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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족의 정치학

[취재파일] 유족의 정치학
인천 낚싯배 전복 사고 15명,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4명, 제천 피트니스센터 화재 29명. 한 달 동안 많은 사고와 죽음이 있었습니다. 타워크레인에서 떨어져 숨진 노동자, 철길에서 일하다 숨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슈화되지 못하고 개인적 죽음으로 남겨진 다른 많은 이들도 있을 겁니다. 지난 12월 한 달간 사고 현장에서 유족들을 만나며 느낀 취재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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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의 탄생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장례식
하나의 죽음에는 서너 배되는 유족이 생겼다. 품에 한번 안아주지 못하고 숨진 아기, 남편 가져다 줄 백설기를 가방에 남기고 화마에 숨진 아내, 밀린 화물차 할부금을 아픈 아내에게 남기고 바다에서 숨진 남편. 사망자와 유족마다 각자의 이야기를 가졌다.

재난 사고가 터지는 순간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쏠린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린 유족은 슬픔과 고통에 잠겨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처음 며칠 동안 대부분의 유족은 언론과 접촉을 피하고, 조용히 개인적인 해결을 생각한다.

얼마가 지나면 유족은 사고의 원인이 자세하게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사고의 책임 소재가 명확하게 가려질지 의문스러운 정황도 나타난다. 가만히 있어서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기미가 보일 때 유족 단체가 만들어졌다. 예컨대 신생아 사망 책임이 있는 병원이 가족에게는 아무런 사과가 없고, 사고의 책임을 면하려는 태도를 보이자 각자의 죽음에 슬퍼하던 유족은 서로 연락을 해서 뭉쳤다. (관련기사 :  ▶ [취재파일] 4명의 신생아, 4명의 아버지)

사고 직후와는 달리 유족은 정부에 항의를 하며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해 강하게 요청하기 시작한다. 언론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규명과 처벌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다른 이슈가 발생하면 이전의 사고는 잊혀 간다. 사회적 관심도는 점차 낮아지고 남은 유족이 기나긴 싸움을 해나간다. 

세월호 유가족이 대표적이다. 사고 몇 년이 지난 뒤에도 거리와 광장에서 노란 리본과 세월호 유족은 눈에 띄었다. 유족들이 오랫동안 뭉쳐서 계속 무언가를 주장해야 한다는 건 그만큼 정부와 제도가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걸 의미한다.

향 냄새 자욱한 분향소에서 계속 죽음을 떠올리는 건 누구에게나 고통스럽다. 사람들은 아픔을 빨리 마무리하고 한 구석으로 묻어두고 싶어 한다. 어떤 이들이 유족의 정체성을 자신의 첫 번째로 지닌 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건 여전히 사회적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월호 미수습자
세월호

● 유족과 정치

모든 죽음에는 그마다 유족이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 불려지는 ‘유족’은 특정한 재난 사고에서 발생한 죽음에 한정된다. 병원에서 4명의 신생아가 같은 날 숨진 사고, 건물에 불이 나 29명이 탈출하지 못하고 숨진 사고. 이런 사고들은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사고가 일어나면 구조 작업이 이뤄진다. 구조가 마무리되면 경찰이 원인과 책임 조사에 나선다. 국회에서 관계부처를 불러 현안보고를 받는다. 정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필요한 경우 합동조사단이나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린다. 이 과정에서 해경과 소방, 넓게는 정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사고에 대응했는지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논란이 생긴다.  

사고 직후 애도의 분위기도 잠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시작하면 여론이 양분된다. 정치권에서 공방이 일어나고, 그 여파는 인터넷 공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조 책임을 묻는 기사에는 ‘해경과 소방당국에 지나친 책임을 묻는다’는 댓글과 ‘사망 책임이 정부에 있고, 세월호와 다름 없는 참사’라는 댓글이 부딪힌다.

사고의 해결도 정치와 맞물린다. 관계부처의 어디까지 처벌할지, 어떠한 범위와 강도로 조사를 진행할지는 여론의 반향과 정부·정치권의 의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해결을 위해 점검을 강화하고, 소방 장비나 해경 인력을 늘리는 문제 또한 예산이 드는 일이라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정치공방이 과열되면 유족에게 비난이 돌아오기도 한다. 사고가 난 뒤 2개월이 지난 뒤부터 세월호 유가족에게 혐오의 댓글이 다수 달렸다. 일베 사이트에서는 유족을 ‘보상을 더 받기 위해 떼쓰는 무임승차자’로 이해했다. (참고 기사 : <시사IN>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2014년 9월29일, 천관율 기자) 사고 직후 위로받아야 할 피해자였던 유족은 특권층으로 공격받았다. 최근에도 제천 화재 유족이라 밝힌 시민이 악플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 유족은 원치 않은 가족의 죽음을 마주한 뒤 원치 않은 사회적 관심을 받았고, 시간이 지나자 관심에서 돌아선 비난에 다시 울었다. 

● 열사에서 유족으로

2010년대의 상징적 죽음과 1980년대의 상징적 죽음에는 차이가 있다. 영화 <1987>은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서 시작해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끝난다. 1987년의 죽음은 엄혹한 현실에 맞서기 위해 능동적으로 나섰다 맞이한 죽음이었다. 억압적인 정권에 항의하다 타살당하거나 저항적 자살로 죽음을 맞은 이들이 열사로 불렸다. 영화에서 보듯 열사의 죽음은 저항운동의 동력이 됐고, 결국 민주화를 불러왔다. 

2010년대에 주목받는 죽음은 평온한 일상을 사고로 일순간에 잃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다. 1980년대의 열사가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죽음을 나타낸다면, 2010년대의 유족은 현실을 유지하지 못하게 깨뜨려버리는 죽음을 나타낸다. 30년 동안 바뀐 한국의 모습처럼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죽음의 방향도 달랐다. 폭력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죽음을 통한 저항이 최후의 방법이었다.

지금도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부문 운동에서 열사는 존재한다. 하지만 민주화로 제도적 해결의 길이 어느 정도 열려있다고 인식되는 2010년대에는 저항적 죽음이 사회적으로 크게 공감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의 저자 임미리 작가는 90년대 이후 민주 대 반민주의 균열이 붕괴되면서 열사도 원래 기능을 잃고 해체됐다고 설명한다. 독재정권이라는 압도적인 지배폭력이 사라진 상황에서 죽음을 통해 바꿔야 할 숭고한 무엇이 있다기보다, 사고를 당하지 않고 개인과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는 시대로 바뀌었다.  

30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죽음이 지니는 의미는 크다. 열사의 죽음이 변화의 도화선이 됐듯 재난 사고가 가져온 죽음과 남겨진 유족의 존재는 그 자체로 사회 곳곳의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한 상징적 의미뿐 아니라 유족들이 실제로 앞장서서 저항운동에 나서기도 한다. 2016년 겨울의 촛불 광장에서 세월호 유족은 구심점 역할을 했다. 세월호 골든타임에서 정부가 제 역할을 못했다는 점은 법적으로 대통령 탄핵의 근거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월호 유족의 존재는 광장에 섰던 시민들에게 도덕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정부에 대한 분노와 참여를 이끌어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유족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유족의 존재는 변화의 동력이 되었다. 
이한열 열사
이한열 열사 장례식 리사이징
● 적대에서 연대로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라 새해 목표를 발표했다. 1980년대처럼 함께 무너뜨릴 ‘거악’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들이 남았다. 임미리 작가는 이분법적 대립과 적대가 사라진 지금, 다른 사람이 느끼는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와 제천 화재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운이 나빠서 당하는 교통사고와 같은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형사고가 일어나기까지는 징후가 있다. 1명의 중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29명의 경상자와 300명의 잠재적 부상자가 존재한다는 게 ‘하인리히 법칙’이다. 
이대목동병원
실제로 12월의 사고 전에도 무수히 많은 신호가 있었다. 다수의 신생아가 로타바이러스에 걸렸지만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이대목동병원의 경우 평소에도 위생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정황이 쏟아졌다. 당직 근무체계 또한 무너져 있었다. 제천 화재에 출동한 충북소방본부와 제천소방서의 경우 심한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매일 해야 하는 무전 통신망 점검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작은 징후를 제대로 알아채고 예방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재난 사고가 가져온 죽음은 우연적이지 않다.

사회역학자 김승섭 고려대 교수는 개인의 건강이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 마을 사례를 든다. 이 마을은 마을 사람 중 누가 죽으면 이전에 있었던 갈등을 뒤로 하고 죽음을 함께 애도한다. 끈끈한 공동체로 엮여 있었던 로세토 마을은 실제로 심장병 사망률이 확연히 낮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에서야 개인도 건강할 수 있다.

사고와 죽음 속에서 나와 가족도 언제든 겪을 수 있다고 징후를 느끼는 것은 중요하다. 만난 유족 중 누구도 자신의 가족이 목욕탕에 갇히거나 대학병원에서 감염돼 숨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다. 다른 이의 죽음과 슬픔에 공감하고, 재난 사고가 남긴 죽음을 응시해 그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도 유족이 되길 원치 않지만, 누구나 유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장례식장에 제일 마지막까지 남았던
강민우, 백운, 신정은, 정다은 수습기자의 취재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참고자료 :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2017, 임미리 지음, 오월의 봄)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7,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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