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오리무중 韓·美 훈련과 '코피 작전'…엿보이는 美 속내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8.02.02 12:00 수정 2018.02.02 14: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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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리졸브(key resolve)와 독수리(foal eagle) 연습, 즉 연례적인 춘계(春季) 한미 연합 훈련의 일정이 아직도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은근히 심각한 일입니다. 수많은 나라들과 훈련을 해야 하는 미군 입장에서는 한미 연합 훈련만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습니다. 특히 병력과 장비를 대대적으로 움직이는 독수리 연습은 일정 확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훈련은 축소됩니다.

“매년 하는 훈련이니 한 해 정도 좀 줄여서 하고, 사정이 정 안 되면 건너뛴들 어떠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추가적인 훈련 연기와 이에 따른 축소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유엔이 올림픽 기간에 분쟁과 적대적 행위의 중단을 권고했으니 평창 올림픽이 끝난 뒤로 연합훈련을 미룰 수는 있지만 남북 대화를 위한 훈련의 연기 또는 축소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기류입니다.

평창 올림픽 폐막에 맞춰 한미가 조율했던 날짜가 있었고, 대충 보도도 됐었는데 현재는 백지화됐습니다. 지금까지 한미 연합 훈련 시간표가 확정되지 않은 이유는 평창이라기 보다는 남북 대화의 분위기 조성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북한에게 양보해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지금의 상황을, 미국은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전언들이 들립니다. 우리나라와 ‘코드’가 맞지 않으니 미국이 독자적으로 대북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코피 터뜨리기 타격(bloody nose strike) 작전이 바로 그것입니다.

● "비핵화의 초점을 흐리지 마라!"
송영무-매티스 한미 국방장관얼마 전까지만 해도 독수리 연습은 4월 1일부터 2개월 간 진행된다는 관측이 국방부 주변에서 파다했습니다. 어떤 당국자는 “시간표가 확정됐다”고 확인도 했습니다. 한미가 평창 올림픽에 맞춰 날짜를 그렇게 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들이 쏙 들어갔습니다. 훈련 시간표도, 훈련의 종류와 규모도 모두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말들만 돌아다닙니다.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이유는 밝힐 수 없다”면서 “독수리 연습 일정은 현재도 한미가 논의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토요일인 1월 27일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의 핵심 의제가 한미 연합 훈련이었는데도 훈련 일정을 못 잡았고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습니다.

“Olympics talks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should not distract from the internationally agreed goal of denuclearizing the North.”

남북 대화가 국제적으로 합의된 북한 비핵화의 목표에서 주의를 흩뜨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남북이 대화를 해도 좋은데 북한의 비핵화를 몰아붙이는 데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로도 읽힙니다.  

미국의 정관계에 정통한,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전문가는 “북한이 남북 대화를 하자며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우리나라가 이를 받아들이면 상황이 꼬인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남북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연합 훈련의 연기 또는 축소, 더 나아가 경유 제공과 같은 제재의 유예를 미국에 제안하면 미국은 심각한 시그널로 여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응석을 받아주기 시작하면 장차 북한과 비핵화 대화를 할 때 북한을 다루기 어려워질까 경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전문가는 최근 미국에서 정관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트럼프 정부의 기류를 파악하고 돌아 왔습니다. “미국은 현송월 일행에게 쩔쩔매고 북한의 무례한 노쇼에 끌려다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평창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 일 없겠지만 평창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행태가 계속되면 미국은 우리나라를 신뢰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못 믿겠다면 미국의 선택은 단독 행동으로 수렴됩니다.

● 북한 비핵화의 열쇠는 '코피 터뜨리기 타격'인가 남북 대화인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美 함정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가 갑자기 낙마했습니다. 임명이 철회된 뒤, 빅터 차는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에서 코피 터뜨리기 타격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코피 터뜨리기 타격을 반대해서 그의 한국행이 막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코피 작전은 어릴 적 아이들 싸움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상대 아이의 콧잔등을 기습적으로 후려치면 그 아이는 흐르는 피와 얼얼한 통증에 겁먹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북한의 핵심 시설 가운데 한두 군데만 골라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수십발로 초토화시켜서 북한을 겁에 질리게 하겠다는 작전입니다.

미국 정치 전문가 박지광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 전하는 트펌프 행정부의 계산은 이렇습니다. 미국은 지난 65년 동안 북한을 한 번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공격 못한다”는 확고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공격도 못하는 ‘종이 호랑이’ 미국이 비핵화하라고 아무리 압박해도 북한은 귓등으로 듣는 척하면 그만입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방편이 코피 터뜨리기 타격입니다. 북한이 제한적이지만 제대로 맞고 나면 “미국이 더 큰 주먹도 휘두르겠구나”라고 겁을 집어먹고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제 발로 걸어 나올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바람대로 북한이 겁먹고 맞고만 있을까요?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은 “코피 작전은 큰 모험”이라며 “나 같으면 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강경파인 빅터 차도 척 헤이글과 비슷한 이유로 코피 터뜨리기 작전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사활을 핵에 걸고 있는 북한은 코피 작전에 맞설 수 있는 잠수함, 사이버 공격 부대, 테러 부대 등 비대칭 전력을 충분히 거느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상대로 은밀하게 어뢰 공격이나 대규모 사이버 테러, 또는 지하철 역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테러를 한 뒤 시치미를 떼는 경우 미국은 난감해집니다. 북한 소행이라고 단정도 못하고 미국이 당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즉각적인 응징이 어려워집니다. 코피 작전은 북한이 맞은 다음에도 보복 않고 비핵화 테이블로 걸어 나오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양보하면서 남북 대화하면 북미 대화로 이어지고 비핵화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느냐, 이 역시 코피 터뜨리기 타격만큼이나 불확실합니다. 미국은 겉으로는 남북 대화를 환영하면서 대화의 ‘굴레’를 피할 수 있는 평창 이후를 바라보고 있는 형국입니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이 3중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