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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도한 폭행·강제결혼…'개척단'의 피맺힌 진실

구민경 에디터, 하현종 기자 mesonit@sbs.co.kr

작성 2018.03.22 11: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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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속고 또 속았습니다어른 아이 할 것 없는 ‘강제 노역’도망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차별 폭행’암묵적으로 자행된 ‘성폭행’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의 ‘강제 결혼’흡사 일제 강점기 시절인가 싶지만,
이 모든 게 1961년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국가사업의 일환이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젊은 남녀들을 충남 서산으로 보냅니다.거리의 부랑아와 성매매 여성들에게 갱생 기회를 제공한다며 시행된 
‘대한 청소년 개척단’이들은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었던 서산에서
도로를 내고 농지를 개간하는 국토 건설 사업에 동원됩니다.그 노동의 결과, 더없이 비옥한 농지가 된 서산 일대.하지만 자부심을 가져도 모자랄 개척단원들은 
지난 56년간 침묵하며 살아야 했습니다.“그때 말을 꺼내기도 싫어 아주. 
 누명을 쓸까 싶어서... 
 그거(성매매 여성)는 아니야 난.”
- 정화자(당시 개척단원)

정부의 대대적인 광고와는 다르게 모든 개척단원이 부랑아와 성매매 여성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길거리 다니면서 저거 못쓸 거다 싶으면 
그냥 잡아서 차에 실어버리는 거야.”
- 김재권(당시 개척단원)

늦게 다녔다고, 또 혼자 있다는 이유로
무고한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됐습니다.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온 피해자들은
68명으로 시작해 1964년에는 1,771명까지 늘어났습니다.10살도 안 된 어린아이들까지 끔찍한 노역과 폭행에 시달렸고,여자들은 성폭행에 강제 결혼까지 당해야 했습니다.1966년 개척단이 공식적으로 해체된 뒤에도 그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킨 이유는
‘내가 일군 땅’이라는 자부심 때문이었습니다.1968년 서산군수로부터 1세대 당 1,000평을 가분배한다는 임시 분배증을 받은 단원들.내 것인 줄 믿고 있었던 땅,
하지만 정부는 그 일대를 국유지로 등록하고 난데없이 임대료 고지서를 단원들에게 보냅니다.땅 소유권이 아닌 경작권을 분배했을 뿐이라는 겁니다.“지금 우리가 무슨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2013년에 자산관리공사로 넘어가서 서산시는 이 업무하고 상관이 없어요.”
- 서산시청 회계과 관계자

해당 지자체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책임을 떠넘기기 바쁩니다.내가 일군 땅을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개척단원은
어쩔 수 없이 땅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땅을 사기 위해 거액의 빚을 지고 20년 동안 갚아나가야 하는 그들.
생전에 다 갚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내가 배운 게 없어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는데,
정부가 도둑질해 간 거 그거 우리들한테 해줘야 돼.
내 청춘 돌려줘야 돼요.”
- 정영철(당시 개척단원)청춘, 가족, 사랑까지 모두 잃고 국가의 노예로 살아야 했던 그들.피맺힌 땅 충남 서산에서는 56년이 지난 지금도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56년 전 군사정부는 거리의 부랑아와 성매매 여성들에게 갱생 기회를 제공한다며 충남 서산에 '대한 청소년 개척단'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황무지나 다름없던 서산의 폐 염전을 메꾸고 농지를 개간하는 국토 건설 사업에 동원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곳에 간 사람들 중 대다수는 일반 시민이었고, 그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끌려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각종 노역과 폭행, 강제 결혼 등 인권유린을 당했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직접 개간한 땅을 빚을 내서 사야 했던 그들.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개척단원들은 그동안의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글·구성 구민경 /그래픽 김태화 /기획 하현종 

(SBS 스브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