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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구속 수사의 원칙과 MB 구속영장

[취재파일] 불구속 수사의 원칙과 MB 구속영장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강제 수사권과 법률 지식으로 무장한 수사기관에 맞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속 상태에선 증거 수집 등 방어권 행사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만큼,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 기관의 창과 방패에 맞설 수 있게 하자는 소위 무기대등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원칙이 있으면 예외도 있기 마련입니다. 형사소송법도 불구속 수사의 예외, 즉 구속 수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칙에 맞선 예외는 엄격해야 하기에 형사소송법은 구속을 위해선 2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입니다. 이는 판사가 제시된 자료와 검사 및 당사자의 진술을 통해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데 신체의 자유를 해할 수는 없으니 당연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차 관문을 통과하면 주거가 부정하거나 증거인멸 또는 도주의 우려가 있느냐는 2차 관문을 맞이합니다. 때론 1차 관문에 막혀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법원이 기각하기도 하고, 2차 관문을 검찰의 영장청구서가 통과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검찰이 법원의 결정에 반발하며 드는 이유는 주로 다른 데 있습니다. 2차 관문에 주석처럼 달린 문구입니다.

● '범죄의 중대성' → '범죄가 중하면 당연히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도주 우려 등 3가지 독립된 구속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 피해자 등에 대한 위해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의 중대성 등은 도주 우려 등을 판단할 때 고려할 요소일 뿐, 그 자체가 구속 사유는 아닙니다.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전제 하에 도주 우려가 있을 경우엔 영장이 발부되지만, 범죄가 중대하다고 해서 영장이 발부되는 건 아닌 겁니다.

그런데 검찰은 주로 ‘범죄의 중대성’을 이유로 법원의 영장 기각에 반발합니다. ‘범죄의 중대성’은 때론 ‘국민의 법 감정’으로 변주되기도 하고, ‘범죄가 중대하면 당연히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응용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도 김관진 전 안보실장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검찰은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이런 검찰의 반발에 대해 법원은 ‘본말이 전도됐다’고 비판합니다. 한 부장판사는 “‘범죄의 중대성’, ‘국민의 법 감정’은 독립된 구속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검찰의 반발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도주 우려 등을 판단하는 데 고려할 요소일 뿐인 범죄의 중대성을 근거로 ‘범죄가 중하면 일응 도주 우려가 있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 부장판사는 “구속은 수사의 한 방법일 뿐인데, 검찰은 ‘구속=유죄, 불구속=무죄’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구속을 처벌의 일부이자 수사 성패의 가늠자로 보는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MB/자택 앞 차량 통제
● 원칙과 예외, 그리고 예외를 부각시킨 MB

구속과 관련해 말이 길었던 건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 때문입니다. 지난 19일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뇌물 수수와 횡령 등 죄명만 6개, 혐의는 10여 개에 달합니다. 검찰 관계자는 영장 청구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영장 청구의 첫 번째 이유로 ‘범죄의 중대성’을 들었습니다. ‘범죄의 중대성’은 독립된 구속 사유는 아니지만, 이 전 대통령의 혐의가 중대한 만큼 증거 인멸 등의 우려가 있으니 법원에 영장을 발부해 달라는 요구로 읽혔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범죄의 중대성’을 이유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발부 사유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 수사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으므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혐의를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당황스러울 정도지만, 불구속 수사의 원칙은 이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은 때론 부메랑이 돼 일반 시민들에게 치명적으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은 지금껏 검찰의 수사 과정과 영장 심사 등의 단계에서 원칙의 예외, 즉 구속 사유에 해당되는 부분을 부각시켜온 측면이 큰 것 같습니다.

● 부메랑이 돼 돌아온 MB의 정치 행위

과문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법원이 영장 발부 사유로 ‘범죄의 중대성’을 적시한 것은 이례적인 것 같습니다. ‘범죄의 중대성’은 ‘수사과정에 나타난 정황’과 연결돼 ‘증거인멸의 염려’라는 구속 사유로 귀결됩니다.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발생한, 시기만으로도 ‘중대한 범죄’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서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모르는 일이다’, ‘보고 받지 않았다’, 나아가 ‘서류가 조작됐다’는 입장까지 보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중대한 혐의 부정을 위해 주변인과의 말맞추기를 통해 증거인멸을 우려가 있다는 판단은 한결 자연스러워진 겁니다.

검찰 수사뿐만 아니라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보인 이 전 대통령 측의 행동도 구속 수사라는 예외를 부각시킨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대 범죄’의 피의자지만, 영장심사 포기가 아닌 불출석이라는 애매한 입장으로 검찰과 법원을 시험에 들게 한 겁니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구인해 영장심사가 열릴 법정에 세우라고 말이죠. 결국 영장심사는 무산됐지만, 예정됐던 영장심사까지 불출석하고 정치행위를 함으로써, 구속되지 않으면 계속된 정치 행위로 증거인멸을 할 수도 있다는 심증을 판사에게 심어줄 수도 있었던 겁니다.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됐지만, 영장 발부 사유를 뜯어보면 이 전 대통령 측이 향후 기대할 부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어제 영장 발부사유는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한 소명이 있다”고 시작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일정 부분 소명이 되지 않는 범죄 혐의도 있다’는 겁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향후 이 부분을 집중 부각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 대통령 측에서 “어떤 형식이든 이 전 대통령은 향후 검찰 수사를 거부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검찰에서 다 말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당사자 조사 거부로 검찰 수사가 더 진전되지 않게 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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