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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력 출전' 포기…출전보다는 메달이 중요?

남자 봅슬레이 대표팀은 왜 자력 출전권을 포기했나?

최희진 기자 chnovel@sbs.co.kr

작성 2018.01.09 17:23 수정 2018.01.10 14:33 조회 재생수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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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자력 출전 포기…출전보다는 메달이 중요?
3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지구촌 대제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선수단도 동계올림픽 사상 역대 최대 규모의 선수단(7개 종목 150여명)이 출전할 예정입니다. 선수들은 평생 한 번 뿐인 기회가 될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그동안 온갖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며 피와 땀을 흘려왔습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올림픽 그것도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은 출전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더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봅슬레이 대표팀은 이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여 안타깝습니다.

봅슬레이 대표팀은 올 시즌 시작 전에 월드컵 마지막 대회인 8차 대회를 제외하고는 월드컵 나머지 1-7차 대회와 북아메리카컵(1-7차 대회), 유럽컵(독일 쾨닉세)까지 출전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대회에 꾸준히 출전해서 포인트를 쌓아야 합니다. 남자 봅슬레이는 2인승과 4인승 모두 올림픽에 국가 당 최대 3팀까지 출전할 수 있습니다.

1월 14일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리는 월드컵 7차 대회가 끝난 뒤 세계랭킹 기준으로 상위 3개 나라는 3장, 그 다음 6개 나라는 2장, 그리고 그 다음 5개 나라는 1장의 출전권을 획득합니다. 총 30개 팀이 올림픽에 출전하는데 나머지 4개 나라는 개최국 자동출전권(한국이 랭킹에 의해 자력으로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했을 때 1장 부여)과 자력으로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한 대륙(예를 들면 아프리카)에 분배합니다. 다른 나라들은 올림픽 출전권을 한 장이라도 더 획득하기 위해 대회 출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는 이와는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평창 올림픽에서 메달에 도전하는 2인승의 원윤종-서영우는 지난해 11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월드컵 3차 대회에 출전한 뒤 독일 쾨닉세로 건너가 유럽컵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이후 남은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전격 귀국했습니다. 평창 홈 트랙 적응 훈련에 집중하기로 계획을 변경한 것입니다. 원윤종이 잔부상에 시달리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봅슬레이연맹과 코칭스태프의 판단과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선수 외에 파일럿 김동현, 석영진을 비롯해 나머지 11명의 대표 선수들도 모두 함께 대회 출전을 포기하고 평창으로 돌아왔습니다.
원윤종, 석영진 선수 세계랭킹 하락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봅슬레이 대표팀의 세계 랭킹은 갈수록 하락했습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은 계속 대회에 출전해서 포인트를 쌓고 있는데, 우리 선수들은 대회에 출전하지 않아 포인트가 제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지난주 월드컵 6차 대회 전까지는 자력 출전권 2장(원윤종, 석영진)을 유지했는데, 6차 대회 이후 두 선수의 순위가 더 떨어지면서 이것이 모두 날아갔습니다. 지난주 원윤종은 세계랭킹 29위, 석영진은 30위였는데, 현재는 원윤종 35위, 석영진 36위로 하락한 것입니다.

소치 올림픽 때 4인승 푸시맨으로 출전했다 이후 파일럿으로 전향한 석영진은 올 시즌 북아메리카컵에서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의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지난해 11월부터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서 세계랭킹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또 한 명의 파일럿인 김동현의 세계랭킹은 53위까지 떨어졌습니다. 결국 우리 대표팀은 세계 랭킹에 관계없이 개최국에 부여되는 자동 출전권 1장만 갖게 됐습니다. 4년 전 소치 올림픽 때도 우리는 2인승과 4인승 모두 2팀씩 출전했는데, 정작 안방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한 팀씩 밖에 나갈 수 없게 된 겁니다.

한국 봅슬레이가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던 2010년 밴쿠버 대회 때는 선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올림픽 출전 티켓을 획득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용병들까지 푸시맨으로 긴급 수혈해서 북아메리카컵에 출전했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노력해서 충분히 획득할 수 있었던 자력 출전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평창 올림픽 출전만을 바라보고 땀 흘려온 많은 선수들의 꿈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출전 팀이 2인승과 4인승 모두 한 팀으로 줄어들면서 그만큼 평창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도 적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최희진 봅슬레이 취재파일이에 대해 봅슬레이연맹은 "지금은 여러 팀이 출전하는 것보다 메달 가능성이 큰 원윤종-서영우 조의 평창 홈 트랙 훈련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왜 나머지 선수들까지 대회 출전을 안 하고 귀국했느냐는 궁금증에는 "2인승과 4인승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계속 멤버를 바꿔가며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머지 선수들도 함께 평창에서 훈련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올림픽 출전권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2인승과 4인승 한 팀씩만 나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다른 나라가 출전권을 포기할 경우 우리가 이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아직 남아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그렇게 출전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출전권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가 포기하는 경우를 기대해야 하는 상황에 씁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출전보다 메달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착잡했습니다. 불모지에서 기적을 쓴 한국 봅슬레이가 성적에 대한 지나친 압박감 때문에 열정과 도전이라는 초심을 잃어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윤종 선수가 예전에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은 한국 봅슬레이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이 말에 저도 100% 공감하고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가 경험을 쌓고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한국 봅슬레이의 미래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은 현재 외국인 코치들을 영입해서 썰매 종목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올 시즌 월드컵에도 본격적으로 출전해서 현재 세계랭킹 기준으로 남자 봅슬레이 2인승에서 우리보다 많은 자력 출전권 2장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이제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반영되는 국제 대회는 이번 주말 월드컵 7차 대회(스위스 생모리츠)와 북아메리카컵 7,8차 대회(미국 레이크플래시드) 밖에 없습니다. 우리 남자 대표팀은 여전히 출전 계획이 없습니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 감독은 지난달 30일 월드컵 출전을 위해 출국하면서 봅슬레이 대표팀에 대한 질문에는 "평창에서 2인승과 4인승 모두 정말로 깜짝 놀랄 만큼의 성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습니다. 저 역시 우리 봅슬레이가 평창에서 정말 깜짝 놀랄 만큼의 성과를 보여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 또한 좋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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