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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톨박이 소년의 마법 같은 '고독' 해소기

[취재파일] 외톨박이 소년의 마법 같은 '고독' 해소기
표지는 꼭 만화책 같다. 한글로 쓴 영어 제목도 선뜻 이해가 안 됐다. 흔하디흔한 청년 창업 성공기다 싶어 책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표지 한 가운데 있는 빨간색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고독이여 안녕!' 마음을 고쳐먹고 책을 다시 든 건 순전히 '고독'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몇 쪽을 훑어보듯 넘기는데 프롤로그에 눈길이 가 멈췄다.

'누군가와 대화 하고 싶지만 혐오를 받을까, 상처를 입을까, 열등감을 느끼게 될까 두려워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남의 눈을 피하다가 말까지 어눌해지는… 그런 경험이 있으십니까?'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자는 서른을 갓 넘긴 벤처기업가이다. 아들뻘의 저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문제아였다. 집단행동을 극도로 싫어했다. 초등학교 땐 교실에 앉아 있는 게 고통스러워 산속으로 달아나거나 하수도 안으로 숨어들었다. 도망칠 수 없을 땐 사물함 안에 숨어 있기도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지 못한 원인은…바로 누군가 나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남이 쥐어준 일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숙제를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광적으로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었는데 그게 종이접기다. 종이접기같이 가슴 뛰는 게 아니라면 관심 밖이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때 학점은 A+와 F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건강까지 나빠져 이후 3년 반이나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다. 따돌림을 받게 된 이후부터는 더 멀어졌다.
외톨박이 소년의 마법 같은 '고독' 해소기
세상을 향한 문을 닫아걸고 종이접기에 몰두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된 저자는 '고독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친구들보다 크게 뒤처진다는 열등감이 생겼고….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무력감…그런 것들이 머릿속을 칭칭 감고 맴돌았다.'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고 홀로 천장을 바라보는 나날이 이어졌다. 대인기피증세는 점점 깊어져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수준에 이르렀다. '고맙습니다.'는 상대방에게 무언가 해달라고 할 때 하는 말이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면서 부탁하기만 할 때 처음에 다정했던 사람들도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경험을 했다. '나 따윈 없어져 버리는 게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하며 서서히 최악의 사고로 빠지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묘한 감정이입이 일어났다. 이제 나도 별수 없는 늙다리 직장인이 되고 말았다는 자괴감에 마음의 동굴 속에 들어가 웅크린 내 모습과 겹쳤다. 식사 약속도 될 수 있으면 잡지 않고 퇴근 후엔 방에 틀어박히는 찌질한 중년 남자 말이다. 연쇄반응이랄까? 미처 대비도 못 한 채 직장을 떠난 초라한 행색의 조기 은퇴자들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이것저것 다 포기하고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고달픈 젊은이들도 떠올랐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이를 용납하지 않고 획일적인 삶의 양식을 강요하는 학교와 직장, 사회로 공상이 줄달음쳤다. 급기야는 자살률 세계 최고의 숨 막히는 대한민국이 머리를 채웠다.

고독의 감옥에 갇혀 괴로움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저자가 딱 하나 놓지 않은 게 있었다. 자존감이다. '나 자신마저 싫어하게 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자신만은 나를 좋아하자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나를 견딜 수 있게 해줬던 것이 취미인 종이접기였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부모의 권유로 로봇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경쟁자들과 머리싸움을 하기보다는 '남들보다 시행착오를 더 많이 반복하는 전략'을 택해 우승을 차지한다. 이를 계기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존경하는 교사의 제자가 돼 선배들과 함께 새로운 개념의 전동 휠체어를 만드는데 온 힘을 쏟는다. 결국 '좋아하는 일은 잘하게 된다'는 속담을 증명해낸다. 턱을 타고 넘는 전동휠체어를 만들어 전국 과학경연대회에서 우승하고 일본대표로 세계대회에 출전해 3위에 입상한다. '슈퍼 고교생'이 됐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취재파일] 외톨박이 소년의 마법 같은 '고독' 해소기
그는 이때 몸이 불편해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사람들의 '고독'을 해소하는 일에 인생을 바치자고 결심한다. 치유의 열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고 보고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그토록 피하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 제 발로 동아리며 기숙사를 찾아 들어가고 야영과 캠프파이어를 경험할 수 있는 야외활동센터의 진행보조요원으로 일하며 마음의 빗장을 풀어 간다. 그에게 학교는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기 위해 다니면 되는' 곳이다. 그는 고등전문학교와 대학교를 다니다 만다. 그 대신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 매진한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고독한 사람을 대신해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아바타와 같은 분신로봇을 만든다.
[취재파일] 외톨박이 소년의 마법 같은 '고독' 해소기
소아과 무균실에 장기 입원한 소년이 첫 사용자다. 소년이 PC를 조작하면 자기 집에 있는 분신로봇이 작동한다. 분신로봇에 달린 센서와 카메라, 스피커 등을 통해 가족과 대화하고 야외활동도 즐긴다. 사용 후기는 '고맙습니다. 꼭 다른 사람에게도 사용하게 해주면 좋겠습니다.'였다. 저자는 회사를 차리면서 20년 이상 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을 비서로 채용한다. 비서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사무실에 놓인 분신로봇을 이용해 매일 출근한다. 서류를 작성하고 일정을 조정해 준다.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루게릭 환자들도 분신로봇 애용자가 됐다. 꼼짝 못 하고 천장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분신로봇의 도움으로 '순간 이동'을 늘 경험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했던 소년은 이제 분신로봇을 통해 많은 이들의 고독을 씻어주는 마법을 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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