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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진실을 지켰지만 부끄러웠던 검사

나의 1987년이 부끄러운 이유
얼마 전,
남영동 대공분실에 갔어요.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1987년,
영원히 떠나버린 그를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사전 보고라도 받아서 고문을 막았더라면
검사로서 죽음을 막지 못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과거에 제가 하던 일도
돌아보게 됐죠.
영화에 나온 것처럼, 
당시 저는 서울지검 공안부장검사였습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1987년 1월 14일 늦은 저녁,
갑자기 치안본부 대공수사관 2명이 
사무실에 들이닥쳤습니다.
"수사하던 중 대학생이 쇼크사로 죽었으니
신속히 화장하게 처리해주십시오.”
‘건장한 체격의 대학생이 갑자기 쇼크사?’

‘게다가 죽은 지 채 하루도 안 된 아들을
부모가 얼굴도 안 본 채 화장을 시킨다?’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건 분명히 고문이다.’

정식 절차를 밟고 오라 얘기하고, 
허튼짓을 못 하게
시신보존명령까지 내렸습니다.
85년 김근태 고문사건
86년 부천 경찰서 권인숙 고문사건

민주주의 사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문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공안부장 자리에 앉힌 이유를 잘 생각해라.”

“밤길 조심해라.”

보직은 물론 신변의 위협도 받았죠.
전화를 피하려고 동생 집에 가 있었는데,
아내가 나중에 말하더군요.
제가 한 일이라곤 억울한 화장을 막고,
부검을 공정하게 진행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검사의 의무지만
험난하고 외로운 일이었습니다.
박종철 군의 죽음을 
끝까지 파헤쳐보려 했지만
군부 정권하에선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때 양심을 지켰던
다른 분들이 없었더라면

진실은 밝혀지지 못했을 겁니다.
사실 부끄럽습니다.

저는 공직자의 한 사람이었고,
결국 그를 살해한 건 공권력이었으니까요.
처음 검사로 임관할 때 선서했습니다.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로서…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
늘 이 선서를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정권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일들도 많았습니다.
당시 저는 많은 사람들을 
구속해야 했습니다.

공안부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해야 했으니까요.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불가피하게 구속하는 일도 적지 않았죠.
관련 사진하지만 그 학생들…
 다 풀어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학교도 다니고, 강의도 들으며 지냈을 텐데..
여전히 후회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제게 1987년은 
여전히 뜻깊으면서,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1987년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최환 검사는 영화 <1987>에서 하정우 역의 실존 인물입니다. 그는 화장을 막고, 부검을 진행하여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최환 검사는 당시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부끄러운 심정이 든다고 밝혔습니다.

기획 채희선, 박해정 인턴 / 그래픽 김태화,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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