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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시진핑은 왜 헌법에 이름을 넣으려 할까?

1948년 제정 이래 9번을 고친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과 130개 조항, 부칙으로 구성됐습니다. 현행 헌법이 1987년에 개정됐으니까 이젠 서른 살을 넘겼군요. 중국도 역시 헌법이 있습니다. 1954년에 제정됐고, 여러 차례 개정했습니다. 현행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1982년 개정된 헌법인데, 이후에도 몇 차례 수정 절차를 거쳤습니다. 중국 헌법의 기본 구성도 우리 전문에 해당하는 서문과 국민의 의무와 기본권, 국가와 정부의 구성과 역할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난데없이 우리와 중국의 헌법 얘기를 꺼낸 것은 어느 헌법이 더 권위와 실효성을 갖는지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두 나라의 헌법을 한번 훑어보다 보니, 눈에 띄는 명문상의 차이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엔 특정인의 이름이 명기돼 있지 않습니다. 현행 헌법도 그렇고, 개정 전 헌법들도 그렇다고 합니다. 사실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특정인이 이름이 헌법에 명기돼 있을 거란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대부분 국민들이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하실 걸로 생각됩니다. 헌법은 국가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이고, 이를 제정하고 개정하는 주체도 국민 전체라는 게 우리의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특정인의 이름을 헌법에 명시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거센 국민적인 저항에 부딪칠게 자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 헌법에선 서문에서 여러 특정인의 이름을 접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이 등장합니다. 그 다음은 마오쩌둥의 업적이 언급됩니다. 헌법 서문에 쑨원과 마오쩌둥의 중국 창건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있는 겁니다. 공산주의 사상가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름이 등장한 뒤 다시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이 지도이념으로 명시돼 있습니다. 중국 현대사의 권력자들이 헌법에 이름을 올린 모습을 보니, 경제사회문화 교류와는 별개로 우리와 중국은 통치 이념과 제도가 분명히 다른 나라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진핑
현 중국의 절대권력자인 시진핑 주석도 선임자들의 뒤를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사회주의 사상', 이른바 시진핑 사상, 자신의 이름이 담긴 문구를 헌법에 지도이념으로 넣겠다는 겁니다. 사실 시진핑 사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이해한다는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시진핑 사상은 이미 공산당 당장(우리는 당헌이라고 부릅니다)에 삽입됐고, 중국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시험 문제로도 출제되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시진핑 주석의 이름이 헌법에 명기되는 작업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19기 중앙위원회 2차 전체회의(19기 2중전회)에서 통과된 상황이라 3월 예정된 우리나라 국회격인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라는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면 중국 헌법 서문에 시진핑 주석 이름도 오르는 겁니다.

중국도 헌법의 개정 주체가 인민이란 개념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 과정이 존재하는 거죠. 그런데도 헌법 명문에 이렇게 특정 개인의 이름을 명기하는 이유는 뭘까요? 흔히 전문가들은 특정인 이름을 헌법에 명기함으로써 그 사람의 정치적 위상과 권위를 높이려는 의도라고 분석합니다. 일리 있는 분석이지만, 너무 피상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독재자의 색채를 도드라지게 만드는 부작용도 못지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시진핑 사상이 헌법에 명시되는 상황에 대한 외신 매체의 평가는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분위기입니다. 가뜩이나 국제사회 이목에 부쩍 신경 쓰는 시진핑 정부가 이 점을 모르지 않을 겁니다.



지난해 19차 당대회를 진행하던 도중에 공산당 입장을 대변하는 한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이론의 창립과 발전은 당의 영도자가 주도해서 완성된다"는 겁니다. 당의 영도자(최고 권력자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가 국가 운영의 중대한 문제를 착안하고, 이념을 제기하고, 여러 활동을 이끌고, 모든 정책을 결정한다는 얘깁니다. 현재로선 이런 모든 역할을 하는 영도자는 시진핑 주석이기에 지금 시대의 지도 이념은 시진핑 주석의 생각(사상)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마오쩌둥 시대엔 마오쩌둥의 생각(사상)이, 덩샤오핑 시대엔 덩샤오핑의 생각(이론)이 그 시대를 이끄는 핵심 사상이었기에 그들의 이름이 헌법에 명기됐듯이,  새로운 시대를 맞은 중국을 이끄는 시진핑 주석의 생각(사상)도 헌법에 명기되는 건 당연한 일이란 겁니다. 이 교수의 설명을 듣고 보니,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시진핑 사상이 왜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운지도 이해가 됩니다. 특정 개인의 생각을 무슨 재주로 명확히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형식상 헌법 개정의 주체인 중국 국민들은 최고 권력자의 이름이 헌법에 명기되는 걸 별 거부감 없이 동의하는 걸까요? 사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별 관심 없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중국 매체의 한 기자는 "중국 인민이 동의하는지, 안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따다(시 주석을 일컫는 말)가 기쁘면 그만"이라고 말했습니다. "딱히 개인의 이름을 넣지 말라는 규정이 없으니, 권력자가 이름을 넣고 싶으면 명기하면 된다"는 해석도 내놨습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대답이었습니다.

다른 매체의 한 기자는 권력자 이름을 헌법에 명기하는 걸 "역사적인 기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초기 지도자들이 구 소련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아서 소련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특정 권력자의 이름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공로나 업적을 칭송하는 게 아니라, 그 시대의 중국 사회의 핵심사상을 그 시대 권력자의 이름으로 표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헌법에 이름을 올린다고 해서 그렇지 못한 지도자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반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일반적인 분석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한 얘기였습니다.

분명 우리와 중국 국민의 헌법에 대한 감정은 다릅니다. 때문에 헌법에 명시된 단어 하나하나마다 느끼는 무게감도 당연히 다를 겁니다. 어쩌면 헌법의 권위와 실효성 문제와 함께 생각해본다면 시 주석의 이름 명기 개헌작업에 대한 평가는 훨씬 단순한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 관점에선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주석이 마오쩌둥, 덩샤오핑 반열에 오르려는 행위라는 단순한 분석엔 거부감이 드는 사실입니다. 중국 사회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에 따른 분석이라기보단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감정적이고 피상적인 결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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