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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민 정책의 역습, 비어가는 강남 임대주택

선한 의도, 명분만으론 정책 성공 못한다

아크로리버파크
요즘 강남 아파트 급등세가 세간의 화두다. 강남 아파트의 변동성이 주택시장에 어떻게 여파를 미치고, 전체 경제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는 일단 젖혀두고, 그 가공할 오름폭과 상대적 박탈감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렇게 모두가 원하는 그 강남 아파트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속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80평방미터(예전25평형)의 호가가 20억 원에 육박하는 반포의 아크로리버파크를 비롯해, 래미안 신반포 팰리스 같은 강남·서초구의 고가 아파트에 있는 장기전세주택들 말이다. 이들 빈집은 서울시가 사들여 주변 시세의 80% 정도로 서민들을 위해 임대해주는 주택들이다.

서민들을 위한 강남의 임대주택 건설은 지난 2003년의 이른바 10.29 부동산 대책 때 이미 나왔던 정책이다. 당시 정부는 강남 아파트 급등세가 아무래도 꺾이지 않자 소형평형 의무화, 개발이익환수제와 함께 재건축에 임대아파트 의무건설을 전격 도입했다.

취지는 선한 의도에서다. 부자동네에서 발생하는 지나친 개발이익을 거둬들여 서민들을 위한 임대아파트를 공급하고, 또 다른 한편으론 서민과 부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상적 환경을 가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한 의도가 야속하게도 빈집이 속출하는 것은 서민용 임대주택에 서민이 들어갈 수 없어서다. 시세보다 20%나 깎아줘도 전세금이 5억-6억 원 선이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서민들이 별로 없다보니, 그 비싼 아파트가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입주율을 높이려고  신청조건에서 월 소득 한도를 거의 6백만 원에 육박하게 완화했지만, 그럴 경우 임대주택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령 버거운 조건을 뚫고 들어갔더라도 시선은 곱지 않다. 입주자가 ‘서민적’이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부자들을 위한 임대주택이란 비아냥거림과 강남 임대 아파트를 운영할 돈으로 다른 데다 공공 임대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는 게 서민정책에 부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까지 쏟아진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들
● 거부하기 힘든 선한 정책이 실패하기 쉬운 이유

선한 의도와 명분을 지닌 정책이나 법은 거부할 수가 없다. 만약 거부하다간 선하지 않은 사람이나 집단으로 매도되기 때문이다. 선한 정책이 실효성까지 갖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산 좋고 물 좋은 정책은 좀처럼 쉽지 않다.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가 흐지부지된 이유는 창업 생태계의 실상을 안일하게 생각한 부분이 크다. 창업기업이 생기고 커 나가야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에 활력이 일겠지만, 한 번 실패에 창업자가 신용불량자가 되고, 창업기업의 좋은 기술을 대기업이 탈취하는 불공정 구조의 개선이 뒤따라가지 못했다.  

현 정권을 포함해 대부분의 정권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을 중요시했지만 결과는 혼란스럽다. 취약 근로자들에겐 오히려 실직위험이 커지고, 한계상황에 있는 5백만 자영업자들은 높아진 임금을 감당 못 하겠다며 아우성친다. 동시에 이런저런 부작용을 뒤늦게 막으려다 보니 재정지출 규모는 처음 작정한 것보다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어떨까.그 걸로 삶의 질이 높아지고 근로시간을 쪼갠 만큼 일자리가 늘어나면 좋겠지만, 근로자들 일각에선 노동 강도가 세진다고 불만이고, 열악한 환경의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겐 애초부터 근로시간 단축 자체가 무의미하다. 기업은 기업들대로 우리 근로자의 낮은 노동생산성을 거론하며 추가 고용에 인색하다.

대북 정책도 그렇다. 통일과 남북화합은 좋은 것이기에 선한 의도로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지만, 그동안 노력한 우리 선수들의 노고에 반한다는 반발 분위기가 거세게 일고 있다.

● '이기적 인간'을 인정하고 정책 수립해야

선한 의도만으로 성공이 보장된다면, 수많은 정책실패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인간이 이기적 동물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시간외 수당을 더 받기 위해 여전히 장시간 근로를 원하는 대기업 근로자가 있음을, 부동산이든 비트코인이든 자산을 한 번에 크게 증식하고자 하는 투기 혹은 투자 욕구가 있음을, 통일이 좋은 것이지만 나에게 이득이 안 되면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교육 평준화를 원하지만 내 자식만은 특출하기를 원하는 심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선한 의도와 명분을 가진 정책엔 겉으론 동조할지 모르지만, 상당수의 경제주체들은 속으론 빠져나갈 궁리를 하게 된다. 어떤 정책이든 부작용이 없을 순 없다. 좋은 정책은 목표를 향한 실효성은 최대화하면서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정책이다.

한없이 좋은 명분에 경제주체들 혹은 시민들이 한없는 지지를 보낼 것이란 순진한 기대를 접어야 한다. 과도한 명분으로 포장된 채 예상되는 부작용을 억지로 숨기는 정책 역시 피해야 한다. 민감한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이기적 인간’을 솔직히 인정하고, 경제주체들이 자연스레 따라올 수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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