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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 취업, 일본 직장에서 알아둘 것들 ③

[월드리포트] 일본 취업, 일본 직장에서 알아둘 것들 ③
일본 취업과 관련해 마지막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이번엔 일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알아둘 것들입니다. 통계 수치로는 알 수 없는, 경험으로 전해지는 충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한국인 일본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했습니다.

1) 책임 범위와 멀티 플레이어

일본 사회를 설명하는 주요 단어는 '매뉴얼'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죠. 그런데, 이 매뉴얼이라는 말 속에 진짜 이해해야 할 단어는 바로 '책임 범위' 또는 '책임'입니다. 일본은 매뉴얼로 개개인의 업무내용을 정함과 동시에 각자의 책임 범위를 규정하고 합니다.

한 사례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때입니다. 한국에선 청소년들이 나이를 속이고 술이나 담배를 샀다가 오히려 편의점 주인이 처벌을 받는 사례가 보도되곤 합니다. 일본에선 손님이 술 담배를 들고 편의점 계산대에 가면 직원은 손님에게 아래의 화면을 터치하라고 합니다.
일본 편의점 술담배 구입자 성인 여부 확인화면
위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책임이 편의점에서 손님에게로 넘어가는 겁니다. 손님이 속인 것이지 편의점은 잘못이 없는 셈이 되는 겁니다. 편의점 직원이 손님을 유심히 보면서 힘들게 나이를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편의점 직원은 그냥 기계적으로 '화면 터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례. 분양 아파트를 사면 입주 전 시행사에서 아파트 구매자를 부릅니다. 그리고 아파트 안의 시공 상태를 체크하도록 합니다. 수도꼭지는 잘 되는지, 문고리가 잘 움직이는지 등을 함께 만져보면서 체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서명을 하게 합니다. 서명을 하는 순간 "자, 집주인 당신이 확인한 거야. 나중에 딴 소리하면 안 돼!"가 되는 겁니다. 이처럼 일본 회사나 사회에선 "문제가 생길 때 누가 책임을 지도록 정해져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입사 1, 2년차 사원들의 책임 범위는 굉장히 작습니다. 일본 휴대전화 대리점 창구 직원이 대표적입니다. 수많은 손님의 민원을 받다 보면 매뉴얼에 없는 사례가 나오게 마련이죠. 한국이라면 창구 직원이 "이런 경우 좀 애매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됩니다"라면서 즉석에서 해결해주죠? 일본인 창구 직원은 곧바로 뒷자리에 앉은 상사를 쳐다봅니다. 사원급이 뭔가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일본 회사에 입사한 한국 젊은이들, 특유의 적극성으로 이것 저것을 다 해보려고 하죠. 그럼 오히려 "너 뭐하는 거야? 일단 시키는 일이나 충분히 숙지해!"라는 이야기를 듣기 일쑤입니다. 일본 회사에선 입사 후 3년간은 기본 업무를 실수없이 처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입사 직후부터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일단 회사의 룰과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쿠우키오 요무(空?を?む)'=공기를 읽다=주변 상황을 눈치껏 파악해야 합니다.
8시 뉴스 일본 인재채용 '능력보다 인성'(2017.6)
정확한 책임 범위를 늘상 생각하는 일본인들. 이 때문에 일본인 가운데선 멀티 플레이어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자기 업무를 꼼꼼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 일 저 일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큰 회사의 사례일수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열심히 해야 하는 작은 회사에선 좀 다를 수도 있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인 사원으로서 일본인 동료보다 더 적극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라' 충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일본 조직 문화는 그렇다는 겁니다.

2) 지켜야 할 룰과 매너가 많은 나라

일본에서 신입사원들에게 많이 하는 충고는 대충 이런 겁니다.
▷"일에 집중하라"
▷"주변 선배 상사들에게 인사를 잘하라"
▷"지각을 절대 하지 마라"
▷"상사와의 연락을 메신저로만 끝내지 마라"
▷"회사 비품을 자기 것처럼 마구 쓰지 말 것"
"뭐, 기본적인 것들이잖아?" 하시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아주 중요시합니다. 한국인 사원에 대한 불만도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빈번한 지각, 대충하는 인사, 업무중 지나친 휴대전화 사용 등...

이밖에도 기본적으로 일본은 한국에 비해 지켜야 할 사회적 룰(rule)과 매너(manner)가 굉장히 많습니다.
일본 책 '입사 1년차 비즈니스 매너 교과서'
그래서 일본 서점에 가면 이런 책들이 많습니다. 책 중간을 보면 '입사 1년차가 지켜야 할 비즈니스 매너'에 1) 옷차림 2) 명함교환 3) 전화대응 4) 비즈니스문서 작성법 5) 이메일의 기본 6) 관혼상제 매너 등 종류도 많죠. 우리나라도 나름 비즈니스 매너와 룰이 적지 않죠. 그런데, 일본은 그 종류가 훨씬 많고, 특히 안 지켰을 경우 비난이 굉장히 셉니다.

사소한 예를 들어보면 저녁 술자리 후엔 함께 한 상대에게 반드시 "어제 즐거웠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내야 합니다. 이메일의 형식도 딱 정해져 있습니다. 소속 회사와 이름을 언급한 뒤 "늘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말로 시작해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로 끝냅니다. 거의 규격화돼 있습니다.

명절이나 연말연시에도 꼭 인사카드와 선물을 보내야 합니다. 일본 대기업에서 일하는 제 지인 한국 분은 매년 회사동료 수십 명에게 연하장을 '우편'으로 보냅니다. 우리라면 메신저나 문자로 끝낼 일을 한 명 한 명 종이카드로, 사무실에서 간단히 전해주는 것도 아니고 '우편'으로 보냅니다. (같은 건물이나 사무실 동료에게 자택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도 흔합니다.)

또 일본 회사에선 상사와 업무 메신저를 할 때 이모티콘을 거의 보내지 않습니다. 아주 가깝지 않다면 실례입니다.

경어(높임 겸양어)도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공부하면 경어는 하루 이틀 정도만 배우는 문법입니다. 그런데, 실제 일본 회사에선 전화 접대, 고객 대응, 사내 커뮤니케이션 등에서 경어를 굉장히 많이 씁니다. 혼자 기술개발을 하는 업무가 아니라면 하루 일본어의 최소 30% 이상은 경어를 써야 합니다. 경어는 적재적소에서 반드시 써야 하는 룰이고 매너입니다.

일본 젊은이들도 이런 룰과 매너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너무 많고 엄하기 때문입니다. 벗어나면 금세 이상한 사람 취급합니다. 물론 외국인 직원들은 배려해줍니다. 하지만, 일본인 동료들과 경쟁하며 같이 성장하려면 룰과 매너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3) 일본어

최근 일본으로 막 건너온 20, 30대 취업자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놀란 것은 이들의 일본어 실력이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겁니다.

위에서 경어 이야기도 드렸지만, 일본어는 다른 의미에서도 중요합니다. 장차 소속 회사에서 리더나 팀장이 될 수 있느냐를 결정합니다. "IT업계라 전문용어가 많아 큰 문제가 없다"고 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10년 안에 간부 사원이 되려면 역시 능숙한 일본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사니 일본어는 자연스럽게 늘지 않겠나?" 하겠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늘지 않습니다.

일본어는 또 외국생활의 외로움을 줄여 줍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보다 깊은 인간관계를 잘 맺지 않습니다. 그래도 10년 이상의 일본 생활을 생각한다면 주변에 가까운 일본인 친구 한두 명은 필요합니다. 진짜 일본 사회의 제도나 룰을 정확히 물어볼 대상도 필요합니다. 그런 관계를 만들어주는 중요 수단이 일본어입니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 생활을 하는 것은 시티투어 버스로 도쿄를 한 바퀴 돌고, 도쿄를 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편하고 외롭지 않죠. 그런데, 일본 생활이 길어질수록 한국인 친구들, 생각만큼 자주 보지 않게 됩니다. 다들 바쁘고, 일본 사회에 익숙해질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편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일본 비자
4) 이직과 경력관리, 비자

일본 취업 이야기는 사실 최근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2000년대 중반 일본에 건너온 한국인들은 지금쯤이면 한두 번의 승진을 거쳐 간부 사원이 되었어야 합니다. 위로 갈수록 경쟁이 심하겠죠. 외국인 사원으로서 더욱 노력을 해야 했을 겁니다. 자, 현재 이들 가운데 첫 입사 직장에서 간부가 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실 한국에서도 한 회사에서 정년까지 마치기가 어렵습니다. 일본에선 더욱 쉽지 않겠죠? 그래서 일본 취업 한국인들은 꾸준히 자기 경력을 관리하면서 언제 있을지 모를 이직을 고려해야 합니다. 제 주변엔 이직에 성공해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는 분들이 적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직 시 가장 먼저 고려할 것이 바로 비자입니다.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고용업체의 보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일본에 취업하는 우리 젊은이들 대부분은 1년 짜리 단기 비자를 받습니다. 1년 비자는 금융거래, 스마트폰 계약 등 다양한 상황에서 제약이 발생합니다. 언제 떠날지 모를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죠. 이후 3년, 5년짜리 비자를 이어받으면 문제가 없지만, 계속 1년 짜리 비자만 받는다면 곤란합니다.

일본 취업의 기본은 바로 안정적인 취업비자입니다. 한국인 취업자들이 만의 하나 문제가 생겼더라도 일본 회사 앞에서 약자가 되는 이유입니다. 일본 취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중장기적인 비자 문제를 고민해야 합니다. 인터넷 검색에만 의존하지 마시고 일본 내 행정서사 등과 꼭 상담해보시길 권합니다.

5) 수많은 외국계 한국계 기업들

일본 취업이라고 하면 흔히 일본 기업에 입사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꼭 그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회사가 한국인 사원에 대해 눈에 띄는 차별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역시 외국인 사원에겐 장벽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기업들이 외국인 사원을 고용했을 때도 비슷할 겁니다.

승진 욕심을 줄이고 정년만 보장받겠다고 할 수도 있겠죠. 이른바 '만년 과장', '이류 사원'들로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일본 회사는 조직은 이런 사람들에게 가혹합니다. 해고가 어려워도 갑작스러운 지방 발령은 흔합니다. 일본 회사에서 이런 취급을 받으며 정년만 바라볼 한국인 사원은 많지 않습니다.

얼마 전 만난 일본 기업의 한 인사담당자(귀화 재일교포)는 "한국인에게는 일본 기업보다 일본 내 외국계 기업, 또는 한국인이 창업해서 키운 한국계 기업들이 더 맞지 않을까요?"라고 하더군요. 능력을 중시하는 외국계 기업에서 에너지가 많은 한국인들이 더 대접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승진도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다만, 이런 외국계 기업은 일본어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도 필요합니다.

또 다른 취업 경로는 한국계 기업입니다. 한국 대기업들의 도쿄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 지사/지점들은 한국인 직원을 한국에서 파견하고, 현지에선 일본인을 찾습니다. 제가 말하는 곳은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창업해 30~50명까지 회사 규모를 키운 곳들입니다. 한국에서 바라보면 일본의 작은 중소기업이지만 탄탄한 거래처를 확보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한국계 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회사들의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길도 있다는 정도는 알아두십시요.

<일본 취업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도쿄 특파원으로서 일본 취업 문제를 바라보며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세 편으로 나눠 적어보았습니다. 묻지마 일본 취업. 더 이상 과열되기 전에 냉정히 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으로 떠난 우리 젊은이들이 정말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또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일본에서 큰 불만 없이 사는 젊은이도 적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인생의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용기도 훌륭합니다. 안정적이고 아기자기한 일본 사회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그래도 역시 일본 취업은 개인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누군가 부추길 일이 아닙니다.

한 나라의 사회 문화를 세 편의 글로 다 정리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본 일본은 다르다"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 글이 일본 취업을 바라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은 다른 시각과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묻지마가 아닌 정말 준비된 일본 취업에 나서길 간절히 바랍니다.

▶ [월드리포트] 일본취업, 어떤 회사가 한국인을 많이 찾나? ①
▶ [월드리포트] 일본취업, 월급 얼마나 받아 어떻게 사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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