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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가습기 살균제' 7년, 우리에게 남은 것들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18.03.18 17:14 수정 2018.03.18 17:2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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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가습기 살균제 7년, 우리에게 남은 것들
"사망자 925명, 총 피해자 3,995명"
 
마치 어느 전쟁의 희생자 수를 연상시키는 이 통계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가습기살균제 사태 피해자의 총합이다. (2018.3.18. 환경부) 2011년 가습기살균제 독성이 처음 보고되고 피해자 집계가 시작된 뒤 약 7년 동안, 목숨을 잃거나 병을 얻게 된 이들의 수는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혹자는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이후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남긴 사고라고 일컫는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남겼다. 오랜 기간 국가는 사실상 책임과 의무를 방기했고, 기업은 발뺌하거나 심지어 보고서를 조작하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교수와 전문가들은 뒷돈을 받고 기업에 유리한 보고서를 써준 혐의로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그 사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장해를 입었고 누군가는 가족의 병수발을 하느라 빚더미에 내몰렸다. 요컨대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우리 현대사에서 갖는 의미는 상징적이다. 거의 모든 대형 사건사고가 그렇듯이, 우리 사회의 부실하고 일그러진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시간이 흘러 환경부는 지난 13일, 가습기살균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살생물제관리법'을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살균제나 소독제, 방충제 같은 살생물제품과 살생물질은 안전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사전 승인을 거쳐 시장에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기존 법체계에서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유해물질을 기업이 수입·제조해 유통하더라도 딱히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 지난해 8월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사고의 재발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 법으로 제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7년 만에 재발방지책이 마련된 셈이다.
 
[2018.03.13 8뉴스 관련기사] ▶ '가습기 살균제' 피해 7년…사전승인제 내년부터 시행
 
● 까다로워지는 화학물질 관리…"검증없이 유통없다"
[취재파일] '가습기 살균제' 7년, 우리에게 남은 것들새 법의 제정과 함께 기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도 개정됐다. 국내 연간 1톤 이상 제조·수입되는 기존 화학물질은 유해성과 유통량에 따라 2030년까지 모두 단계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기존에는 환경부에서 등록대상물질을 3년마다 지정·고시했다. 바꿔 말하면 대상이 아닌 물질은 등록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이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제품 표기 정보의 제한이다. 살생물제품과 안전확인대상 생활화학제품의 경우 '안전한', '친환경', '무독성' 같은 문구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또 확실하게 성능이 입증된 살생물제품 외에는 '항균', '세균 제거' 같은 광고도 금지된다.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 가습기살균제가 그 유독성에도 불구하고 '안전한' 제품으로 버젓이 팔려나갔던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다.
 
나아가 위반 기업에는 강한 과징금도 부과된다. 살생물제관리법을 위반하는 경우 불법제품 판매액에 상당하는 과징금을 물리고 판매액 산정이 곤란한 경우 10억 이내 과징금을 부과한다. 화평법 위반 역시 총 매출액의 5% 혹은 10억 이하 과징금을 물린다. 금전적인 제재를 추가해 사업자의 주의와 책임 의무를 환기하겠다는 취지다. 이전에는 벌칙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했다.
 
● 평생 고통받는 피해자…"피해자 지원 더 신경써야"
[취재파일] '가습기 살균제' 7년, 우리에게 남은 것들법 공포를 앞두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윤미애 씨를 만났다. 전화를 걸었을 때 윤 씨는 마침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지난 2015년부터 몸이 나빠지기 시작한 윤 씨는 결국 지난해 5월 폐 이식 수술을 받았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던 처음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수시로 병원을 찾는다. 이번에도 얼마 전 받은 정기 검진에서 폐가 세균에 감염됐다는 진단을 받고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많이 답답하죠, 봄바람이 불고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되게 나가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또 다시 입원을 하게 되니까 아직 무리구나 싶더라고요."
 
오랜 시간 병과의 싸움에 익숙해진 탓인지 윤 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목에는 폐 이식 수술을 받기 전 기관 삽관으로 생긴 상처가 선명했다. 치료를 받으면서도 집에 두고 온 두 아이가 눈에 자꾸 밟힌다고 했다. 새로 시행되는 살생물제관리법에 대한 감회를 물었다.
 
"너무 당연한 거죠. 사실 벌써 됐어야 하는 거고. 실제로 이건 그냥 인재잖아요. 판매가 되지 않았어야 할 게 판매가 됐기 때문에 일어난 인재인데… 관련법을 마련하라는 얘기가 2013년부터 나왔었다고 하는데 이제서 한다고 하는 것도 좀 그렇고요. 지금이 3월인데,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는 것도 좀 그래요. 이왕 어차피 되는 것 좀 빨리 하면 좋을 텐데."
[취재파일] '가습기 살균제' 7년, 우리에게 남은 것들국가 차원에서는 재발 방지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된 피해자들 입장에선 앞으로의 보상과 지원이 더 절실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윤 씨는 치료비 지원을 일부 받고 있지만 아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사 결과에 따라 환자 등급을 총 4단계로 나눴는데 지난 정부에선 이 가운데 1, 2단계 피해자들만 지원해왔다. 정권이 바뀌고 지난해 하반기에야 사태에 책임이 있는 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을 가지고 윤 씨와 같은 3단계 피해자까지 지원을 확대했다. 전체 피해자 가운데 80%에 육박하는 4단계 피해자 2,796명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피해자들은 환자 등급을 나눈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피해자들을 찾아 등급 폐지와 지원 확대를 약속했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았다)
 
"나라가 국민을 먼저 보호해야 하는데 왜 먼저 나서서 1등급, 2등급 나눠서 차별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옥시 같은 큰 회사들 때문이었는지, 우리나라가 너무 힘이 없어서 그렇게 된 건지… 다들 힘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등급을 나눠서 어떻다 저떻다 하는 게 사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나마 지원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윤 씨는 가끔 "구걸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지원 신청을 했다가도 몇 번을 반려당해 소견서만 대여섯 번을 뗐다. 간병비를 지원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번에 처음 2인실에 입원했기 때문에 입원비가 나올지도 걱정이다. 더 답답한 건 왜 반려되는지, 무엇 때문에 안 되는지 설명조차 듣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윤 씨는 지난 2005년, 두 아이보다 먼저 태어난 큰 딸을 먼저 보냈다. 다른 병으로 입원하게 된 병실에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을 사용한 이후였다. 병명은 '급성곤란 증후군'과 '패혈증'이었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큰 딸은 당시 남아있는 증거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피해보상도 받지 못했다. 병간호를 하느라 병실에서 함께 생활했던 윤 씨 역시 병을 얻었다.
  
● '가습기살균제 사태', 현재진행형
[취재파일] '가습기 살균제' 7년, 우리에게 남은 것들취재진이 만난 윤 씨의 경우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지 거의 10년이 지나서야 폐가 딱딱하게 굳어가는 폐 섬유화 증상이 나타났다. 이런 사례가 비단 윤 씨 뿐일까. 현재까지 정부가 파악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수는 모두 3,995명이지만 아직 피해를 인정받지 못한 신청자까지 합하면 5,995명에 이른다. 자료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 신청조차 하지 못한 이들을 더하면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6년,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1995년부터 2011년까지 폐렴 사망자 7만 명 중 2만 명이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오랜 과정을 거쳐 정부가 7년 여 만에 정부가 재발방지책을 내놓았지만 사실 이런 제도, 다른 선진국에는 일찌감치 있었다. 미국은 지난 1972년부터, 유럽연합(EU)은 1998년부터 살생물제 관리를 위한 별도의 법률을 제정하여 화학물질 및 제품의 시장 출시 전 안전성 검증을 의무화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에 비해선 46년이나 늦은 셈이다. 피해자 윤미애 씨의 말이다.
 
"진작 조치가 됐으면 그 일이 없었을 수도 있고,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법적 책임을 지는 문제도 사실은 좀 미미하게 흐지부지 끝난 부분도 있고. 피해자들은 피해자들대로 아직도, 여전히 고통 받고 있고…."

대법원은 지난 1월 신현우 전 옥시 대표에게 징역 6년형을 최종 선고했다. 관련법 제·개정도 마무리되는 수순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건 그 외양간이나마 제대로 고치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듬는 일이다. 이제야 법은 바뀌고, 세상은 지난 일을 과거로 돌리며 조용히 넘어가는데 윤 씨의 목에 남은 수술 상처는 아직 선명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