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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80세에 논문 등재한 '공부꾼' 장회익 교수

공부하는 김 기자 - ⑤

[취재파일] 80세에 논문 등재한 '공부꾼' 장회익 교수
▲ 장회익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초빙교수

물리학자이면서 인문학과 동서양 학문을 아우르는 '공부꾼' 장회익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공부의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기억력은 조금 퇴보했지만, 앎의 큰 줄기들을 통합적으로 보는 능력은 오히려 진보한 듯하다. 장 교수는 80세 생일을 맞은 올해, '자유 에너지'에 관한 이론물리학 논문을 세계적으로 정평 있는 학술지에 등재한다. 이론물리학은 수학과 더불어 학자의 연구수명이 가장 짧은 분야. 그런데 15년 전에 정년 퇴임한 그가 전성기 물리학자만이 가능할 법한 업적을 낸 것이다. 공부 프레임으로 볼 때 장 교수의 공부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만 하다.

장 교수의 공부는 그러나 드높은 진리의 세계에서만 노닐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주창한 '온생명이론'을 토대로 환경운동을 해왔고,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자신의 공부 여정을 회고하는 책 '공부 이야기'도 펴냈다. 공부하는 김 기자는 공부의 새로운 모델을 몸소 개척하고 있는 장회익 교수를 만나서 최근에 업데이트된 공부 이야기를 들었다. 장 교수는 올해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초빙교수로 부임해 인문. 사회과학 전공 학자들과 함께 융합학문 세미나를 진행할 계획이다. 어려운 내용이지만, 최신 연구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온전한 앎'의 추구와 양자역학

김 기자) 올해부터는 새로운 환경에서 연구 생활을 하게 되셨는데요, 어떤 공부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장 교수) 요즘 제 주된 관심사는 '온전한 앎'입니다. 이 개념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안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식들의 핵심을 연결하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앎의 틀'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렇게 융합학문 쪽으로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양자역학과 사회과학의 연결'이라는 흥미로운 연구주제와 대면하게 됐습니다. 올해는 이 주제로 다양한 분야 학자들과 함께 세미나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양자역학 부분을 설명하고, 그것이 인문. 사회과학에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 지 함께 토의하려고 합니다.
미니 태양계 발견
김 기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 양자역학이라는 말이 있더군요?

장 교수) 현대문명은 양자역학을 빼고는 설명이 안될 정도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정체와 본질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헤매고 있습니다. 그만큼 심오하고 어렵습니다. 상대성이론조차 양자역학에 비하면 간단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죠. 대중서가 다양하게 나왔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쓴 책이 많더군요. 하지만 양자역학은 모든 물질적 현상을 설명하는 토대이기 때문에, 그것의 핵심만이라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작업은 꼭 필요합니다. 제가 아는 한, 가장 심오한 앎은 '양자역학적 앎'입니다.

김 기자) 양자역학이 인간의 의식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장 교수) 인간의 의식과 주체, 자아를 설명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가장 큰 도전거리라고 할 수 있죠. 인문·사회과학과 연결되려면 인간의 마음에 대한 양자역학 나름의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갈 길이 멀죠. 이와 관련해서 인간의 의식이나 자아를 '몸을 구성하는 물질의 양자역학적 파동함수'라고 설명해보려는 시각이 있더군요. 여기에 따르면 우리는 걸어 다니는 파동함수가 되겠죠. 물론 아직 가설단계에 불과하지만, 흥미로운 관점이라고 봅니다. 좀 더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 공부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것

김 기자) 교수님이 추구하는 공부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일반인의 공부와는 접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나 생각도 드는군요?

장 교수) 제 공부를 예외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저는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운이 좋아서,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는 길을 걸어왔을 뿐이죠. 공부는 누구에게나 중요합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을 체득하기 위해 특별히 뛰어나야 하는 것도 아니죠. 공부는 습관으로 길들여 나가야 합니다. 운이 좋으면 큰 진전이 있겠지만, 아니면 어떻습니까? 현재보다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것이죠.
장회익 교수의 저서 '공부 이야기'
김 기자) 저서 '공부 이야기'에서 앎을 훔쳐내는 '공부 도둑' 이라고 자신을 표현하셨지요? 그 책을 보면 교수님의 공부 여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장 교수)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6·25 전쟁이 일어나서 아버지의 고향인 예천으로 갔는데,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졌죠. 졸지에 시골 농사꾼이 됐습니다. 어린 나이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죠. 농사일을 도우면서 2년 정도 혼자 공부를 하다가 간신히 중학교로 편입할 수 있었어요. 이때 '공부는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것,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체득한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대학이나 미국 유학생활에서도 나 나름의 공부를 해나가는 데 바탕이 됐지요.

● 학문을 하는데 나이는 잊어도 좋다

김 기자) 서울학교 물리학과 교수직에서 지난 2003년에 정년퇴임을 하셨는데요, 그로부터 15년이 지나서 이론물리학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등재하게 된 것이 놀랍습니다. 어떻게 논문을 쓰신 건가요?

장 교수) 사실 저는 일선 이론물리학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됐고, 융합학문에 관심을 쏟으면서 기존 연구들을 돌아보고 통합하는 작업을 해왔죠. 그러던 중에 제가 10여 년 전에 내놓았던 주장 하나를 검토하게 됐습니다. 지구에서 사용되는 '자유 에너지'가 직접 태양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내용인데요, 그 당시에는 제가 그것을 확실히 증명하지 못했더군요. 최근의 연구들을 살펴봤지만, 이론이 아직도 불완전한 상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이 문제를 풀어보게 됐는데, 마침 결과가 명료하게 나오고 다른 알려진 것들과도 맞아떨어지더군요.

그 연구 내용을 정리해서 '자유 에너지의 일반 공식과 광합성'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제가 만든 공식을 이용하면 태양으로부터 지구로 쏟아지는 자유 에너지의 양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마침 이 논문의 가치를 통계역학 저널인 'Physica A'에서 인정해서 이번 3월호에 게재하기로 했습니다. 온라인에는 이미 올라 있죠. 저는 이번 경험을 통해서 "학문을 하는 데 나이는 잊어버려도 좋다. 심지어 가장 수명이 짧다는 이론물리학도 나이 80에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굳히게 됐죠.
Physica A 웹사이트에 실린 장회익 교수의 논문
김 기자) 장 교수님만큼 오래 일선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학계 전체를 통틀어도 흔치 않을 것 같아요?

장 교수) 얼마 전에 제 80회 생일이라고 제자들이 모여서 그동안의 저서와 논문을 정리했는데, 1968년에 제가 첫 논문을 썼더군요. 이번에 쓴 논문이 그로부터 50년 후에 나온 겁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결국 제가 오래 살았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서 학문 패턴도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학문은 역시 젊은 시기에 하는 것이 적합하겠지만, 넓은 영역에 걸친 융합적인 학문은 오히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낙엽이 지니까 줄기가 보인다

김 기자) 노년기에 새로운 지적 능력이 깨어나기도 하는 걸까요?

장 교수) 나이가 들면 일단 지적 활동의 강도가 떨어지고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죠. 하지만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과거의 기억이 선별적으로 사라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결국 내가 중요하게 여긴 앎의 내용들이 주로 기억에 남게 되니까, 앎의 큰 줄기를 더 선명하게 보는 지혜가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낙엽이 지면 나무 줄기가 보이는 이치입니다.

저는 요즘 밤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새벽 3시쯤 깨는데요, 그때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고 제가 하는 이론적 작업들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면 여러 줄거리들이 환하게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과거에는 흔치 않았지만 최근에 꽤 많아졌습니다. 이게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웃음)

김 기자) 요즘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은퇴 후에 도서관을 찾아 독서를 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노년의 공부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장 교수) 나이와 상관없이 공부를 계속하는 게 중요합니다. 30,40대에 공부를 중단한 이후 선입감을 갖고 악만 쓰는 사람이 많은데 삶의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중요한 것은 내가 학습의 주체가 되어서 알고 싶은 것을 계속 추구해나가는 것입니다. 교육이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그런 동기를 만들어주는 것인데, 우리 교육은 오히려 공부를 지긋지긋하게 만드는 게 문제죠.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즐겁게 공부할 때 건강도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허약체질이었고 건강에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더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건강검진에서는 거의 만점을 받았어요. 모든 수치가 정상치로 나온 거죠. 그것을 보면, 지적 활동이 건강을 해치는 게 아니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단, 무리를 하면 안 되겠죠. 저는 한 시간 정도 공부하면 밖에 나가서 걷습니다.
장회익 교수
(김 기자) '온전한 앎'에 대한 연구 결과는 언제쯤 발표하실 수 있을까요?

장 교수) 완결된 것은 아니어도, 중간중간 정리한 내용을 때마다 발표하고 있습니다. 앎의 모든 영역이 '뫼비우스의 띠' 구조로 이어진다는 내용의 글을 최근에 썼죠. 최종적인 연구발표는 수명이 결정할 겁니다. 완결하려면 오래 살아야겠어요. (웃음)

● '온전한 앎'으로의 안내자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서 읽은 장 교수의 저서 '공부 이야기'는 그의 공부 여정을 잔잔한 필치로 서술하고 있었다. 자기중심적인 기억의 왜곡을 경계하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였다. 늘 자기보다 큰 '온생명'을 인식하면서 자신의 '낱생명'을 관조하는 달관이 배어 있다고나 할까? 직접 만나서 들은 장 교수의 이야기도 그의 책만큼 담담했지만 신념과 열정이 함께 느껴졌다. 장회익 교수의 공부 이야기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서 '온전한 앎'의 경지로 우리를 안내해주기를 기대한다.

[공부하는 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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