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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무늬만 차량 2부제에 환경부 소속기관장 "직원들 반성시키겠다"

[취재파일] 무늬만 차량 2부제에 환경부 소속기관장 "직원들 반성시키겠다"
● 한산한 주차장 두고…바깥 떠도는 차량들

환경부 소속, 산하기관 4곳이 모여 있는 인천 환경종합연구단지 직원들은 지난 일요일 같은 내용의 문자를 전달받았습니다. 월요일 아침 짝수 번호판 차량은 몰고 오지 말라는 통보였습니다. 환경부 미세먼지 저감조치의 일환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연구단지 안으로 들어서는 차량들은 대부분 홀수 번호판 차량이었습니다. 가끔 들어오는 짝수 번호판 차량들은 모두 합당한 이유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공해 차량, 장애인 차량 등 2부제 예외 차량들이었습니다. 주차장은 한산했습니다. 연구단지 안에서 차량 2부제는 물샐 틈 없이 지켜지고 있었습니다.

밖은 달랐습니다. 연구단지 바로 앞 도로엔 짝수 번호판 차량들이 열 지어 주차돼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차들이 서 있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차량들 위로 견인지역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산한 주차장을 두고 견인지역에 차를 댄 이유는 명료했습니다. 연구단지 안으로 들어가려다 쫓겨난 겁니다. 연구단지 내 차량 2부제가 철저하게 지켜졌던 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모든 직원들이 2부제를 지킨 게 아니라 2부제를 지킨 직원들만 들여보낸 결과였습니다.

● 몰아내면 그만? 단지 밖에서도 배기가스는 나오는데…

취재가 시작되자 연구단지 직원들이 뛰어나와 차를 몰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직원들은 일을 하다 얼른 차를 빼라는 방송을 듣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관리 직원들은 차 유리창 앞에 붙은 연락처를 보고 차를 빼라고 전화했습니다. 30분 만에 차들은 모두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던 차량 중 몇 대는 연구단지 주차장 안에서 발견됐습니다. 다른 몇 대는 다른 도로변을 찾아 한참을 헤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차량 2부제의 취지를 생각해봅니다. 출퇴근 차량 대수를 반으로 줄여보자는 게 원래 의도입니다. 집을 나서지 말았어야 할 차들이 출근길에 오르면 이미 취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다 온 차를 못 들어오게 막기만 하는 건 보여주기식 행정에 그치는 일입니다. 오히려 기관 밖을 더 무질서하게 만듭니다. 견인지역과 이면도로에 갈 곳 잃은 차들이 늘어서 통행만 불편해졌습니다.
서울 미세먼지
● "통보했다. 안 하더라. 반성시키겠다."

같은 날 경기도청 북부청사 등 다른 기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왜 곳곳에서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는 데 이 연구단지의 대표적 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의 해명이 도움이 될듯합니다.

국립환경과학원에 견인지역에 차량들이 주차된 이유에 대해 물었습니다. 국립환경과학원장은 2부제 시행을 직원들에게 고지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부 직원들이 짝수번호판 차량을 끌고 왔는데, 입구에서 철저히 통제하다 보니 밖에 댄 것 같다고 해명했습니다. 어느 직원인지 파악해 반성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간결한 해명이었습니다. 고지했으나 지키지 않았고, 잘못한 직원들이 반성하면 해결될 일이란 얘기입니다.

이 연구단지는 아라뱃길을 등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고속도로가 나 있습니다. 도심과 떨어져 있어 사람 발길이 드뭅니다. 대중교통만 이용하려면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가장 가까운 정류장에서 내려도 축구장 한 개와 야구장 한 개를 옆에 끼고 지나, 그만큼을 더 걸어야 입구가 나옵니다. 다시 축구장 한 개 반 면적의 연구단지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무실까지 걸어가야 합니다. 연구단지 직원들 대부분이 자가용을 이용해 출근하는 이유입니다.

짝수 번호판 차량을 끌고 연구단지 밖을 떠돌아다닌 직원들은 그래서 반성하기보다 답답해했습니다. 한 남직원은 "전날 밤 갑자기 통보하면 이 외진 곳까지 달리 출근할 방법이 있겠냐" 말했습니다. 다른 여직원도 2부제 시행을 알면서 차를 끌고 나왔습니다. 아침에 아이들 챙겨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출근하려면 대중교통으로는 방법이 없어 난처하다고 말했습니다. 앞뒤로 늘어선 다른 차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다시 과학원의 해명을 봅니다. 통보와 처분은 있지만 이해는 없습니다. 짝수 번호차량은 가져오지 말라는 통보 대신 대안을 마련해줬다면 어땠을까요. 반성시키기보다 왜 지키지 않았는지 물어 이유를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벌어진 일에 대한 이해 없이 대책이 나올 리 없습니다. 단지 직원들의 반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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