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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단결을 위한 단일팀인가? 균열을 위한 단일팀인가? ①

무리한 남북 단일팀의 허와 실

[취재파일] 단결을 위한 단일팀인가? 균열을 위한 단일팀인가? ①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어제(12일) 평창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장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단일팀 구성 의사를 밝히던 시간,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이코노미석에서 긴 훈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쪽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연말연시의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던 지난달 26일부터 머나먼 이국땅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귀국한 선수들은 수고했다는 말 대신 남북 단일팀 추진 소식을 먼저 듣고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남북 화해라는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이번 단일팀 추진은 성급하고 무리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 '23+α' 허울뿐인 엔트리 증가

이기흥 회장은 우리 선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IOC에 선수 참가자 명단을 확장해 달라고 건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엔트리를 확대한다고 해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선수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올림픽에 나설 국가별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최대 23명의 선수로 팀을 구성하고, 경기에는 이 중 22명만이 출전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의 바람대로 IOC가 '팀 코리아'의 전체 엔트리를 30명 정도로 늘려준다고 해도 경기 출전 엔트리 22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남북 단일팀 추진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럴 경우 우리 선수들은 피해가 최소화되기보다는 오히려 상처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남북 단일팀을 만들어 놓고 북한 선수들을 출전 명단에서 뺄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 선수들 몇 명은 결국 자신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북한 선수가 경기에 뛰는 것을 옆에서 지켜만 보면서 그토록 기다려 온 올림픽 무대는 한 번도 밟지 못하게 됩니다. (올림픽 경기장 팀 벤치는 선수 22명이 앉을 수 있도록 설계돼 옆에서 지켜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경기 출전 엔트리 22명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이는 축구에서 우리는 15명이 뛰겠다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아이스하키는 체력 소모가 극심해 50초~1분 간격으로 선수들이 쉴 새 없이 교체하면서 경기를 치릅니다. 경기 출전 엔트리가 늘어나면 선수들이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되고 경기력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만약 대한체육회가 출전 엔트리를 늘려달라고 요청하고, IOC가 (정치적인 이유로) 이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상대팀에서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상대팀도 허락해서 우리의 경기 출전 엔트리가 늘어난다면... 과연 우리 팀의 경기를 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루는 스포츠가 아닌 남북 단일팀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 쇼'가 되고 말 뿐입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대결 (사진=연합뉴스)
● 무엇을 위한 투자였나? 불가피한 경기력 저하

우리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사상 첫 승을 거두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수많은 투자와 노력을 했고 이제 그 결실을 맺어가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아시아에서도 10대 0, 20대 0으로 크게 지던 한국 여자 대표팀은 이제 세계 정상권 팀들과도 대등하게 맞설 수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남북 단일팀이 구성될 경우 대표팀의 전력 약화는 불가피합니다. 아이스하키는 조직력과 팀워크가 생명인 팀 스포츠입니다. 세계적인 강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개인기와 체력을 메우기 위해 우리 선수들은 몇 년 동안 손발을 맞춰왔습니다.

대회를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선수들이 합류할 경우 그동안 힘들게 끌어올린 조직력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 선수들은 우리 선수들보다 개인 기량이 떨어집니다. (지난해 강릉 세계선수권에서 우리는 북한을 3대 0으로 가볍게 꺾고 전승으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이 힘을 합쳐 시너지 효과를 냈던 탁구나 청소년 축구 단일팀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 사람이 먼저다!

우리 선수들은 오직 평창만 바라보며 모든 걸 희생했습니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의사가 되는 꿈을 미뤘습니다. 대학팀도 실업팀도 없는 상황 속에 생계를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회 출전이나 전지훈련 때문에 선수들이 제대로 된 직장을 얻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피겨나 쇼트트랙 선수들과 함께 쓰는 태릉선수촌 링크는 밤 9시 이후에나 밟을 수 있었기에, 선수들은 매일매일 자정이 돼서야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과연 이들의 꿈과 땀방울을 외면한 남북 단일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 오늘 밤 주인공은 선수야! 선수!

대한체육회의 수장에게, 정부 관계자나 IOC 관계자에게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추진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다른 때에도 주인공이 될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북한 선수단의 올림픽 참가와 남북 공동 입장만으로도 전 세계가 주목하게 될 것이고, 올림픽을 떠나 평소 남북한의 체육 교류를 활성화한다면 언제든 남북 화해와 평화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국민들도 선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남북 단일팀은 원치 않는 분위기입니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도 단일팀을 반대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인터넷상에서는 단일팀 반대 청원 운동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굳이 박수받지 못할 주인공이 될 이유는 없습니다.

제발 이번 평창에서는 올림픽 무대만 바라보며 굵은 땀방울을 흘린 선수들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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