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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어느 중소업체 사장의 충격…댓글 문화의 일그러진 자화상

[취재파일] 어느 중소업체 사장의 충격…댓글 문화의 일그러진 자화상
우리 사회의 실업 문제, 구직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청년 일자리 문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최근 중소기업 구인과 관련한 취재 파일( "어디 우리 회사 직원 좀 없을까요?"…어느 중소업체 사장의 절규)을 썼습니다. 엄청난 댓글과 지적이 달렸습니다. 30년간 기자 하면서 적지 않은 기사를 썼지만 이렇게 격렬한 반응은 처음입니다. 기사가 올라간 SBS 뉴스 홈페이지는 물론 양대 포털( 네이버· 다음)에 달린 댓글 90%이상이 부정적이었다는 점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여러 댓글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건 그 동안 문제가 많이 됐던 중소기업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오너 가족 중심 경영에 대한 폐해, 외제차 끌고 다니면서 평일 골프 치러 다닌다든지 하는,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서 회사 규모에 비해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일부 사장들의 꼴불견 행태 등이 경쟁적으로 거론됐고요, 직원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비인격적 대우에 대한 분노도 많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저임금에 잦은 야근과 이 일 저 일 다해야 하는 열악한 근무 조건, 출퇴근이 힘든 교통 오지에 위치해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 받지 못하는 기숙사 생활에 대한 반감이 상당했습니다.
네이버 댓글 캡처
다음 댓글 캡처
한마디로 말해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뛸지언정 수도권 공단에 있는, 교통이 불편해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중소업체에는 가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사장이 직원 뽑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것은 세상 물정 전혀 모르는,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라는 반응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전자 메일 함을 열어보니 사정은 영 딴판이었습니다. 기사와 관련해 50통 가까운 메일이 왔는데 딱 2통을 빼고 내용이 한결 같아 놀랐습니다. ‘구직 중인데 기사에 거론된 회사 이름과 연락처를 알고 싶다, 급여와 사장 마인드가 좋아 꼭 취직하고 싶다, 일자리 구하기가 힘든데 면접이라도 보고 싶다……’ 뿐만 아닙니다. 회사로 전화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모두 그 중소업체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며 연락처 등을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기자에게 온 문의 관련 이메일
기자에게 온 문의 관련 이메일
기자에게 온 문의 관련 이메일
기자에게 온 문의 관련 이메일
기자에게 온 문의 관련 이메일
인터넷에 달린 댓글 내용이 너무 안 좋아 미안한 마음 때문에 취재에 응해준 사장에게 기사가 나간 뒤 연락 조차 못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나타난 긍정적 반응을 전해주면서 조심스럽게 회사 이름과 연락처를 공개해도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예상 했던 대로 사장은 크게 당황한 상태였습니다. 직원들과 논의해 본 뒤 연락을 주겠다는 겁니다.

일단 메일 보낸 사람 모두에게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좀 기다려 달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습니다. 연락처를 묻는 전화가 올 때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 답변이 왔습니다. 공개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문자로 온 거절 이유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댓글이 너무 너무 많은데 거의 부정적인 것들이어서 회사 연락처가 공개될 경우 악의적인(또는 선의라 하더라도)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이상한 일들을 벌일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면접 보겠다고 하루에 수십, 수백 명이 전화를 한다던가, 면접을 보고 나서 회사 근무시간과 조건 등에 대해 꼬투리를 잡는다던가, 면접 후 탈락된 사람들이 직원 뽑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더니 왜 안 뽑느냐고 항의한다던가 등등…… 또 이렇게 생각이 부족한 사장은 좀 혼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부러 연락처를 알아내려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고요. 수십 명을 채용하려고 한다면 모르지만 기껏해야 3, 4명 뽑을 건데, 힘들면 힘든 대로 조용히 하는 게 안전할 것 같네요……”

환갑을 얼마 안 둔 그 사장은 말미에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번 일로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배울 것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고, 또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흔하디 흔한 깨달음도 다시금 얻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칼럼이 기폭제가 돼서 지방에 위치한 공단들의 근무 인프라 개선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지금도 계속 오고 있는 메일과 전화 내용을 보면 저마다 구직에 대한 절박한 사정이 있는 거 같은데 기사 쓴 입장에서 연결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몹시 아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문제가 된다 해도 무슨 그리 큰 문제가 있겠냐고 사장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사에 대한 반응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많은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테니까요. 제기된 사안에 대한 여러 시각을 읽을 수 있고 이를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장이 많이 생기면 불통이 문제라는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원활해지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기사에 달린 댓글 상당수가 이런 순기능을 할 수 없도록 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먼저 인신공격성 내용입니다. 사장이 해병대로 군복무를 마쳤다는 것이 그 사람의 인성과 회사 경영 스타일 등을 특정 지을만한 보편적 인과관계가 있을까요? 해병대 나왔으면 더 읽어볼 필요도 없다며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전혀 상관없는 가족까지 끌어들이기도 합니다. 욕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내용을 정확히 읽지 않고 선입견으로 단정한 뒤 몰아 부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기사에 분명히 썼습니다. “중소업체의 고질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친인척 중심 회사경영을 배제하고 장차 회사를 직원들에게 맡기는 ‘사원사장제’를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은 무시되고 정 씨 회사도 친인척 중심의 악덕 중소기업의 하나로 취급돼 집단 공격을 받았습니다.
네이버 댓글 캡처
다음 댓글 캡처
왜 그만둔 직원은 취재 안하고 사장 말만 일방적으로 듣고 기사를 썼냐는 비난이 있었습니다만, 이 기사를 쓴 취지는 어느 한 중소기업의 구직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그 사장이 써 달라고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청년 실업률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거꾸로 중소기업 인력난은 가중되는 ‘미스 매치’ 현상을 실례를 들어 보여주고 정부 정책에 반영됐으면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면 이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또, 왜 굳이 교통 오지에서 사업을 하느냐, 사비를 들여서라도 통근 버스를 운행 해라, 그럴 여유가 없으면 사업을 접으라는 준열한 꾸짖음(?)도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게 중소기업입니다. 처한 상황과 여건이 천차만별입니다. 모두 다 교통 좋은 데서 대기업만큼 월급 주고 회사 꾸려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과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선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데 있습니다. 중소기업 근무여건 개선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부가 세금으로 마련한 예산을 잘 투입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5년간 정부가 청년 일자리 대책에 투입한 예산만 10조원이 넘었는데도 문제는 더 악화되고 있다지 않습니까? 정부가 지난 15일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또 편성하겠다고 발표해 여기 저기에서 분분한 의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사장 개인이 해결할 문제를 왜 정부에게 떠맡기냐고 비난만 할 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중소기업에 부족한 일손은 20만 개가 넘습니다. 앞선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미스매치 현상을 개선하는 게 비용도 덜 들고 더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취업 여건이 맞지 않으면 가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기사 내용에 동의가 안되면 설득력 있게 의견을 제시하면 됩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면서 비난하고, 표피적이고 배설적인 내용의 댓글로 도배가 되면 논의의 장은 사라지고 상황은 개선되지 못합니다. 그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기사에 댓글 등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메일과 전화로 문의를 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그리고 결국 취업을 위한 기회를 얻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을까요?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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