뒤집어집니다. 2심 법원은 "고도의 정치성이 있는 국가행위는 명확하게 위헌무효라고 인정되지 않는 한 사법심사의 범위 밖에 있다"(이른바 통치행위론)고 판단합니다.
2004년 이후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시작되자 일본 진보계 인사들이 민사 소송을 벌입니다. 전국 10개 법원에서 모두 '민사상 청구권이 없다'며 기각을 당했는데, 나고야 법원만이 1심과 2심 항소를 받아줍니다. 그리고 2008년 나고야 고법도 "원고들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았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핵심은 판결문 속에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항공자위대가 전투지역인 이라크 바그다드에 무장 미군을 수송하는 것은 헌법 9조 1항(전쟁 금지)에 반한다"는 자위대 해외파병에 대한 위헌 판단을 내린 겁니다. 또 이른바 평화적 생존권에 대해서도 '침해됐다'는 인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 인권으로 법원에 그 보호와 구제를 요구할 수 있다"면서 헌법적 기본권이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도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대한 판결이지, 자위대 존재 자체에 대한 판결이 아닙니다. 자위대 존재 자체의 위헌성을 밝히려는 일본 양심 세력들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자위대의 위헌성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그 방식과 방향에 따라 일본은 물론 동아시아 국제 질서 전체가 흔들립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본 사회의 우경화 속에 일본 양심세력들의 활동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는 겁니다. NHK 여론조사(3월9-11일 1208명 대답)에선 '헌법개정 자위대 명기'에 대해 찬성 35.7%, 반대 23.4%, 어느 쪽이라고 말할 수 없다 32.4%, 모르겠다 8.5%라고 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