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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트럼프 움직인 '한마디'…'펜스'는?

[취재파일] 트럼프 움직인 '한마디'…'펜스'는?
평창 올림픽 정상 외교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던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만찬 회동이 어제(8일) 끝났습니다. 사실상 북미 접촉 성사 여부가 판가름나는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만큼 우리 정부의 기대가 컸지만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미국을 출발하기에 앞서 천명했던 대북 강경 기조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 한미, 北 비핵화 원칙에 한목소리

문재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은 어제 회동에서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대화로 이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또 이를 위해 필요한 협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했고 펜스 부통령도 문 대통령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며 한국에 대한 철통 같은 방위공약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남북 대화를 둘러싸고 양국 간 불협화음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미 최고위급 인사가 직접 만나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재확인하고 굳건한 동맹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면 양국이 평소 밝혀 왔던, 솔직히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원론적 수준의 공감대를 확인한 것으로 우리 정부가 기대했던 ‘성과’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 文 "'남북대화·北 참가' 美 기여 커"
문 대통령/잠시뒤 펜스 부통령과 만찬
문 대통령은 펜스 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공개 발언의 대부분을 환영과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데 할애했습니다. 먼저 펜스 부통령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면서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국빈 방한에 이어 다시 한번 굳건한 한미 동맹과 양국 국민 간 연대를 대내외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평창 올림픽 성공을 기원해준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도 감사인사를 잊지 않는 세심함도 보였습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미국의 확고한 원칙과 긴밀한 한미 공조가 북한을 남북 대화와 평창 올림픽 참가로 이끌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습니다. 남북 대화의 성과는 물론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도 미국의 확고한 대북 제재와 압박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는 것으로 대북 성과를 미국의 공으로 돌린 겁니다.

이어 “우리로서는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북한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노력해나가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북 대화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도 의식한 듯 “늘 강조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 간의 빈틈없는 공조이며 또 펜스 부통령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그러한 공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추진하고자 하는 ‘대화 시도’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면서도 이 모든 게 미국의 협조가 있어 가능했고 또 이 과정에서 결코 미국이 소외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강조한, 완곡하면서도 미국의 체면을 최대한 살려주는 북핵 대화 해법 제안인 셈입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남북 성과는 미국 덕’ → ‘성과 살려 대북 대화 추진’이란 논리 전개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발언을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4일 한미 정상 통화가 좋은 예입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한반도 비핵화 목표 달성을 위해 확고하고 강력한 입장을 견지해온 것이 남북대화로 이어지는데 도움이 되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했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대화 성사를 평가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남북 대화 과정에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알려달라. 미국은 100%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 펜스 "미국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
문재인 대통령-펜스 부통령
남북 대화의 성과를 미국의 공으로 넘기면서 타진한 대북 대화 제안이었지만 펜스 부통령의 반응은 트럼프 대통령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펜스 부통령은 한미 동맹의 결속을 다시 한번 다지기 위해 왔다면서 한미 간 최대 현안으로 북핵 문제를 꼽았습니다. 이어 “미국은 북한이 영구적으로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핵무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그날까지 미국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을 한국과 함께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펜스 부통령은 최대한의 압박을 통한 북핵 완전 폐기를 강조하면서 “한국 국민과 대통령께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씀 드리겠다”라는 표현을 두 차례나 쓰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이런 결의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도 덧붙였습니다. 우리의 우회적인 대화 해법 제시에 대해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걸로 풀이됩니다.

공개 발언에서의 이런 확고한 입장 표현 때문이었을까요? 이후 비공개 접견과 이어진 만찬에서 주목할 만한 대화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정부가 바라는 남북 관계 부분에서는 말입니다. 회동 후 나온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 역시 공개 모두 발언을 다시 정리한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비공개 부분에서 직접적인 북미 접촉 제안도, 한미 훈련 재개 문제도, 추가 대북 제재 발언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이나 펜스 부통령이나 서로 입장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굳이 그런 말이 필요 없었는지 모릅니다.

● 문제는 대화의 조건…조급증은 금물

정리해보면 최대한의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대화로 이끈다는 원칙에는 한미 모두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대화 시작을 위한 조건이 무엇이냐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대화를 시작해야 돌파구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가급적 대화를 서두르자는 주장인 반면,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북한이 대화를 제재 약화와 시간 벌기에 이용해 온 과거 전례가 있는 만큼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더욱 난처한 것은 전과 달리 이제는 북한이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접점 찾기가 더욱 쉽지 않아졌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핵 폐기를, 북한은 핵 공인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이들 둘을 마주 앉히려 하다 보니 우리 정부만 중간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간 북핵 문제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라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남북 문제는 몰라도 북핵 문제는 국제 핵 질서를 깨고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받으려는 북한과 이런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미국이 직접 풀어야 할 문제라는 설명입니다. 정부가 북미 대화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안타깝지만 당사자들이 나서지 않는 한 중재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북미 간 대결이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는 우리에게도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동맹인 미국, 동족이자 주적이기도 한 북한을 상대로 지나친 조급증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노력은 하되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릅니다. 혹여 이번 정부 내에 뭔가 성과를 내고자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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