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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김여정 만날까? 말까?…오락가락 미국의 속내

[월드리포트] 김여정 만날까? 말까?…오락가락 미국의 속내
평창올림픽에 미국과 북한이 실질적 2인자를 대표단으로 보내면서 미북 접촉이 이뤄질 지가 '올림픽 정치'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일촉즉발(一觸卽發), 일전불사(一戰不辭)까지 갔던 양측이 올림픽을 계기로 만나고, 나아가 서로의 의중을 전할 수 있다면 북핵 위기 국면에서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 행정부가 북한과 만남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만남의 결과는 물론 접촉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펜스 부통령이 미국 올림픽 대표단장으로 결정된 이후, 미국의 첫 번째 메시지는 북한과 접촉 자체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난 4일(이하 한국시간) 청와대 안팎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올림픽 기간 북한측 인사와 마주치지 않도록 의전에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우리 정부에 당부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각국 정상급 인사가 참석하는 9일 개막식 리셉션에서 미국 대표단 자리를 북한 대표단 자리와 가까이 배치하지 말아 달라는 구체적인 주문까지 있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현 단계에서 북미 간 접촉이나 대화 가능성을 거론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미국에서 유동적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지난 6일 남미를 순방 중인 틸러슨 국무장관이 페루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과의 접촉과 관련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대표단장이 펜스 부통령도 같은 날 한국으로 떠나기 전 앨라스카에 들러 북미 접촉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듯한 발언을 했다. 펜스 부통령은 북한측과 만날 가능성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항상 대화를 믿는다고 밝혀왔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운을 뗀 뒤 "하지만 저는 북한과 어떠한 면담도 요청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We'll see what happens.)"고 답했다. 물론 펜스 부통령은 "북한과 만나더라도 할 말은 같을 것"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야욕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전제다. 그럼에도 북한과 우연이라도 만나지 않겠다고 알려진 그가 접촉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
그러나 이런 기류는 하루 만에 다시 정반대로 돌아섰다. 미 국무부가 7일 공식 브리핑에서 "우리는 평창올림픽 기간이나 그 이후라도 어떠한 북한 관리와도 만날 계획이 없다"고 부인한 것이다.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펜스 부통령과 틸러슨 국무장관의 발언과 다르다는 지적에는 "두 사람은 미국이 올림픽에 갈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말한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며 "북한이 최종적으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야욕을 포기해야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그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그동안 미 행정부가 남북한 관련 현안에서 메시지 혼선을 빚을 때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다만 그의 역할은 주어진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 입장 발표에 집중돼왔고, 정무적인 판단이나 미래의 변수로까지 질문이 이어지면 "그건 내가 모른다(Not that I'm aware of it)"라며 즉답을 피해왔다. 말 그대로 현재 상황에서 정답을 전하는 역할을 해온 사람이다. 그런 나워트였기에 '북한과의 접촉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미 행정부가 정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또 한번의 반전이 있었다. 북한 김여정의 방한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 매티스 국방장관이 백악관 브리핑에서 올림픽 기간 미국이 북한과 만날지는 전적으로 펜스 부통령에게 달려있다는 말을 한 것이다. 매티스 장관은 백악관 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펜스 부통령이야말로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북한과 대화를 할지 결정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매티스 장관은 미 행정부 장관 가운데 가장 진중하고 말이 무겁기로 유명한 인물이다. 자신의 상관인 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는 원론적인 답변일 수 있지만 하루 전 국무부의 공식 입장과는 온도차가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지금까지 과정을 정리해보면, 미국의 입장은 <북한과 마주치지 않도록 해달라→무슨 일이 일어날 지 지켜보자→어떤 인사와도 만날 계획이 없다→펜스 부통령이 결정할 것이다>로 변화해 왔다. 이렇게 미국이 북한측과 만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행간을 읽기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자 북한이 선수를 치고 나왔다. 북한 외무성 조영삼 국장은 8일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문답에서 "명백히 말하건대 우리는 남조선 방문 기간 미국 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조 국장은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같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북한의 외교 담당 부처인 국무부와 외무성이 똑같은 결론을 공표한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올림픽이라는 초대 무대에 앉기도 전에 장외에서 기싸움을 하는 모양새로도 비친다.
 
워싱턴의 미북 관계 전문가는 "펜스 부통령이 김여정과 만나더라도 그 만남은 협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입장을 통보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북한 정권의 폭압성을 강조한 트럼프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과 지성호씨를 비롯한 탈북자의 백악관 초청, 그리고 북한에서 가혹 행위를 받고 숨진 웜비어 부모의 올림픽 동행 등 일련의 과정을 볼 때, 지금 국면에서 미국이 먼저 북한에 대화의 손을 내미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렇다면 변수는 없는 것일까? 국무부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만일 북한이 먼저 의미있는 대화에 나오겠다는 신호를 보낼 경우 국무부는 당장 비행기를 타고 북한이라도 날아갈 것'이라고 농반진반으로 분위기를 전했다. 오늘(9일)부터 열리는 평창올림픽 기간 어떤 일이 일어날 지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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