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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귀순병의 증언②] "북한군 7할은 귀순 고민…北 정권 오래 못 가"

지난 취재파일 ▶ [귀순병의 증언①] "발차기로 추진철책 뚫어"…그날의 진실은?

SBS와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우리 군의 최전방 경계 실태를 폭로한 귀순 병사 A씨는 다른 주제의 이야기도 상세히 들려줬습니다. A씨는 북한 최전방 감시 초소에서 수년간 경계 근무를 선 경험이 있고, 귀순한지 1년이 채 되지 않는 20대 초반의 청년입니다. 귀순병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북한군의 실상을 두 번째 취재파일을 통해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북한군에 대한 A씨의 설명 가운데 일부는 사실상 팩트체크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장고 끝에 SBS와의 인터뷰에 응한 귀순 병사 A씨
● 귀순병의 첫 인상…훤칠한 키에 곱상한 얼굴의 청년

A씨의 첫 인상은 제가 예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왜소한 체구에 시커먼 피부색, 꾀죄죄한 행색일거라 짐작했는데 실제로 본 A씨는 훤칠한 키에 하얗고 곱상한 얼굴을 한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A씨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귀순을 하려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북측 감시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던 겁니다. 그러나 정작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지뢰' 때문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매설돼있는 수많은 지뢰를 피해 안전하게 귀순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경기도 연천 비무장지대에서 큰 불이 나면서 A씨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불은 우리 철책에 닿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번졌는데, A씨는 이 불로 지뢰가 상당수 제거됐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특히 평지보다는 언덕 쪽 지뢰가 많이 소실됐을 걸로 추정해 북측 철책을 빠져나오자마자 포복으로 산을 넘어 군사분계선(MDL)에 접근했습니다.

"산불이 나서 불이 북한군 초소를 넘고, 국군도 아마 피해를 봤을 겁니다. 뉴스를 보니까 나왔더라고요. GP도 넘어와서 불이 났다고. 산불로 인해서 비무장지대에 있는 지뢰가 다 폭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A씨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비무장지대를 지나는 동안 단 한 개의 지뢰도 밟지 않고 무사히 귀순에 성공했습니다.

● "북한 정권에 더 기대할 게 없다"

A씨가 본격적으로 귀순을 생각하게 된 건 지난 2012년 이후였다고 합니다. 2012년은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해입니다. 처음에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김정은 치하에서는 모든 게 풍족해질 거라는 얘기도 돌았다고 합니다. A씨도 한때는 이 말을 굳게 믿었습니다. 새 지도자의 젊은 패기와 온화한 미소에 희망을 걸었던 겁니다. 그러나 현실은 180도 달랐습니다.

"2012년이 되면 모든 게 풍족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2012년이 다가왔는데 너무 한심하고...(중략) 그런데도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을 정해 놓고, 인민생활은 풀리는 게 아니고 점점 더 극심해지고..."
신년사 발표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 정권의 각종 부정부패를 알게 된 것도 A씨의 귀순에 한 몫을 했습니다. 무자비한 내부 숙청이나 당의 비리에 대한 내밀한 정보는 주로 대북 전단지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합니다. A씨는 북한이 폐쇄적이긴 해도 외부 정보가 아예 차단돼있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대북 풍선에 담겨 넘어오거나 중국에서 몰래 들어오는 USB 메모리에 김정은 정권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많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대북 풍선은 생각보다 멀리 이동하는데, 평양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함경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A씨가 내린 결론은 김정은 정권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불확실성.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도 있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하면서 더 이상 북한 체제에 바랄 게 없다. 지금 정권이 하는 일이 바르지 않다. 오래 못 간다. 이 정권을 위해 청춘을 바치기 싫다. 새롭게 시작해보자. 그래서 귀순을 하게 됐습니다."

● "태영호 공사 망명 소식에 귀순할 마음 굳혀"

북한 정권에 대해 실망한 A씨가 귀순할 마음을 굳힌 건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태영호 공사의 망명 소식을 접하면서부터입니다. 2016년 8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가족과 함께 대한민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당시 태 공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내 아들은 나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망명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망명하겠다는 결심을 이야기하자 아들들이 굉장히 기뻐했고 자유를 얻게 된 것을 정말로 감사히 여겼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태 공사 같은 최고위층 지식인이 망명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왼)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공사, (오) 대북 확성기
"일반 외교관이라고 해도 북한에서는 고위층인데 공사는 한 대사관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최고위층이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북한에서 자유를 얻고 완전히 놀고먹는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북한 체제에 침을 뱉고 돌아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잖아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결심해 일주일 만에 탈북했습니다."

● "북한군 10명 중 7명은 귀순 고민"

귀순을 고민한 사람은 A씨뿐이 아니었습니다. A씨는 많은 북한 병사들이 한번쯤은 탈북을 고민한다고 증언했습니다. 어림잡아 북한군 10명 중 7명은 탈북을 생각해 봤다는 겁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탈북을 시도하는 사람이 적은 건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첫 번째 두려움은 비무장지대의 '지뢰' 입니다. 실제로 비무장지대는 '지뢰밭'으로 불립니다. 특히 군사분계선 북쪽에 많은 지뢰가 매설돼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앞서 A씨도 이 지뢰 때문에 탈북을 주저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두려움은 북측에 남아있는 가족에 대한 북한 정권의 보복입니다. A씨는 김정은 정권이 군인의 탈북 사실이 민간에 퍼지는 걸 매우 경계하기 때문에 설령 병사가 귀순해도 그 가족을 공개적으로 처벌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의 무자비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북한 병사들이 보복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기는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마지막 두려움은 북한군 추적조에 대한 걱정입니다. 북한군 최전방 감시 초소에서 근무를 서는 ‘민경대대원’들은 북한군 병사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신장이 크고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정예 병사들입니다. 탈북 과정에서 동료들에게 사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귀순을 고민하는 북한 병사들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남북한 초소
그럼에도 탈북 시도는 끊이지 않고 꾸준히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2013년부터 자신이 귀순한 2017년 6월 13일까지 중부전선에서 탈북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은 북한 군인은 모두 13명이라고 말했습니다. A씨는 귀순을 시도하다가 지뢰를 밟고 숨진 병사의 시체를 수습한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이 매우 끔찍했다고 회상했습니다. 북한군 참모부에서는 그날의 사건사고를 늘 병사들에게 전파하며 경고 메시지를 준다고 했습니다.

"참모부에서 알려줍니다. 오늘은 보병 몇 군단에서 탈영자가 생겼다. 넘어가다가 잡혀서 사망했다. 너희도 근무 잘 서라. 이런 식으로. 그 말 듣는 순간 섬뜩하죠. 어떻게 죽었냐. 지뢰 맞아 죽었다."

● "북한군은 '총 쥔 농사꾼'"…식량난에 허덕여

A씨는 북한군의 실태가 매우 열악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의식주가 늘 문제인데, 이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식(食)'이라고 합니다. 식량이 매우 부족해 북한군의 80%는 자급자족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군인이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건데 이 때문에 '총 쥔 농사꾼'이란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군인으로서의 임무보다는 농사짓는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더 많을 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총을 들고 있는데 농사를 지으니까. 군대 복무해도 농사만 하다 가고. 군대 오기 전에는 집에서 자랐으니까 곡괭이질 한 번 못해봤어요. 군에 와서 삽질, 홉바질 다 배웠거든요. 농사를 다 배웠습니다."
식량난에 농사짓는 북한군
북한군의 실정이 이렇다 보니 A씨는 경계근무를 서면서 늘 맞은편에 있는 국군 병사들이 부러웠다고 합니다. 서 있는 위치만 다를 뿐 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데, 국군은 직접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으니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는 겁니다. 또 국군은 휴가도 가고 전화기도 사용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A씨는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고, 심지어 전화 통화 한 번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국군은 얼마나 행복한지. 문화생활도 다 하니까. 손전화 다 하고. 어머니하고 전화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부러웠습니다."

● 김정은 말씀 "당이 평화조약을 맺어도 군은 싸움을 준비하라"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을 환영하며 한반도기를 흔드는 대학생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씨에게 물었습니다. A씨는 UN을 필두로 세계 각국이 대북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북한이 수세에 몰리자 타개책의 일환으로 올림픽 참가 카드를 꺼냈을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척 하면서 뒤에서는 도발 계획을 짜고 있을 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2015년에 김정은 말씀으로 나왔습니다. 당에서 적들과 교류를 하든 협상을 하든 어떤 평화조약을 체결하든 군에서는 일체 신경 쓰지 말라. 군의 임무는 싸움 준비, 조국 통일의 위업이다. 싸움 준비에 박차를 가해 명령을 내리면 단숨에 남한을 먹을 수 있게 싸움 준비만 하라."

A씨가 '김정은 말씀'을 얘기했지만, '국토 방위'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군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 해빙무드에도 우리 국군 장병들은 각자 임무 수행에 24시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케네디는 '전쟁 준비를 해놓아야 평화도 준비할 수 있다는 건 안타깝게도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그렇게 험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 "공부하고 싶습니다"…귀순병의 꿈은 'IT 전문가'

인터뷰 말미에 A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그토록 갈망하던 자유를 얻은 청년입니다. 대답은 의외로 담백했습니다. "공부가 하고 싶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컴퓨터 다루는 걸 좋아했는데, 대학에 진학해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하나원의 지원을 받아 IT 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탈북 청년은 온 몸으로 지적 갈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20대 청년의 순수한 열정을 목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이 된 A씨가 앞으로 닥칠 역경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며 자신의 꿈을 훨훨 펼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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