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목소리는 16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반도 안보와 안정을 위한 외교장관 회의'서도 제기됐습니다. 이 회의는 미국과 캐나다 주최로 한국전쟁 참전국을 포함한 20개국 외교장관이 모여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개회사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신뢰성 있는 협상을 위해 테이블로 나올 정도로 북한 정권의 행태에 대해 더 큰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틸러슨 장관은 이렇게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최대한의 압박 기조를 재확인하면서 중국에 대한 메시지도 내놓았습니다. "우리는 쌍중단 접근(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함께 중단하는 것)을 거부한다. 우리의 적법한 방위·군사훈련이 북한의 불법적 행동과 같은 선상에 놓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에 의한 통남봉미(通南封美)식 이간책과 함께 중국에 의한 쌍중단 같은 유화책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경고의 뜻으로 풀이됩니다.
백악관은 통화 이후 크게 두 가지 부분을 강조한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하나는 ‘두 정상이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 작전을 계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 있는 지도력에 감사를 표했다’는 부분입니다. 정상 간 통화 이후 한미 모두에서 ‘두 대통령이 통화에 매우 만족해했다’는 평가를 내놓았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직후, 올해 처음으로 주재한 백악관 국무회의 석상에서 문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매우,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남북 대화가 어디로 갈지 지켜볼 것이다.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습니다.
정상 간에 이 정도 소통이 이뤄졌으면 한미 간에는 남북 대화를 두고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후 우리 정부 당국자의 미국행은 계속됐습니다. 지난주에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워싱턴에 와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이 당국자는 “미국 측에 초동 단계로 남북대화를 설명했고, 일부에서 불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그걸 잘 설명해주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불안의 내용에 대해선 “혹시 남북관계가 너무 앞서 가는 것에 대해 불안해할까 봐 한미 공조 속에서 갈 거라고 했다. 미국측에서 잘 이해를 했고, 의구심이 심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상 간 통화에도 불구하고 미 조야(朝野)에서 의구심이 있을까 실무선에서 직접 와서 남북 대화의 경과와 내용을 설명했고, 미 NSC측도 우리의 설명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도 않아 NSC의 수장인 맥매스터 보좌관이 다시 우리 정의용 실장을 만났습니다. 워싱턴도 아닌 미 서부에서 그것도 비밀리에 회동을 한 겁니다.
혈맹인 한미 간에, 그것도 북핵처럼 시급한 이슈를 놓고 여러 채널로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공조를 다지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정상 간 통화 이후 불과 1주일도 안된 시점에 우리 NSC 수뇌부와 외교부 당국자까지 미국을 찾아올 만큼 급박한 상황이 펼쳐진 걸까? 그건 의문입니다. 남북 대화 전에는 북한이 어떤 도발을 했더라도 이런 정도의 빈번한 한미간 대면 접촉은 없었습니다. 모양새로만 보면 미국이 자꾸 우리에게 남북 문제를 놓고 다짐을 받으려 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남북 대화 진행 과정에서 우리에게 섭섭함을 느낀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소문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면서, 미국의 조바심을 더한 신뢰로 바꿀 솔직하고도 담대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