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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선수만 35명' 대규모 단일팀의 문제점은?

[취재파일] '선수만 35명' 대규모 단일팀의 문제점은?
올림픽 사상 최초의 단일팀인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전체 엔트리 35명의 대규모 팀으로 결정됐습니다. 예상대로 경기당 출전 엔트리는 22명이고, 북한 선수들이 경기당 3명씩만(?) 출전 엔트리에 포함되게 됐지만, 전체 엔트리에 북한 선수가 12명이나 포함된 건 예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단일팀 발표를 앞두고 5~6명의 북한 선수가 합류할 것이라는 설과 10여명의 북한 선수들이 한국에 내려와 트라이아웃을 거친 뒤 최종 3명을 선발한다는 설 등이 돌았습니다.) 한국 선수 23명을 모두 전체 엔트리에 포함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우리 선수들의 피해가 예상되고, 너무 큰 규모의 선수단이 꾸려지면서 또 다른 부작용도 우려됩니다.

● 1. 매 경기 한국 선수 3명은 제외

경기마다 3명의 북한 선수가 출전하기로 합의하면서, 매 경기 한국 선수 3명은 빙판을 밟지도 못하게 됐습니다. 평생에 한 번 뿐일지도 모르는 올림픽 무대만을 바라보며 구슬땀을 흘린 한국 선수 가운데 13%는 경기 마다 링크를 떠나 있어야 합니다.

● 2. 12명의 북한 선수…기량 검증 시간 부족

전체 엔트리에 포함될 북한 선수 규모가 예상보다 훌쩍 커지면서 새러 머리 감독의 고민은 더욱 커지게 됐습니다. 북한 선수들이 오늘 당장 내려와도 올림픽 개막까지 20일도 남지 않은 데다 사전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12명이나 되는 선수들의 기량을 모두 파악하고 장단점을 분석해 경기에 나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국, 올림픽 사상 첫 단일팀인 'COREE' 여자 아이스하키 팀은 자기 팀 선수들의 전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최고 무대에서 최고의 팀들과 기량을 겨루게 됐습니다.

● 3. 더욱 복잡해진 출전 엔트리 구성
남북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여자 아이스하키는 22명의 출전 엔트리 중 골리 2명을 제외하고, 2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5명씩 4개의 조를 구성한 뒤 교체 투입하며 경기를 치릅니다. 무엇보다 같은 조 선수들의 호흡이 중요한 만큼, 단일팀에서도 1~3조는 기존 한국 대표팀의 1~3조 그대로 두고, 4조에서 한국 선수 2명과 북한 선수 3명이 호흡을 맞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단일팀은 (1~3조에서 제외된) 5명의 한국 선수와 북한 선수 12명, 총 17명의 선수를 가지고 4조에서 뛸 선수 5명을 추리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 선수들의 포지션과 북한 선수들의 포지션을 맞춰야 하고 (각 조는 공격수 3명(센터, 레프트 윙, 라이트 윙) + 수비수 2명으로 구성됩니다.) 선수들의 특성과 호흡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조를 짜더라도 매 경기 이 선수들만 내보낼 수 없다는 게 또 문제입니다. 단일팀의 취지에 맞게 모든 선수가 최소한 한 번 이상은 경기를 뛰게 해야 하는 만큼, 머리 감독은 새로운 선수가 들어가는 조합을 맞추기 위해 5~6번이나 골머리를 앓게 됐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조별리그 3경기와 순위 결정전까지 최소 5경기에서 최대 6경기를 치릅니다.) 매 경기 상대팀을 분석하고 이에 맞는 맞춤 전술을 짜야 할 시점에 우리는 출전 엔트리를 다시 짜는데 시간을 들이게 됐습니다.

● 4. 멀어진 당당한 첫 승

“이제는 다른 팀들이 우리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고, 퍼포먼스나 쇼를 위한 팀으로 생각할 것 같아서 속이 상합니다.” 남북 단일팀에 대해 취재하면서 한국 대표 선수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세계 최고 무대에서 당당하게 기량을 겨루고 당당하게 첫 승을 거두기 위해서 누구보다 많은 땀방울을 흘렸는데, 이제는 경기력으로 평가받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꿈의 1승은 더욱 멀어졌고 (단일팀 문제로 선수들이 흔들리고, 매 경기 출전 명단이 바뀌어야 하면서 전력의 약화는 불가피해졌습니다.) 만약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더라도 당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경기력에 보탬이 되냐는 여부를 떠나서) 한 팀만 전체 엔트리를 1.5배 이상으로 꾸려서 승리를 거둔다면 이긴 팀도, 진 팀도 뒤 끝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첫 상대인 스위스 아이스하키 협회는 일찌감치 단일팀의 전체 엔트리 확대는 공정하지 않고 경기를 왜곡한다(it's not fair and distort competition)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 5. 라커룸에서 작전 회의를 할 수 있을까? 커도 너무 큰 단일팀

전체 엔트리 35명의 대규모 선수단은 경기 외적으로도 많은 고민과 어려움을 안겨줄 전망입니다. 경기장 라커룸과 벤치 모두 팀당 23명의 선수 규모로 지어진 상황에서 지금 당장 공사를 하더라도 35명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새롭게 만들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또, 평소보다 1.5배나 많은 인원이 훈련에 참여하게 되면서 기존의 훈련 방식도 상당 부분 바꿔야 하고, 코칭스태프를 포함하면 40명 이상의 인원이 많은 장비를 가지고 버스 한 대로 움직이는 것도 여의치 않을 것입니다. 이 밖에 숙소나 보안 문제에서도 숱한 골칫거리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 이제는 선수가 주인공입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팀
이번 남북 단일팀을 만드는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선수들은 철저히 소외됐고, 정부와 체육회는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상처와 균열이 남았고, 앞에서 언급했듯 경기력과 선수들 사기 측면에서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단일팀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이제는 상처와 균열을 치료하고 메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올림픽 사상 첫 단일팀이 마지막에라도 웃을 수 있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한 체육회, 그리고 아이스하키 협회가 지금까지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상급 기관이나 갑이 아닌 후원자이자 서포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올림픽의 주인공은 선수이고, 그들을 응원하는 국민입니다. 남은 기간 단일팀 홍보를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나 쇼보다는 선수들이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그들에게 전권을 주길 바랍니다. 지난해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중국을 꺾고 눈물 흘리던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 감동을 제발 단일팀에서도 다시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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