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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 대다수 엄두 못 내는 '차명계좌'…새마을금고선 23개나 '뚝딱'

[취재파일] 국민 대다수 엄두 못 내는 '차명계좌'…새마을금고선 23개나 '뚝딱'
SBS는 지난해부터 국내 대표적인 서민 금융 기관인 새마을금고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금고 내부에서 벌어지는 비위·갑질 행위가 1천9백만 고객들의 자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묵묵히 일하고 있는 대다수 임직원들의 상실감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 ▶ [단독] '차명계좌 23개' 새마을금고 이사장…징계는 고작 '경고' (01.12)> 역시 지속적 감시 보도의 일환입니다. 혹시 일부 이사장들과 그의 측근들, 새마을금고 중앙회나 행정안전부가 "언론에서 한 번 떠들고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단언컨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오판이라는 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 내부 고발자, "이사장이 차명계좌 개설…23개에 4억 5천만 원"

이번에는 경기 수원의 모 새마을금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곳의 이사장 B 씨가 차명계좌를 수십 개 만들었다는 겁니다. 설마 했는데 자료를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에 걸쳐 23개나 됐습니다. 액수를 합해보니 4억 5천만 원. 그리고 이 계좌들은 모두 B 씨의 직간접적 지시로 개설됐다고 내부 고발자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B 씨는 어떻게 만든 걸까요. 일반 국민들은 감히 만들 생각조차 못하는 차명계좌를 말이죠. 내부 고발자들과 그들에게서 입수한 자료를 토대로 설명하겠습니다. 명의자의 형태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첫째, B 씨 일가 소유의 사업장이 있습니다. 차명계좌 일부는 그곳 직원들의 명의였습니다. 둘째, 해당 새마을금고 임직원들도 포함돼 있습니다. 셋째, 임직원들의 부인까지 명의가 올라 있습니다. 이쯤 되면 거의 무차별적 개설이라고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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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씨는 차명계좌가 필요하면 본인이 직접 다른 사람의 주민증 복사본과 도장을 건넨다고 합니다. 아니면 지점장급을 통해 전하기도 했답니다. 차명계좌라는 걸 알면서도 이사장의 지시란 걸 뻔히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답니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라는 걸 알기에 용기 내 제보한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 "차명계좌 통해 비과세 이자 소득 노린 듯"

다음으로는 '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차명계좌 23개의 패턴은 이렇습니다. 한 계좌당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까지 분산돼 있더군요. 내부 고발자들은 "정기예금의 경우 1인당 최대 3천만 원까지 이자 소득에 대해 사실상 비과세 혜택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3천만 원에 대한 1년 만기 이자가 30만 원이라고 치겠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 이자의 약 15%가 세금으로 나갑니다. 그러니까 4만 5천 원을 떼이고 25만5천 원 정도가 1년 뒤 실질 이자 소득인 셈이죠. 그러나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면 약 1%의 세금만 내면 됩니다. 거의 29만 원을 이자 소득으로 챙기게 되는 겁니다. "이사장 자신만의 명의로 23개의 정기 예금 통장을 개설한다 한들 '1인 1계좌'로 제한돼 있는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23명의 차명을 쓴 것"이라고 내부 고발자들은 지적했습니다.

이사장 B 씨는 그러나 펄쩍 뛰며 "나는 차명계좌가 개설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했습니다. 또 "어찌됐든 차명계좌를 개설한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고객의 돈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해명했습니다.

과연 B 씨는 전혀 몰랐을까요? 취재진은 23개 차명계좌에서 나온 비과세 이자 소득의 종착지를 살펴봤습니다. 모두 B 씨 부인 명의 계좌로 이체돼 있더군요. 이걸 따져 묻자 B 씨는 "부인이 개설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도 믿을 수 있을까요. 설사 그의 부인이 정말 개설했다고 쳐도 그 대단한 '능력'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고객 돈을 유치하기 위함이라는 말 역시 선뜻 와 닿지 않습니다. 정말 그게 목적이었다면 예금 명의자와 이자 소득 수혜자는 같은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 고객 돈이라는 게 실제로는 B 씨(혹은 B 씨 부인)의 돈이었고, 이 금고는 안 줘도 될 '비과세된 이자'를 B 씨(혹은 B 씨 부인)에게 준 셈이니 그만큼 금고가 손해를 본 셈입니다.

● 새마을금고 중앙회는 이사장에게 고작 '경고'…행안부는?

내부 고발자들이 처음 기댄 곳은 금고 중앙회였습니다. 중앙회는 그러나 황당한 감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인 '경고'만 준 겁니다. 중앙회의 공식적인 답변을 정리해봤습니다.

-금융실명법 위반에 관한 임직원 처벌 세칙에 따라 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실정법상 처벌될 근거가 사라졌다. 우리도 처벌에 연동된 징계를 할 수 없다.

-본인은 개설하지 않았다는 B 씨의 주장과, 자신이 개설했다는 B 씨 부인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봐서 B 씨에겐 감독자로서의 책임만 문 것이다
.

같은 세칙을 적용하고 있는 다른 금융권의 사례를 볼까요? 지난 2010년의 일입니다. 당시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재일교포 명의로 4개의 차명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발각됐습니다. 사건 초기에 라 회장은 "내가 개설한 게 아니다"라고 강력히 부인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정직'이었습니다.

처벌을 각오하고 고해성사한 10여 명의 내부 고발자들은 "더는 중앙회만 바라볼 수 없다"며 행안부를 여러 차례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행안부는 이들의 절규를 직접 듣는 대신 '중앙회가 성실히 조사해 알려줄 것'이라고만 답변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개고기 갑질' 이사장의 사례와 어쩌면 이리 정확히 포개질까요. 이런 '데칼코마니 현상'이 반복되는 한 고객들이 새마을금고에 마음놓고 자산을 맡길 수 있을까요?

 금고 내부 고발자, "오죽하면 행안부 장관 SNS를 두드렸겠나"

인터뷰를 마칠 때 쯤 내부 고발자 중 한 명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보여줬습니다. 화면에는 김부겸 행안부 장관 SNS에 남긴 글이 있었습니다. 한 번만 직접 나와 제대로 조사 좀 해달라는 청원이었습니다. 이익집단의 민원도, 사인(私人) 간의 흠집 내기도 아니었습니다. 그건 직장을 좀 직장답게 해달라는 평범한 금융인들의 절규였습니다.
김부경 행정안전부 장관 SNS 연락 휴대전화 캡쳐 내부 고발자
'장관님께서 이 메시지를 보실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저도 잘 알지만 그만큼 절실하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용기 내어 연락드립니다.'

보도 이후 여기저기서 꾹꾹 참아왔던 하소연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새마을금고 중앙회엔 더 기대할 게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행안부마저 외면하니 남은 건 언론뿐이라는 그들의 울부짖음이 가슴에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덧붙여!
'23개 차명계좌 개설 논란'의 이 새마을금고엔 이사장 측근인 한 임원의 '갑질' 문제도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후속편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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