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뺨검둥오리 사체에서 나온 농약은 살충제성분인 벤퓨라캅, 카보퓨란입니다. 그런데 검출된 농약은 치사량의 무려 45.1배나 됐다고 과학원은 밝혔습니다. 영국곡물생산협회에 따르면 메추라기 대상 카보퓨란의 치사량은 1kg당 2.5~5.0mg이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농약을 먹고 죽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흰뺨검둥오리의 농약중독은 먹이로 먹은 볍씨를 통해서였습니다. 저류지 바위에서 발견된 볍씨에서도 농약성분인 카보퓨란이 치사량 이상 검출됐습니다. 누군가 고의로 볍씨에 농약을 묻혀 바위에 뿌려 놓았고, 먹이인 줄 알고 덥석 먹은 오리들이 독성에 중독돼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논바닥에 누군가 뿌려놓은 농약볍씨로 인해 가창오리 51마리가 죽었습니다. 또 농약에 중독돼 죽은 가창오리를 먹고 독수리 11마리가 폐사했습니다. 멸종위기종이자 겨울진객인 독수리는 월동을 하러 우리나라를 찾아옵니다. 살아 있는 동물을 사냥하는 대신 죽은 동물을 먹는 습관이 있다 보니 농약중독으로 폐사한 가창오리를 먹고 2차 피해를 당한 것입니다.
분석한 결과 대부분 사체에서 농약이 검출됐다고 밝혔습니다. 부검을 통한 검사결과 농약성분이 나온 야생조류 폐사체는 무려 28건, 5백66마리에 이릅니다. 분석대상 가운데 87.5%에서 폐사원인이 농약중독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나머지 4건 67마리의 폐사체에서는 농약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새들은 질병이나 배고픔, 충돌 등으로 죽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야생조류는 물고기나 조개 등 수중 생물을 잡아먹거나 과일, 볍씨 등을 먹습니다. 이런 먹이습관을 이용해 누군가 볍씨에 농약을 섞어 농경지나 하천 등에 뿌려놓아 야생조류의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계절별로는 12월부터 시작해 1월과 2월에 폐사가 집중 발생했습니다.
농약 등을 살포해 야생생물을 포획, 채취하거나 죽인 사람은 2년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만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조류가 피해를 볼 경우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될 만큼 형량이 높아집니다. 처벌 규정이 있는데도 독극물 피해가 계속 나타나는 것은 범인 검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범행장소가 인적이 드문 농경지나 하천 등인데다 대부분 방범용 CCTV도 별로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목격자나 신고자가 없을 경우 독극물을 살포한 범인을 잡기는 어렵다고 수사 담당자들은 말합니다.
처벌보다는 야생생물에 대한 인식의 개선과 민주적 시민의식의 함양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새들을 포함해 야생생물은 퇴치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생태계의 구성원들입니다.
배가 고파 아무 의심 없이 볍씨를 먹었을 뿐인데 그곳에 들어 있는 농약에 중독돼 죽게 된다면 야생조류의 원망이 얼마나 심할까요? 농약 볍씨는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입니다. 야생 생물에게도 안전하고 떳떳한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