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패딩, 3%의 보온성 차이에 1,000%의 가격 치른다

말로만 동물복지…겨울 패딩 온통 거위털

겨울마다 가끔씩 등장하는 기사 제목이 있다. “거위털 아니어도 따뜻”, “동물학대 논란에 합성 충전재 인기몰이”, “리사이클링 ‘착한 다운’ 인기”라는 유형의 제목을 가진 기사들이다. 겨울옷의 대명사인 패딩옷 안에 채우는 보온 충전재를 우모(羽毛)같은 천연소재가 아닌, 폴리에스터를 기반으로 하는 합성소재로 만든 옷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운패딩 하나를 만드는데 거위 20마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다운 채취용 거위는 가슴부위의 털을 6주마다 한 번씩 10번을 뜯긴 후 도살당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모를 쓰지 않는 인공충전재 패딩 판매가 크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틀린 기사이다. 한마디로 오리털이나 거위털을 쓰지 않고 인공충전재를 쓴 패딩제품은 큰 장이 선 올 겨울에도 여전히 인기가 없다. 거위털이나 오리털 같은 우모(羽毛)를 써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업체들의 상혼과, 보온에 우모(羽毛)만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소비자의 인식 때문이다.

사실 환경, 인권, 동물복지와 같은 인간의 고결성을 강조하는 가치는 매우 이중적이다. 치러야 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어지간한 결심이 아니면 선택하기 힘들어서다. 그래서 많은 경우 편한 선택을 수용한다. 경제성, 합리적 선택을 이유로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 가격은 수백% 이상 차이, 보온성은 3%p 차이

실제로 보온에는 우모만 한 게 없다. 신슐레이트나, 프리마로프트, 웰론 같은 뛰어난 인공 충전재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가볍고 따뜻한 정도에서는 거위털이나 오리털 같은 천연소재가 여전히 우위에 서 있다. 그러나 몇 배나 비싼 가격만큼 보온성에서 그만큼 차이가 나는 것은 전혀 아니다.
SBS 8뉴스 실험 화면
SBS 뉴스에서 거위털, 오리털, 합성충전재의 보온성을 실험한 열화상 사진이다. 비슷한 분량의 충전재를 넣은 패딩을 사람에게 입힌 뒤, 일정 시간이 지난 다음 온도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붉은색 계열이 많을수록 그 부위의 온도가 높다는 걸 의미한다. 사진을 보면, 역시 보온성이 가장 뛰어난 쪽은 거위털 패딩이다. 그 다음이 오리털이고, 인공 충전재의 순이다.
KOTITI 시험연구원 보온성 실험결과
공인연구기관인 KOTITI의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소재별로 특정온도를 일정 시간 동안 얼마나 지켜내는지를 살펴보는 보온성 실험결과를 보면, 거위털이 94.1, 오리털이 93.9, 인공충전재인 웰론이 90.8을 기록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상식이나 선호도와 거의 일치하는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한편, 옷매무새를 좌우하고, 세탁이나 장기간 착용에도 보온성을 유지하는 복원력의 부분에서는 오히려 인공충전재가 더 나은 모습을 보인다.
SBS 8뉴스 실험결과
전문가들은 보온성 차이 10%p 정도는 보통사람들이 체감으로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렇게 본다면 전혀 체감하기 힘든 대략 3%p의 차이를 위해 소비자들이 수백% 이상의 가격을 치르는 셈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패딩의 신제품 가격을 보면, 찾아보기도 힘든 인공충전재 패딩은 거의 10만원대 미만인데 비해, 거위털 제품은 60~70만원은 물론, 외국제품의 경우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미세한 보온성을 위해 엄청난 가격 차이를 감수하는 셈이다.
 
● 아웃도어 업체, 이윤 많이 남기는 거위털에 '올인'

올 겨울은 유독 춥다. 가볍고 따뜻한 패딩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거기다 평창 롱패딩에서 촉발된 유행까지 더해지면서 아웃도어 업체가 모처럼 활짝 웃고 있다.

아웃도어 업체들에겐 4계절 가운데 겨울이 대목이다. 봄·여름 제품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기 때문에 비싼 제품을 팔 수 있는 겨울장사에 목을 건다. 몇 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는 성장정체에 허덕이던 아웃도어 업체 입장에선, 그동안 불만족스러웠던 매출을 한꺼번에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윤을 최대한 높이는 방법은 비싼 제품을 집중적으로 파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올해 유명 업체들의 주력 제품은 모조리 거위털 패딩이다. 유명 연예인을 동원해 거위털 제품이 아니면 올 겨울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이 광고를 한다. 광고비에 각종 마케팅 비용까지 더해지면서 신제품 가격은 서민들이 선뜻 구매할 수 없을 정도까지 치솟았다.

그나마 가격이 조금 더 싼 오리털 제품은 스파오나 자라 같은 이른바 중저가 SPA 브랜드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업체들의 마케팅에다 고가 제품을 더 신뢰하는 소비자들의 기호가 어우러져 대한민국은 거위털 공화국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인공충전재 시장에는 이런 열기가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인공충전재 웰론을 제작하는 세은텍스 관계자는 최근 들어 “샘플제작에 대한 문의만 늘고 있을 뿐, 판매량 자체는 예년과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 외국은 반반, 우리는 9:1 다운 선호

거위털과 오리털 패딩을 선호하는 성향은 한국이 단연 세계 최고다. 유럽이나 미국의 패딩 시장을 보면, 이른바 천연소재 다운제품과 인공 충전재 제품의 비율이 반반 정도이다. 제품 가격도 다운 제품이 인공충전재에 비해 20% 정도 비쌀 뿐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운제품의 비율이 9:1 정도로 인공충전재에 비해 높다. 소비자들이 막상 인공충전재 제품을 사려고 해도 마땅한 제품이 없는 것이다. 가격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많게는 열배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남윤주 블랙야크 마케팅 팀장은 “제조업체들은 판매부진에 대한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인공충전재 제품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알리고, 소비자들도 동네 뒷산 오르는데 고어텍스를 안 입어도 된다는 걸 학습한 것처럼, 일상생활에 인공충전재 패딩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학습해야만 다운제품에 대한 극단적 선호현상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더불어 많은 등산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겨울이 다른 곳에 비해 습도가 높기 때문에 습기를 만나면 보온력이 크게 약해지는 다운 충전재보다는, 땀이나 눈비에 젖어도 보온이 유지되는 인공 충전재가 훨씬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다운제품에 대한 극단적인 쏠림 현상을 보면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의 공급과 합리적인 선택의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