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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누가 '비트코인'을 두려워하랴?

우리 곁에 '벌써' 널리 퍼져 있는 미래

[취재파일] 누가 '비트코인'을 두려워하랴?
# 사례 1. 토목설계회사에 근무하는 김 모 상무는 요즈음 사무실 분위기가 당황스럽기만 하다. 비트코인 열풍에 휩쓸린 젊은 직원들은 짬만 나면 가상화폐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이런 저런 규제가 시작되기 전 비교적 빠르게 투자에 뛰어들어 대부분 직원들이 상당한 수익을 남겼다. 누구는 얼마를 벌었네, 누구는 연봉만큼 땄네…… 심지어 계속 회사를 다녀야 하는 지 고민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성실하게 직장 근무하는 게 더 이상 미덕이 되지 못하고, 알게 모르게 한 탕 주의가 판을 치는 상황이다. 김 상무도 이런 분위기를 비껴가지 못하고 경험 삼아 몇 백 만원의 소액 투자를 해봤다. 80만원 정도 이익을 봤을 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팔아 버렸다. 주식 시장과 달리 개장, 폐장 시간 없이 24시간 이어지는 비트코인 거래 가격 변화를 끊임 없이 들여다 볼 수가 없었고 등락의 상, 하한선이 없다는 것도 계속 갖고 가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 사례 2. 퇴근 하고 집에 돌아온 정 모씨는 대학생 아들이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빠, 비트코인 거래 가격이 상당히 떨어졌는데 지금이 투자 적기에요. 나도 돈 만 있으면 지금 들어가 한 몫 잡는 건데……” 정씨는 다니는 대학교에서 비트코인을 사고 파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있느냐고 아들에게 물었다. “등록금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5백만원을 번 애도 있고요, 정확히 조사는 안 해봤지만 주위에 비트코인 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아요.” 졸업해도 취업이 힘드니 비트코인으로 돈 벌어 창업하는데 자금으로 쓸 요량인 학생들도 상당수란다. 학문을 갈고 닦아야 할 상아탑이 열심히 공부하는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기 보다는 투자 열병에 시달리고 있다.
프랑스·독일, 비트코인 규제방안 공동 추진
최근 대학 동문 모임이 있어 참석했다. 일년에 서너 번 정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가볍게 네트워킹을 다지는, 주로 학계, 연구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열 명 안팎의 소규모 모임이다. 평소엔 인문학적 주제로 의견을 나눴는데 이 날은 자연스럽게 비트코인 화제로 흘러갔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암호화폐)가 진정 화폐로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있다면 언제부터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풍으로까지 표현되는 비트코인 이상열기에 대한 우려 등을 놓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서로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것만 주장하다 헤어졌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이다.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은 엄청난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상화폐에 대해 알고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블록체인, 해시, 탈 중앙화, POW (Proof of work, 작업증명), POS (Proof of stake, 지분증명) 등 생소한 개념과 용어가 무수히 등장하는데다 기존 화폐 기능과 시스템으로 이해하는데 엄청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대중에게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때론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어 보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최근 관심을 모았던 모 방송의 TV 가상화폐 토론회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비트코인을 하는데 시스템을 꼭 이해해야 한다는 게 필수조건이라는 건 아니다. 비트코인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기본적인 전자지갑 개설조차 해보지 않고 거래소를 통해 주식 거래하듯 비트코인을 사고 팔면서 문제없이 돈을 따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데 돈을 잃을 경우는 문제가 된다. 비트코인 묻지마 투자 열풍에 휩쓸려 큰 손해를 본 사례들이 시사고발뉴스 프로그램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손해 본 사람들 인터뷰 내용을 요약해 보면 가상화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주식, 부동산 투기 하듯 뛰어들었다 사기를 당하고 낭패를 봤다는 것이다. 다단계와 마찬가지다, 폭탄 돌리기와 진배없다는 비유도 나온다.
비트코인 채굴기 투자 피해자들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가 A4용지 9쪽짜리 논문을 내고 비트코인을 최초로 시작했을 때, 10년 후 ‘김치 프리미엄’같은 국제적 이상 과열 현상이 일어날 줄 예견했을까? 가상화폐에 대한 평가와 찬반이 갈리는 상황에서도 급속도로 확산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는 가상화폐가 우리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린 디지털이 추구하는 가치(개방, 공유, 혁신)와 부합되기 때문이다. 탈 중앙화를 근간으로 하는 가상화폐 시스템(블록체인)은 ‘혁신’적으로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사람 모두에게 거래 장부를 ‘개방’하고 ‘공유’하게 함으로써 해킹을 무력화시켜 안전성을 담보한다. 디지털이 우리 삶을 주도하는 한 가상화폐는 쇠퇴하기는커녕 더욱 활성화될 가능성이 크다.

2000년 한국에 엄청난 인터넷 광풍이 불었다. 버블이 꺼지자 돈 번 사람들보다 크게 잃고 깡통 찬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 지금의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이 된 것은 당시 인터넷 광풍에 힘입은 바 크다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지금 다시 투기성과 도박성을 동반한 비트코인 광풍이 불고 있다. 바람이 잦아들면 돈 딴 사람과 잃은 사람이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는 우리 삶 속에 더욱 영향력을 끼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좀 억울하지 않겠는가? 본질을 모른 채 주위 분위기에 휩쓸려 묻지마 투자를 했다가 나중에 잃은 쪽으로 분류된다면 말이다.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해 피할 수 없다면 주저하지 말고 부딪히되 한탕주의의 무모한 행동은 자제하는 현명한 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윌리엄 깁슨의 유명한 말이 있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서 글을 끝맺고 싶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그리고 벌써 널리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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