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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출산휴가 다녀오니 "사직서 써"…엄마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송욱 기자 songxu@sbs.co.kr

작성 2018.01.14 10:00 조회 재생수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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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출산휴가 다녀오니 "사직서 써"…엄마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 2016년 4월 29일 한 철강회사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당해고 됐다가 복직한 직원들을 출근 첫날 화장실 앞에서 근무시킨 겁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출산 전후 여직원들도 부당해고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회사는 출산을 앞두거나, 출산 후 복직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여직원들을 저성과자로 분류시킨 후 해고한 겁니다.

직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심 법원은 당시 해고가 무효라고 최근 판결했습니다.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회사 측이 1심 판결에 항소하면서 엄마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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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고 지하철역으로 나서는 엄마 모습 그래픽 //■ 조리원에서도 회사 일 도왔던 엄마는 왜 '육아휴직'을 쓰지 못했나...

2015년 4월 20일, 철강회사 휴스틸에 다녔던 이 모 씨는 출산 후 3개월 만에 회사에 복직했습니다. 몸을 다 추스르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육아휴직까지 쓸 수는 없어 90일간의 출산 휴가 이후 바로 회사에 돌아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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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 씨 / '휴스틸' 전 직원]
"회사에서 출산휴가는 지켜졌지만, 육아휴직은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문화가 잡혀 있었어요. 육아휴직 낸다고 하면 '사직서 쓰고 나가', '그만두고 싶으냐', '자리 빼고 싶으냐'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쓸 생각도 없었죠." //사실 휴가 중에도 제대로 쉬는 게 아니었다고 이 씨는 털어놨습니다. 출산휴가 중에 회사에서 계속 연락이 온데다가 조리원에서 원격으로 일을 도와야 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회사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당시 갓 태어난 첫째 딸을 생각하며 휴가 중에도 묵묵히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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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 씨 / '휴스틸' 전 직원]
"업무를 맡겨 놓고 온 상황이니까 집에서 쉬어도 회사에서 계속 연락이 왔죠. 조리원에 있을 때도 SNS로 일을 도와줬는데 그때도 '지금 분위기가 안 좋다', '오면 각오해라'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 '엄마'라는 이유로 받게 된 사직서 한 장, 항의할 수 없었던 이유는?

복직 후 육아를 병행하며 집에서는 '엄마', 회사에서는 '대리'로 살아온 이 씨에게 회사가 건넨 것은 사직서였습니다. 2015년 10월 휴스틸 측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전 직원에게 사직서를 받았고 이 중 15명을 해고했습니다. 해고자 15명 중 8명은 여성이었고 출산 직전이거나 출산 후 복직한 지 6개월 이내의 여직원들이 포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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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 씨 / '휴스틸' 전 직원]
"9월 30일에 팀장님이 불러서 하는 말이 '회사의 방침이 이렇게 됐으니 OOO 대리가 수긍하길 바란다', 전후 사정없이 제가 해고 대상자로 선정된 이유는 회사의 방침이라고 말했어요." //이 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억울함에도 항의하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소송을 해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절차를 제대로 모르는 데다가 기업을 상대로 이길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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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 씨 / '휴스틸' 전 직원]
"솔직히 자신이 없더라고요. 소송하면 돈도 많이 들고 기업을 상대로 이길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거의 없잖아요." //■ 법적 대응 했지만, 복직 후 화장실 앞에 앉게 된 동료들...

망설이던 퇴직 직원들을 움직인 건 먼저 법적 대응에 나선 동료들과 이들을 대하는 휴스틸 측의 태도였습니다. 일부 직원들이 7개월의 싸움 끝에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복직 판결을 받아냈지만, 회사 측은 복직한 직원들을 화장실 앞 책상에 앉게 했습니다.

당시 회사 관계자는 SBS 취재진이 화장실 앞에 책상을 둔 이유를 묻자 "회사가 화장실 앞에서 근무하라고 한 것은 아니"라며 "직원들 본인이 선택한 것이고 아마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화장실 앞에 있어서 거기에 앉은 것 아니겠냐"는 황당한 답변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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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9일 당시 녹음]
"위치는 14층 화장실 옆이고요. 분명히 지시합니다. 위치는 14층 화장실 옆." //*그래픽(반반 배치)
[복직자 A 씨] 2016년 5월 22일
"복직하러 왔지 이렇게 화장실 앞에서 앉아 있으려고 온 건 아니다라고 계속 항의를 했습니다."
[복직자 B 씨] 2016년 5월 22일
"회사가 너무 잔인하다, 내가 이런 회사를 다녔던 것이 맞나.. 평생 잊지 못하는 그런 날일 것 같아요." //복직한 직원들이 노동청에 신고해 '화장실 앞 근무'는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하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동료들의 모습에 이 씨는 "회사가 정말 나빴구나, 못됐구나 생각이 들었고 회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원했다"며 법적 대응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 "이런 일 되풀이 되지 않길 바란다" 엄마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현실의 법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법이 규정한 '권리 주장 기간'은 짧았고 결국 이 씨는 2016년 8월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녀는 갓 태어난 둘째를 안고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법원과 노동청을 몇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지금까지 휴스틸 측은 부당해고가 아닌 경영 악화에 따른 희망퇴직으로 당사자들도 동의한 퇴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하지만, 1심에서 재판부는 "사용자가 일부 사직서를 선별 수리해 근로자를 면직시킨 것은 일방적인 근로관계 종료"라며 "사실상 해고가 맞다"고 봤습니다. 또 해고자 절반 이상이 여성이고 특히 출산 전후 여직원들이 다수 포함된 점에 대해서도 "회사가 이들을 저성과자로 분류해 해고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당시 해고가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휴스틸은 즉각 항소했고 항소 취지를 묻는 SBS 취재진의 질문에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한 상태입니다. 이 씨는 1심 판결 이후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이어질 긴 싸움에 부담도 된다"고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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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 씨 / '휴스틸' 전 직원]
"솔직히 많이 걱정되기도 해요. 복직이 결정되고 출근하게 되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견딜 수 있을까… 그래도 복직은 할 거예요. 그래야 직원들과 제가 힘들게 소송해온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다른 직원들이나 여직원들한테도 전례를 남겨주고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는 그런 좀 좋은 모습을 남겨주고 싶어요."수많은 직장의 어머니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취재: 박수진 / 기획·구성: 송욱, 장아람 / 디자인: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