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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진의 뉴스브리핑] 7년 만의 주연…국민 배우 이순재의 '빛나는 도전'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이순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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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 배우
"덕구, 저예산 영화…시나리오 좋아서 하고 싶었다"
"연예인, 대중에 책임감 가져야"

▷ 주영진/앵커: 시청자 여러분, 저도 텔레비전에서만 뵙던 분을 옆에서 직접 봬니까 가슴이 떨리기도 합니다. 이순재 선생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순재/연기자: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이 열심히 자료 찾아서 영상을 한번 만들어봤는데 어떻습니까? 영상 잘 만들었습니까?

▶ 이순재/연기자: 네, 저도 뭐 옛날 생각이 나네요. 젊었을 때 모습도 좀 나오고.

▷ 주영진/앵커: 62년 되셨습니까, 데뷔하신 지가?

▶ 이순재/연기자: 그렇죠. 대학교 3학년 때 56년도에 처음 연기라는 걸 해봤으니까.

▷ 주영진/앵커: 1956년에 대학교 3학년 때?

▶ 이순재/연기자: 56년 대학교 3학년 때.

▷ 주영진/앵커: 서울대학교 철학과?

▶ 이순재/연기자: 네, 철학과 재학 중입니다. 그러니까 때가 이제 우리 서울대학교 선배님들 그다음에 연대 선배님들하고. 거기 대표적인 양반 중의 한 분이 임택근 선배 참여하시던 그때인데.

▷ 주영진/앵커: 아나운서 하셨던 분.

▶ 이순재/연기자: 그렇죠, 그렇죠. 그 마지막 연극이 바로 오닐의 지평선 너머라는 연극입니다. 그때 제가 마지막으로 끼어들어가서 처음 연기를 해 본 게 그게 56년도. 그런데 보니까 사실 뭐 그동안은 일종의 아마추어 시절이니까 뭐 경력으로 치기는 좀 뭐 합니다만 어쨌든 시작이 그거니까 62년, 62년 하는데 생업으로 시작한 건 아무래도 학교 끝나고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니까 그거는 뭐 이제 61년도?

▷ 주영진/앵커: 그러니까 방송사가 생기고 KBS, MBC가 생기고 이러면서 본격적으로.

▶ 이순재/연기자: 그렇죠. 뭐 그 전에 물론 연극은 쭉 졸업 후에도 군대 갔다 와서 했는데 본격적으로 방송은 56년도에 있었어요, 방송이. 그러다 이제 61년도에 KBS TV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됐는데 그때는 할 수 없이 연극해서 돈을 못 버니까, 또 수입이 없으니까. 텔레비전 하면 아무래도 국가가 경영하는 방송이니까 뭔가 출연료가 있지 않겠는가 해서 우리들이 가서 참여하게 된 겁니다.

▷ 주영진/앵커: 선생님, 62년. 아마 질문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워낙 몇 개 정도 작품에 출연하셨죠?

▶ 이순재/연기자: 글쎄 뭐, 예전에 누가 자료를 뽑아줬는데 영화도 한100편 되는 것 같더라고요.

▷ 주영진/앵커: 영화도 100편. 드라마는요?

▶ 이순재/연기자: 드라마는 셀 수 없을 것 같아요.

▷ 주영진/앵커: 드라마는 셀 수 없을 것 같고.

▶ 이순재/연기자: 왜냐하면 우리 젊었을 때는 제가 이제 64년도에 TBC 전속으로 들어가는데 어떨 때는 한 달에 서른한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어요.

▷ 주영진/앵커: 한 달에요?

▶ 이순재/연기자: 네, 왜냐하면 겹치기 출연을 하느라고.

▷ 주영진/앵커: 31개?

▶ 이순재/연기자: 네, 왜냐하면 이제 몇 명이 안 되니까 전부 겹치기 출연도 하게 되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런 적도 있고 그러니까 뭐 텔레비전 드라마는 일일이 셀 수가 없고 연극도 벌써 거의 한 50편 이상은 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 주영진/앵커: 50편 이상이면 거의 매년 연극도 꼭 출연하셨다고 봐야겠군요.

▶ 이순재/연기자: 그때는 꼭 했죠.

▷ 주영진/앵커: SBS 드라마는 혹시 출연하신 드라마 중에 기억나시는 게 있습니까?

▶ 이순재/연기자: 그럼요. 꿈의 궁전.

▷ 주영진/앵커: 꿈의 궁전.

▶ 이순재/연기자: 네, 네. 그때는 그게 아마 소재 자체가 좀 생소해서 과연 무슨 소위 준재벌에 해당하는 회장이 다시 재취업을 해서 바닥에서부터 일하는 그런 모습들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하는 실제는 설정 자체가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 했는데 나중에 그게 실사가 됐습니다. 우리 유명한 지금 안 계시지만 우리 저 뭐야, 롯데호텔에서 했던 그 양반. 그 양반의 경우가 그 후에 하셨으니까 그걸 아마 전제로 한 게 아닌가 해서 그 작품은 의미가 있어요. 소위 말하자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완전히 뭐 돈이 많으니까 그냥 앉아서 소유를 할 수 있겠지만 뭔가 새로운 어떤 가치관을 찾아서 일한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지 않겠는가. 또 후배들한테 좋은 귀감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면에서 그 작품이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고 나는 봅니다.

▷ 주영진/앵커: 이순재 선생님 같은 경우는 조금 전에 자료 영상도 나오고 사진으로 나왔습니다만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들과 함께 작품도 하시고. 그런데요. 제가 쭉 한번 다시 보여주시겠어요? 제가 지금 느끼는 건 그 화면 속에, 저 사진 속에 있던 같이 나오셨던 분들은 지금 작품 활동이 활발지가 않으신데 이순재 선생님은 2018년 지금도 여전히 활동 중이시다.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이순재/연기자: 이거는 뭐 어차피 이 직종은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년이 없다는 겁니다. 뭐 예술창조라는 게 예술가들은 정년이 없죠. 그다음에 또 하나는 뭐 이 직종은 사실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직종이 아닙니다. 자기 개인의 능력과 역량으로 평가받는 거지 뭐 누구를 음해하거나 누구를 자빠뜨리거나 뭐를 치고 넘어가거나 이런 식의 직종은. 예술창조라는 게 독자적인 행위기 때문에 좋은 경쟁을 하는 거지 상대방을 못살게 하거나 나쁘게 만드는 그런 직종은 아니거든요. 좋은 경쟁 관계죠.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보고 있는데 아직은 그래도 건강이 유지되니까 지금 계속하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제가 깜짝 놀란 게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이 2시에 시작을 하고 이순재 선생님은 한 3시 반 정도에 나오시면 된다고 했는데 아까 제가 2시 방송 전에 잠깐 분장실, 대기실 갔더니 벌써 도착을 하셨다고.

▶ 이순재/연기자: 저기 강남에서 1시쯤 떨어졌는데 혹시 교통이 막히면 좀 늦지 않겠는가. 그래서 3시 목표로 온다고 하는 게 조금 일찍 왔습니다.

▷ 주영진/앵커: 항상 약속을. 최근에 덕구라고 하는 영화 찍으셨다고 했는데 제가 기사 찾아봤습니다. 출연료, 요즘은 이른바 노개런티라고 하죠. 출연료를 안 받으셨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저는 가슴에 와 닿던데요.

▶ 이순재/연기자: 우선 저예산 영화고 또 물론 출연료를 줘봤자 그렇게 큰돈을 줄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그거는 뭐 그저 상관없이 우선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아, 이 정도면 한번 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그다음에 또 모처럼 주연이고 하니까 아, 이거는 한번 내가 해봐야겠다 이렇게 결심하고 참여를 한 겁니다.

▷ 주영진/앵커: 내용은 대충 봤습니다. 이제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손주, 손자인가요?

▶ 이순재/연기자: 손녀. 손자, 손녀. 어린 손녀, 손자를 데리고 사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고 또 부모를 잃은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조손 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긋나는 일도 많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이제 감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는. 그다음에 정이라는, 정이라는 것에 얽힐 수밖에 없는 그런 내용이기 때문에 상당히 체류적인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이순재 선생님 62년 연기 인생 동안 잠시 다른 분야, 국회의원도 한 번 하셨던 기억이 제가 나고요. 중랑구에서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상수 옛 전 의원이 이순재 선생님 그래서 아마 기억을 하는 이야기를 제가 들었던 기억이 나고요. 어떻습니까? 최근에 연예인, 연기자로 살아왔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나도 많은 현안들이 산적해 있고 이순재 선생님도 최근에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도 한말씀해주셨는데 연기자들도, 대중문화를 하는 사람들도 사회와는 무관할 수 없잖아요. 그 현안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는 것도 그런 생각에서 하신 겁니까?

▶ 이순재/연기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대중을 상대하는 큰 직종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치하고 우리입니다. 이 분야입니다. 우리는 관객과 대중이,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는 거예요. 또 모든 표현의 대상이 거기고. 물론 이제 예술적인 현상과 독창적인 행위가 있습니다. 무슨 작가는 작가의 경우도 자기 작품을 읽기 바라는 거고 음악도 마찬가지고 미술은 봐주기를 바라고. 꼭 예술이라는 것은 대중하고 호흡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중하고 관계는 정치나 이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정치는 어쨌든 표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표 구걸할 필요는 없습니다. 열심히 해서 객관적인 평가에서 오는 거지 그거를 무슨 돈 주고 살 수도 없는 거고 또 무슨 음모를 가지고 이룰 수도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정치하고 조금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는데 글쎄 뭘 하든지 간에, 어떻든 간에 화면을 통해서 대중을 상대하는 직종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정된 공인은 아니지만 준공인적 성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봅니다.

그래서 어차피 우리 작품을 통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고 또 연령층도 있기 때문에 사실 이제 많이 자기 몸을 간추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조심해야겠고 또 혹시 어떤 의혹과 충동을 느끼더라도 좀 자제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고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끼치는 영향이 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라도.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 주영진/앵커: 그래서 이른바 공인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나오는 거겠죠.

▶ 이순재/연기자: 어쩔 수 없이. 무슨 인정된 공인은 아니지만 공인적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의식은 항상 머릿속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 주영진/앵커: 62년 동안 대중문화계에서 연기자로 살아오셨습니다. 사실은 미투라고 하는 운동이 30년 전 일까지도 지금 최근에 나오지 않습니까? 62년 동안 활동해 오시면서 그 대중문화계에서도 사실은 예전에 성폭력이 만연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 이순재/연기자: 그 이전의 단계는 글쎄. 왜냐하면 우리 직종들이 과거에는 뭐 나중에 영화 그 이전 단계는, 소위 일제 때부터 시작하면 이게 공연을 하나 하게 되면 지방공연을 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가정을 떠나서 살림을 한 3, 4개월. 심하게 한 6개월 정도 돼요. 남북으로 갈려서 북으로 한 바퀴 돌고 남쪽으로 한 바퀴 돌면 한 6개월 이상의 기간이 되는데 그 사이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는 그게 뭐 또 여성들이 그거를 가지고 무슨무슨 어떤 반론을 제기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묵과적으로 넘어간 거죠.

그래서 우스운 이야기로 옛날에 우리 선배 감독이 나중에 영화감독을 하시는데 그 양반한테 직접 들었는데 한 번은 말이야. 내가 사무실에 갔더니 사무원이 지방에서 누가 아들이라고 찾아왔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어디서 왔냐 그러니까 저기 지방의 아무개라고 그래서 거기도 있었나 하는 그런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그게 한때는 그 직종에 관한, 우리 직종에 관한 어떤 게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일부 사회에서는 일부 또 계층간에는 우리 직종을 사실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상당히 비하했던. 60년대도 그랬어요. 그리고 우리가 이 직종을 선택하는 데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수익이 없었고 사회적 인식도 나빴고. 그러나 이제 우리가 생각했던 건 그건 별개의 입장에서 우리가 이 직종을 선택하게 된 건데 그런 시대가 있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안 되죠. 이제는 안 돼.

▷ 주영진/앵커: 이제는 많은 젊은 친구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고 어린 소년, 소녀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됐고 말이죠.

▶ 이순재/연기자: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리 여기서 이제 뭐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입장은 더 말할 것 없고 한 시스템의 장으로 있는 친구들도 이제는 상대방 하나하나를 다 동등한 인격체로 봐야 합니다. 다만 경륜이 짧고 배우는 입장인데, 우리가 가르치는 입장인데 가르치는 입장에서 제대로 가르쳐야지 이상한 것부터 가르쳐주면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예요. 그런 입장에서 이제는 이게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이 기회에 아주 완전히 사회의 정화의 한 차원에서 이것은 좋은 계기가 됐지 않나 이렇게 저는 보고 있습니다.

▷ 주영진/앵커: 선생님 앞으로 계기가 있을 때마다 따끔한 말씀을 꼭 해 주시기를. 아마 이순재 선생님 말씀이라고 한다면 많은 분들이 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 이순재/연기자: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마지막으로 시청자분들께 간략하게 인사 한번 해 주시죠.

▶ 이순재/연기자: 여러분의 성원으로 아직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성원해 주시고 늘 행복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이순재 선생님 나오셨으니까 이순재 선생님이 좋아하신다는 노래를 저희가 선물로 한번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어떤 노래일까요? 선생님, 좋아하시는 노래 맞습니까?

▶ 이순재/연기자: 맞습니다.

▷ 주영진/앵커: 정지용 시인의 향수. 우리나라 시인 가운데 우리나라 말을 정말 가장 잘 사용한 시인이 아니냐.

▶ 이순재/연기자: 우리 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한 노래입니다. 우리가 저런 시대에서 오늘을 이루어낸 겁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니까 더 잘 살아야겠고 더 바르게 살아야겠고.

▶ 이순재/연기자: 맞습니다.

▷ 주영진/앵커: 바로 이런 말씀이시고. 이순재 선생님 저는 이 노래 가사 중에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이 대목이 좋습니다. 이순재 선생님 연기 아마도 많은 분들 볼 때마다 이순재 선생님의 연기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이순재/연기자: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이순재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주영진의 뉴스 브리핑 오늘 순서는 마무리하겠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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