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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사건을 취재하느라
숨 가빴던 그 순간이 떠올랐어요.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어요.

검찰이 언론에 슬쩍 흘린 걸
덥석 문 것처럼 나왔는데

사실 발로 뛰어 취재했거든요.
당시 제 나이 31살, 7년 차 기자였어요.

평소처럼 마와리*를 돌다가
친하게 지내던
대검찰청 이홍규 공안4과장
사무실에 들렀어요.
"경찰, 큰일 났어."

그는 무심한 듯 말을 내뱉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고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맞장구를 쳤죠.
“그러게 말입니다.
요새 경찰들 너무 기세등등했어요..”

“그 친구 대학생이라지. 서울대생이라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조사를 어떻게 했기에 사람이 죽는 거야.
더구나 남영동에서...”

찻잔을 잡은 두 손이
덜덜 떨렸어요.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남영동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이 사망했습니다.
아직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모릅니다.”

화장실로 달려가
확보한 사실 몇 가지를
수첩에 적은 뒤,
사회부 데스크*에 보고했습니다.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서울지검 검사들을 일일이 만나며
단서를 확인했지만

숨진 대학생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석간신문이었던 중앙일보는
이미 기사 마감 시간을
넘긴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경찰 조사받다가 숨진
서울대생 이름이 뭐였죠?”

“박종...뭐더라...언어학과 3학년.”


서울지검 학원 담당 검사실에서
겨우 단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담당 기자부터
부산 주재 기자까지 '팩트'를
확인하기 위해 달라붙었어요.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드디어 확인한 이름 석 자.
신문을 찍어내던 윤전기를 멈추고 
이 기사의 1보를 실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사건이지만
7면에 간신히 들어갔습니다.

당시 정권은 보도지침까지 내리며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있었거든요.
보도가 정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자들은 안기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어요.

저부터 사장까지
줄줄이 잡혀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그날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회사 근처 여관에 숨어 있었습니다.

참 많은 생각이 들었던 밤이었어요.

기자 생활을 접게 될 수도 있었죠.
가만히 제가 지난 6년 동안
쓴 기사들을 돌이켜봤어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훗날 자식들이
“기자로서 뭘 했냐”고 물었을 때

“박종철 군의 억울한 죽음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고 하면
절대 부끄럽지 않겠다고요.
이 기사의 파장은 컸습니다.

외신과 다른 언론사들이
연이어 보도하자
정권은 뒷수습하기 바빴죠.
언론을 불신했던
국민들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였어요.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된 국민들은
들고 일어났습니다.

돌이켜 보면 중요한 건
기사의 분량이 아니었어요.

‘박종철이라는
젊은 학생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거였죠.
첫 제보자인 이홍규 공안과장과는
그때 일에 대해 25년간,

서로가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분도
“진실이 반드시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제보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정의를 위한
순수한 열망이 모이고 모여서,

저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첫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진실을 담은 기사는
언젠가 누군가의 눈에 띄게 마련입니다.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어느덧 30년이 지났고
요즘 ‘기자’는 ‘기레기’로까지 불리고 있어요. 

마치 제가 '받아쓰기' 하느라
국민들의 외면을 받았던
그 느낌이라고 할까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건
결국 언론인의 몫이거든요.
“모든 기자는 역사와 만나 
 그 물줄기를 바꾸는 꿈을 꿉니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책임,

그 무게를
우리는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영화 1987의 실제 주인공 인터뷰를 담은 카드뉴스. 그 네 번째 인물은 박종철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신성호 전 중앙일보 기자(현 성균관대 교수)다. 당시 정권의 언론 탄압이 있었지만, 신성호 교수는 위험을 무릅쓰고 박종철 사건을 처음 보도했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기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언론에 대해 들어본다.

기획 채희선, 박채운 / 보조 이승환 인턴 / 그래픽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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