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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28 : '세상을 바꾼 72일'간의 세계 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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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여자라서 보호자가 필요해요. 혼자 여행할 수 있다고 해도,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빨리 이동하기가 힘들 겁니다…. 의논할 것도 없습니다. 이 일은 남자만 할 수 있어요." 

"좋아요. 남자를 보내보세요. 그럼 같은 날 다른 신문사 대표로 출발해 그 남자를 이기고 말 테니까요."


지난 3월 8일은 110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1월 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다시 불기 시작한 미투 바람은 한국 사회를 혁명처럼 뒤흔들고 있습니다.

맨 위의 대화는 어떠신가요. 요즘 세상에도 "여자가 어떻게…" 운운하는 대화가 오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런 무모하고 무지한 말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겠죠. 유리천장은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 세월이 흘러 좀 낮아지고 얇아지긴 했겠지만요. 다행히도 위 대화는 무려 130년 전 어느 신문사에서 오갔던 대화입니다. 저렇게 답했던 여성은 이 대화로부터 1년 뒤에 세계일주를 떠납니다.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의 힘과 의지를 기리는 '여성의 날'에 걸맞은 책을 골라왔습니다. 줄잇는 고발과 폭로로 세상을 바꾸는 미투의 그녀들을 응원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 

넬리 블라이는 여성이자 기자로, 1864년 미국에서 태어나 1885년 21살에 기자가 됩니다. 기자가 된 계기가 흥미롭습니다. 즐겨 읽던 지역신문에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 있나'라는 전형적이고 노골적인 성차별 내용의 칼럼이 실렸고 이에 반박글을 보냈습니다. 이를 관심 있게 본 편집장이 칼럼을 써보라고 제안했습니다. 멋진 칼럼을 써서 기자로 채용됐습니다. 일하는 여성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넬리는 조지프 퓰리처, 퓰리처상의 그 퓰리처의 '뉴욕월드'로 1887년 이직합니다. 뉴욕월드 기자로서 1889년 드디어 세계일주에 도전하게 됩니다.    

"...나는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제대로 힘을 쏟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일을 마치길 원할 때면 곧잘 이런 말을 듣는다. "너무 늦었어요. 불가능해요."

그러면 난 이렇게 간단히 말한다. "말도 안 돼요! 진심으로 원한다면 할 수 있어요. 문제는, 당신이 그걸 원하느냐는 거죠."...."

"...편집장님한테 75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제가 성공한다면야 기쁘겠죠. 저는 누구와 경쟁하는 게 아니에요. 경쟁할 생각도 없고요. 만일 어떤 사람이 더 짧은 시간 안에 세계 일주를 하려고 한다면, 그건 그 사람의 문제죠. 사람들이 저를 상대로 경쟁한다고 해도 그들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그쪽 사정이에요. 저는 경쟁하는 게 아니에요. 75일 안에 여행하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렇게 할 거예요. 1년 전에 처음 내가 이 일을 제안했을 때 허락받았다면 60일 안에 했을지도 모르지만요."


이 세계일주의 모태가 된 건 물론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입니다. 필리어스 포그라는 영국 신사가 클럽 멤버들과 내기를 하게 돼 80일 기한 내에 세계일주를 떠나는 내용이죠. 넬리가 세계일주를 계획하는 때는 이 소설이 출간된 지 16년이 지났을 때로,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마차와 기차, 그리고 증기선이 주요 운송수단이던 땝니다.    

넬리는 미국 동부에서 대서양을 건너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아미앵, 이탈리아 브린디시, 이집트와 에멘을 지나 인도양을 거쳐 실론섬으로, 다시 싱가포르와 홍콩, 일본을 지나 태평양을 건너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시카고를 지나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베른의 소설처럼 스펙터클한 모험담이 담기지는 않았습니다. 사티이에 희생될 뻔한 여성을 구하는 일도 없고 함께 온갖 모험을 겪는 파스파르투 같은 동행인도 없습니다. 하지만 130년 전 여성이 혼자 세계 일주를 한다는 건 지금과 마찬가지로 몹시 드문 일이었습니다. 넬리가 보도 듣고 느끼는 세계 각국의 풍광과 사람들은 몹시 흥미진진합니다.

책을 읽으며 접하게 된 넬리 블라이의 삶은 책 이상으로 더 인상적이고 감탄을 자아냅니다. 성차별과 편견에 맞서 시작한 기자 넬리 블라이의 펜은, 항상은 아닐지라도 그 주제를 놓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00년이 훨씬 지난 2018년에도 의미 있습니다. "나도 고발한다"는 미투의 용기 있는 폭로자들 또한 넬리 못지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함께 번역 출간된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은 정신병원 취재기인데 정신병자 행세를 하며 블랙웰섬 정신병원에 잠입해 취재하는 모험담입니다. 세트로 나왔으니 같이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출판사 모던 아카이브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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