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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22년 만의 복수극…아직 '법보다 도리가 우선'인 중국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8.02.23 08:04 수정 2018.02.24 18:2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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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절(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 15일, 중국 샨시성 한중시 난정현에선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30대 청년 장 모 씨가 가족을 데리고 성묘를 다녀오던 71살 왕 모 씨 가족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것입니다. 장 씨의 흉기에 왕 씨는 물론 왕 씨의 첫째 아들과 셋째 아들까지 모두 3명이 참변을 당했습니다. 범행을 저지른 장 씨와 왕 씨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던 이웃이었습니다. 장 씨는 범행 이틀 뒤 경찰서로 찾아가 자수했습니다. 춘절 연휴 기간에, 그것도 백주대낮에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 사건은 범행 후 보인 장 씨의 당당해하는 모습과 범행 동기가 알려지면서 중국인들을 또다시 놀라게 했습니다.
정성엽 월드리포트 사진 (사진=펑파이)장 씨의 범행 동기는 범행 22년 전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6년 8월 어느 날, 장 씨의 어머니와 같은 마을에 사는 한 10대 소년이 언쟁을 벌였습니다. 처음엔 사소한 말다툼이었던 게 이내 몸싸움으로 번졌습니다. 화가 난 장 씨의 어머니는 얇은 철판으로 소년의 얼굴을 때렸고, 그러자 이성을 잃은 소년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장 씨의 어머니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크게 다친 장 씨의 어머니는 결국 숨지고 말았습니다.

장 씨의 어머니를 숨지게 한 소년은 당시 18살도 안 된 미성년자였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장 씨 어머니의 장례 비용을 대신 치렀습니다. 법원은 이런 점 등을 감안하고, 또 '장 씨의 어머니도 사고 발생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소년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와 함께 진행된 민사소송에서도 법원은 범행을 저지른 소년이 아직 청소년인 데다 가정 형편도 넉넉치 않은 점 등을 고려해 배상 액수를 정했습니다. 배상액은 9천 639.3위안. 지금 환율로 계산해보면 165만 원에 불과한 액수입니다.

장 씨의 어머니를 숨지게 한 이 소년이 20년 뒤 장 씨가 살해한 왕 씨의 둘째 아들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장 씨는 사고 이후 중학교까지만 다녀야 했습니다. 2001년부터 3년 간 군복무를 하기도 했지만, 제대 후 여기저기 떠돌며 생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던 지난해 8월 다시 집으로 들어온 장 씨는 왕 씨 가족에 대한 복수를 계획했습니다. 공안국 초기 조사에 따르면 장 씨는 22년 전 사건 이후 계속 왕 씨 가족에게 복수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마침 이번 춘절 연휴에 왕 씨 가족이 한 곳에 모였고, 장 씨는 이 때를 노려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장 씨는 살인 혐의로 조사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이 참혹한 복수극은 중국 내 SNS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네티즌들의 반응입니다. 우선 21년 전 판결 내용이 지나치게 공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습니다. 사람을 숨지게 한 사람에게 7년 형을 선고한 것도 그렇지만, 특히 민사 배상액이 165만 원에 불과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거죠. 이 때문인지 장 씨의 복수극에 대해 이해한다, 수긍한다는 의견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한 네티즌은 "빚을 지면 돈을 갚아야 하고, 살인을 하면 목숨을 돌려 주는 게 간단한 사회 법칙" 이라며 "법이 공정했다면 이런 복수극이 발생했겠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어떤 이는 "법대로 하니 망나니처럼 나오고, 목숨 걸고 나오니 다시 법대로 하자고 한다"고도 비꼬았습니다. 또 "중국인들은 아직 정글의 법칙을 믿는다"는 의견도 올라왔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인 만큼 확대 해석하지 말자","20년 전부터 이런 식의 복수를 꿈꿨다는 게 비정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소수의 목소리로 묻혔습니다.

'군자복수 십년불만'이란 중국 고사가 있죠. '군자가 복수를 하는데,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중국인들은 장 씨의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이 고사를 인용하며 정당화했습니다. 대신 이 고사의 진정한 함의가 맹목적으로 복수극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오랜 시간 실력을 기르며, 무엇이 진정한 복수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는 거라는 걸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중국도 엄연히 성문 헌법이 존재하고, 시진핑 국가 주석도 연일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국인의 관념 속엔 법은 사회 규범의 절대적인 위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사회'는 아니더라도, '법보다 인간의 도리(그것도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도리)가 우선'이라는 중국인이 많기 때문 아닐까요?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중국 사회가 법적 안정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사회라는 얘기도 될 수 있을 겁니다. 글로벌 리더를 지향하는 중국 정부로선 이런 현실이야 말로 애써 감추고 있는 시한폭탄 중 하나 임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펑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