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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저널리스트] '5·18이 북한군의 소행?'…기무사 사진첩에 숨겨진 그날의 진실

※ SBS 뉴스의 새로운 컨텐츠 '더 저널리스트(THE JOURNALIST)'. 이번 순서는 37년 동안 감춰졌던 국군기무사령부의 5·18 비공개 사진첩을 단독 취재해 세상에 공개한 기획취재부 장훈경 기자입니다. 'SBS 보도본부의 대표 목소리' 조지현 기자의 내레이션이 함께합니다. <편집자 주>
*그래픽
[SBS 장훈경 기자]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기사에 달리는 댓글을 통해서도 조작과 왜곡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급 공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개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거나 '5·18 유공자들이 가산점을 많이 받아서 공무원 자리를 싹쓸이한다'. '병역면제, 연금 등을 다 받는다' 같은 댓글이 작년 대선 기간에도 나왔어요. 요즘도 기사를 쓰면 '교도소를 습격한 폭도들을 군이 당연히 진압해야지', '정상적인 나라면 그런 행위에 민주화 운동이라는 말을 붙일 수가 있느냐' 등의 댓글이 달립니다."
■ 5·18 기무사 비공개 사진은 어떻게 극우 인사의 손에 들어갔을까

지난해 11월 7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 프레스센터에서는 5·18 진상규명 보고대회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극우 인사 지만원 씨는 사진들을 공개하며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한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국방부가 이미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5·18 단체와 시민들이 낸 관련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했지만 지 씨는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며 지금까지도 극우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내용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지 씨가 북한군 개입의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진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요? 지 씨가 가지고 있던 사진들의 출처는 아주 뜻밖이었습니다. 이른바 기무사로 불리는 국군 기무사령부는 1950년 창설된 국방부 직할 군 수사정보기관입니다. 그런데 SBS 기획취재부가 단독으로 입수한 기무사의 비공개 사진첩에서 지 씨가 증거라고 주장하던 사진들이 발견된 겁니다.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 관계자]
"처음 본 것 같은데요. 지만원이 자주 활용하는… 그러니까 사진을 감춰놓고 자기들만 보여주는 거네요. 기무사에서 어떻게 흘러나왔지?"

5·18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온 전문가들조차도 기무사 사진첩 속 사진들은 처음 봤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사진뿐만이 아닙니다. 지 씨는 안기부가 5·18 상황을 정리한 대외비 문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기무사 자료들이 극우 인사인 지 씨에게 어떻게 흘러 들어가게 된 걸까요?

■ 37년 동안 감춰졌던 사진첩…계엄군은 '선' 시민군은 '악'으로 규정했다

SBS 취재진이 입수한 기무사 사진첩은 전체 14권 중 6권입니다. 6권에 들어있는 사진만 해도 700장에 달합니다.

[장훈경 기자]
"원래 사진첩 전체 분량은 14권에 1659장입니다. 그중에서 6권에 들어있는 688장의 사진을 입수한 건데요. 5·18 민주화 운동 기간에 카메라를 들고 광주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사람은 기자거나 계엄군뿐이었습니다. 사진 기자와 군 측 관계자만 카메라를 들고 다닐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기무사는 관련 사진들을 다 압수했습니다."

기무사 사진첩 속에 담긴 계엄군과 시민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기무사 측이 사진에 직접 달아놓은 설명까지 함께 보면 사진의 시선이 계엄군을 '선', 시민군은 '폭도'로 규정하고 있다는 게 드러납니다.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동으로 뒤집어씌우려 했던 신군부의 시각이 기무사 사진첩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겁니다.

[장훈경 기자]
"사진 밑에다가 설명을 다 달아놨는데요. 기무사가 직접 단 설명입니다. 그런데 계엄군이 찍혀있는 사진에는 어린이가 등장합니다. 계엄군이 굉장히 평화로운 활동을 했기 때문에 어린이가 다가갈 정도였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찍은 사진인 거죠. 또 계엄군이 시가지를 정리하거나 사과 상자를 든 시민이 다가가는 사진처럼 긍정적인 모습이 강조돼 있습니다."

반면 시민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장훈경 기자]
"시민군은 사진 속에서 대부분 무기를 들고 저항하거나 투석하는 모습입니다. 당시에는 주유소에서는 기름을 무상으로 나눠주거나 주유권을 받고 5·18 민주화 운동이 끝나고 난 뒤 정산을 했는데요. 기무사 사진첩에는 시민 폭도들이 탈취해서 주유소 기름이 바닥났다는 식으로 왜곡된 설명이 담겨 있고 이런 식의 조작과 왜곡은 사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 기간이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간 광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계엄군의 최초 발포가 19일인데요. 당시 계엄군의 우발적인 발포에 고등학생 한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인 20일 밤 광주역에서 집단 발포가 있었습니다. 이때 계엄군 한 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는데 기무사 사진첩에는 계엄군 3명이 사망한 것으로 적혀 있는데요. 실제로 사진을 보면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만 군복을 입은 계엄군이고 나머지는 군복을 입지 않은 시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계엄군의 희생이 컸다고 왜곡을 한 거죠."

■ '무장한 폭도가 먼저 공격했다?'…시민이 무기를 들었던 그날의 진실

지금까지 5·18 진상규명 작업은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1988년 국회 청문회, 1995년 검찰 수사, 2005년 과거사진상규명위 조사 그리고 현재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조사가 10년에 걸쳐 진행되면서 '무장한 폭도가 먼저 공격했다'거나 '시민들이 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의혹은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습니다.

[장훈경 기자]
"가장 대표적인 조작과 왜곡은 '당시 누가 먼저 공격을 했느냐' 입니다. 계엄군 측에서는 자위권을 주장하며 시민들이 먼저 공격했고 그 공격에 대한 보호차원에서 군이 총을 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강조해왔습니다. 군 측은 경찰 기록에도 1980년 5월 21일 오전부터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계엄군을 공격했고 파출소의 무기고를 털었다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해왔죠. 그런데 최근 경찰은 이런 기록은 조작된 것이고 당시 시민들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한 시민이 투석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5월 18일에 찍힌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1995년 특검 조사에 따르면 바로 이날이 민주화운동 중 처음으로 희생자가 발생한 날입니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할 수 없었던 김경철 씨는 친구들과 점심식사 뒤 귀가하다 공수부대에 무차별 구타를 당했습니다. 적십자병원에 옮겨진 김 씨는 다음날인 19일 새벽 3시 끝내 숨졌습니다.

후두부 타박상에 의한 뇌출혈이 김 씨의 사망진단서에 적힌 직접 사인이었습니다. 갓 백일이 지난 딸이 있는 평범한 가장은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숨졌습니다. 이런 계엄군의 과잉 진압은 광주 금남로에 있던 동구청이 작성한 5·18 사태일지에도 나와 있습니다. 계엄군의 처음 총을 쏜 5월 19일과 21일 집단 발포 전까지 시민들은 무장하지 않았습니다. 군이 총을 쏜 것은 폭도가 아니라 비무장 상태의 시민이었던 겁니다.

[장훈경 기자]
"5·18 민주화 운동 기간 중 시민들이 무기를 들기 시작한 건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 이후입니다. 민간인들의 큰 희생이 있고 나서 무기를 든 건데 군 측은 그 전부터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다닌 것처럼 속인 겁니다. 1급 국가 보안 시설인 교도소를 시민들이 습격했고 죄수들을 광주에 풀어 혼란스럽게 만들려 했다는 군의 주장도 2007년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을 통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 사진 압수에 혈안 됐던 보안사 군인들…그들은 무엇을 감추고 싶었을까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는 5·18 민주화 운동 기간과 직후 광주의 참상을 보여줄 사진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보안부대는 언론사와 필름 현상소 곳곳을 돌며 사진과 필름을 압수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일을 지시했고 지시를 내린 사람은 무엇을 감추고 싶었던 걸까요?

[장훈경 기자]
"당시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가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사진을 다 가져갔습니다. 5·18 직후에도 언론사를 찾아가 사진을 가져갔고 광주 시내에 있는 필름 현상소까지 다 털어갔습니다. 당시 전남매일신문 사진기자였던 나경택 씨 집에는 5·18이 끝나고 보안사 중령이 찾아왔다고 해요. '전두환 장군에게 보고해야 되니까 사진 다 내놔라'라고 했는데 나 기자가 누군가 찾아올 것을 예상하고 화장실 천장에 필름을 숨겼다고 합니다."

[나경택 / 5·18 당시 전남매일신문 사진기자]
"보안대 중령이 와 가지고 내일 아침에 전두환 장군한테 보고를 하니까 사진을 다 빼주라는 거예요. 내가 미쳤다고 사진을 다 빼주겠습니까? 우리 집 천장에다가 숨겨놓은 건 놔두고 줬죠."

[장훈경 기자]
"현재 광주 민주화 운동 기록관에서 볼 수 있는 사진들은 당시 기자들이 몰래 숨겨왔던 사진입니다. 기무사 사진첩에는 외신 기자가 촬영한 사진도 스크랩돼 있습니다. 군이 촬영한 것뿐만 아니라 기자들이 찍은 사진도 많아요. 나경택 기자에게 요구한 것처럼 사진을 모아서 자기네 입맛에 맞는 것들만 골라 사진첩을 만든 겁니다."

■ 한 사람으로 향하는 5·18의 증언과 기록들…우리가 계속 보도해야 하는 이유

기무사 사진첩이 당시 정부의 입맛대로 왜곡됐고 감춰졌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많은 증언과 기록은 한 사람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 5월,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에 반성하고 유족의 아픔을 책임질 사람은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장훈경 기자]
"기무사 사진첩 자체가 37년 전인 1980년 5·18 직후에 만들어진 사진첩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첩은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당시 보안사령관은 전두환 씨입니다. 전두환 씨가 5·18과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걸 사진첩을 통해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겁니다. 이번 특조위를 통해 헬기 사격의 진상도 밝혀져야 하고 이후 특별법이 통과돼서 발포 명령자 등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합니다. 5·18 취재를 하면서 '37년이나 지난 일을 왜 이렇게 하느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라는 질문이 많습니다.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결국 사면된 전두환 씨는 37년이 지난 뒤에도 전혀 반성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회고록을 통해서도 5·18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죠. 전두환 씨를 비롯해 5·18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제대로 밝혀져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진상규명도 계속돼야 합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야 밝혀진 조작과 왜곡. 그리고 보이는 것 뒤에 숨겨졌던 진실들.

우리가 5·18을 끝까지 놓지 말고 보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장훈경 기자 / SBS 기획취재부
SBS 장훈경기자
2010년에 입사한 장훈경 기자는 부지런히 뛰어 땀 냄새가 밴 기사를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기획 : 정윤식 / 구성 : 안준석, 장아람 / 촬영 : 이용한, 주범 / 편집 : 김보희, 한수아 / 일러스트 : 정혜연 / 내용정리 : 김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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