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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 법을 없애 주세요"…서민 울리는 황당한 고지서

이기성 기자 keatslee@sbs.co.kr

작성 2018.01.12 11:47 수정 2018.03.28 16:2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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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2017년) 8월 공장에서 일 끝내고 집에 온 강 모(49세, 여) 씨는 깜짝 놀랐다. 구청에서 날아온 한 통의 고지서 때문이었다. 이미 팔고 이사 나와 더 이상 살고 있지도 않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에 개발부담금이 부과됐다는 건데 금액이 무려 1천 5백만 원이었다. 더욱 기막힌 일은 돈을 제때 내지 않아 추가된 가산금이 원금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강 씨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지역주택조합에 가입한 건 지난 2000년 초. 지방에서 올라와 남편과 함께 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면서 어렵게 모은 돈을 기반으로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소원이었다. 당시 살던 사당동 전세 집 부근 상도동에서 지역주택조합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에 부풀어 가입서를 썼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일대 전경(지역주택조합사업 : 20인 이상 무주택 가구주가 조합 구성 후 땅을 매입해 주택을 짓는 제도)

그러나 2004년 입주 예상이라던 당초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시행사가 계속 바뀌면서 분양가도 천정부지로 올랐다. 상도현대엠코지역주택조합으로 사업인가 및 승인이 떨어진 건 2007년 7월, 2013년 8월에 준공돼 가까스로 입주는 했지만 33평 분양가는 처음 금액 2억 8천만 원의 두 배가 넘는 5억 9천만 원이나 됐다.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되자 중도금도 못 내고 입주할 때 겨우 담보 대출로 갚기는 했지만 15%에 가까운 할증 이자율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자 상환이 힘겨워 지면서 아파트를 전세 주고 그 전세금으로 부채를 갚았으나 그래도 빚이 남아 어렵게 마련한 집을 지난해 7월 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사당동 다세대 주택에서 보증금 2억에 월세 48만 원의 반 전세를 살게 된 강 씨는 1천 5백만 원의 개발부담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조합장을 비롯한 조합집행부와 행정기관의 책임이 크다. 조합은 아파트 부지에 들어서 있었던 무허가 가옥 130채의 보상비와 주변도로 조성비, 학교용지매입비 등 460억 원의 개발비용을 행정기관인 동작구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개발비용을 인정받으면 개발부담금을 대폭 줄일 수 있었는데 조합이 취득세 4억 원을 아끼려고 취득 신고를 제때에 하지 않은 데다 민원 선심성 이주비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게 구청의 설명이다.

게다가 조합은 2013년 입주를 앞두고 미분양 아파트 70여 채를 처리하기 위한 조건으로 청산대행업체와 조합을 해산한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동작구청은 법적 책임도 없는 조합에 개발부담금이 나왔다며 납부 독촉 통지를 수십 차례 보낸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고 있다가 3년이 지나서야 조합원들에게 돈을 내라는 고지서를 보냈다. 개발부담금은 조합에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나 조합이 납부할 능력이 없으면 조합원이 내야 한다는 관련 법에 따랐다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개발부담금은 원금 55억 5천만 원에 가산금 23억 원까지 붙어 520여 명의 조합원 1인당 평균 1천 5백만 원으로 불어났다. 조합원들은 조합 관리 감독 권한이 있는 동작구청이 책임을 저버린 것은 물론 조합 파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사전 조치도 없다가 3년이 지나서야 조합원들에게 책임을 지라는 것은 가산금을 늘이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동작구청은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면서도 구청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구청 담당 공무원은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 문제가 있을 경우 준공 시점에 조합뿐 아니라 조합원들에게도 고지할 방침이라고 사후약방문 같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창우 동작구청장을 면담해 억울하다는 사정도 해보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역주택조합 문제점을 해결해 달라는 청원도 넣어봤지만 20만 명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끝났다.
지역주택조합 문제점 해결을 호소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답답한 것은 이런 문제가 동작구 상도현대엠코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인터넷에 지역주택조합이라고 검색만 해봐도 수만 가지 문제가 뜬다. 여북했으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법이냐며 전국의 지역주택조합을 조사해 관련법이 합당하지 않다면 법을 없애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을까.

자격도 되지 않는 지역주택조합의 남발과 허위광고, 조합장의 직무 유기와 사기, 행정관청의 관리 감독 소홀 같은 문제점이 개선되거나 고쳐지지 않는다면 강 씨처럼 어렵게 벌어서 집 한 채 마련하고픈 수많은 서민들의 피해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