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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0.5평 화장실 한편…그들이 쉬는 곳

[취재파일] 0.5평 화장실 한편…그들이 쉬는 곳
사람은 쉬지 않고 일할 수 없습니다. 일이 힘들수록, 잠깐의 휴식이 갖는 의미는 더 큽니다. 관리자와 상급자의 감시와 업무지시에서 완전히 벗어나, 몸을 보듬고 마음을 추스를 짬이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럴만한 편안하고 독립된 공간이 함께 필요합니다.

일은 고된데 제대로 된 휴게실이 없어 심지어 화장실 한편에서 잠시 숨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마저도 없어 종일 찬바람 속에서 업무가 끝나기를 버텨야 하는 일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왜 사람답게 쉴 수 있는 자리가 없을까요?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들의 쉼터를 물어물어 찾아가 봤습니다.

● "여기는 화장실이잖아요"

한 대학의 청소용역업체 직원을 만났습니다. 올해 환갑을 맞은 60살 여성 노동자는 화장실 한편의 작은 공간을 보여줬습니다. 화장실 맨 구석 칸, 청소도구들과 함께 잠시 머무는 이곳이 이 건물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문을 닫고 들어가 있으면, 사람이 있는지 청소도구만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화장실에 학생들이 드나들면서 마주치면 서로 불편하니, 문을 닫고 들어가 숨을 돌립니다. 언 손도 녹이고, 허리도 한번 펴보고, 가져온 간식이나 차로 요기를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추워서 감기도 자주 걸린다는 이 환갑의 노동자는 처량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청소노동자 휴게실, 쉼터
"좀 안 좋지요, 여기서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사람이 좀 처량하잖아요? 그래도 좀 쉴 데서 앉아 있는 거하고, 여기는 화장실이잖아요."

또 다른 노동자를 따라 다른 건물을 찾아가 봤더니 여기도 화장실 구석입니다. 창고 같은 문을 열자 차가운 시멘트로 칠한 공간이 드러납니다. 좁고 어둡고 습한 공간에는 퀴퀴한 냄새와 함께 삶의 고단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선으로 떨어지는 천장 위에는 학생들이 다니는 계단이 있습니다. 학기 중엔 사람이 다닐 때마다 머리 위에서 지진이 난다고 합니다. 벽돌과 건설 자재 위에 판자를 깔고 장판과 이불을 깔아 간이 침상을 만들었지만 한 사람이 다리 뻗고 눕기에도 역부족입니다.

옆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쉴 때라도 편히 쉬었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있다 보면 참…. '우리가 어떻게 살아서 왜 이렇게 됐나….' 참 한심하기도 하고, 학교에 원망스럽기도 하고."

간이로 만든 침상은 높이가 낮아 무릎이 거의 가슴팍에 닿을 듯 반쯤 쪼그려 앉게 됩니다. 마음마저 쪼그라드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잘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힘껏 살았는데도 안 따라주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나마라도 자식들한테 좀 덜 피해 주고 우리끼리 살아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에요 미화(노동자)들은."

대학에선 학생들이 쉬는 공간에서 같이 쉬라고 하지만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쉬는 것보다는 여기가 편하다고 합니다.

"우리, 나 자신이 처량하잖아요. 락스 냄새나는 옷을 입고, 그 냄새들을 학생한테….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몰래 없는 듯이 (지내요). 우리는 완전 유령이잖아요."

넓은 휴게공간이 다른 건물에 마련돼 있지만, 관리자는 담당한 건물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서 그림의 떡이라고 합니다. 관리소장은 "과연 그분들이 언제 가서 언제까지 쉬는지를 제가 일일이 체크는 못 하잖아요."라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바로 옆 화장실에서 나는 변기 물소리가 이 작은 휴게실 안으로 쏟아질 듯 가까이 들렸습니다.
청소노동자 휴게실, 쉼터
● 숨돌릴 곳 하나 없는 '허허벌판' 노동현장

이런 사정은 청소노동자뿐만이 아닙니다. 인천공항에 상주하는 항공사 기내관리인들은 따로 휴게실이 없이 탈의실을 함께 이용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밥도 먹는다고 합니다.

제조업이나 건설 현장도 열악한 곳이 많습니다. 소음과 분진, 기계 설비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쉴 수밖에 없다거나 당직 근무를 하며 계속 그런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노동현장의 여러 문제 제기를 받아 공론화하고 있는 '직장 갑질 119'에는 최근 이런 호소가 쏟아진다고 전했습니다.

그마저도 없어서 종일 찬바람 속에서 버틸 수밖에 없는 일터도 많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노상 주차장 주차관리원들은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면서 정해진 휴식 시간이 1분도 없습니다. 점심시간도 따로 없는 겁니다. 휴게 시간이 없다 보니 휴게 공간은 언감생심입니다.

음식 배달 종사자들의 경우에도 상당수가 휴게 공간이 아닌 거리에서 숨을 돌리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서울지역 음식배달 종사자 500명을 조사했는데, 일이 없는 대기 시간에 주차장 같은 곳에서 쉬는 사람이 21.3%, 이면도로 같은 길가에서 쉰다고 대답한 사람이 37.1%에 달했습니다. 음식 배달 대행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만 보면 이 두 가지 경우가 60%가 넘었습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나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들은 이런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한 채 빡빡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 휴식 장소 규정한 법령 없어…갈 길 먼 '쉴 곳 찾기'

적절한 휴식시간의 보장은 오히려 생산성을 높여준다고 합니다. 휴식시간을 근로기준법이 보장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 휴식시간을 어떤 공간에서 사용할지는 사업장마다 다른 환경에 재량으로 맡겨져 있습니다. 휴게공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휴게시간을 본래의 취지에 맞게 쾌적하고 자유롭게 사용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쉴 곳은 법이 얼마나 보장하고 있을까? 현행 법령상에는 어디에도 관련 조문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없습니다. 다만 하위법인 고용노동부령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79조에서 한 줄 찾을 수 있습니다.

<사업주는 근로자들이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조문을 살펴보면 그 범위와 내용이 모호하고 처벌 규정이 없어서 강제성이 따르는 법률도 아닙니다.

"사용자의 재량과 자유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법령을 좀 더 구체화하고 강행규정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용우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휴식권에 대한 사용자의 의식 변화도 필요합니다. 취재하면서 접한 사례 중에 휴게공간이 마련돼 있지만, 노동자들이 이용하기 곤란한 상황일 때도 많았습니다. 이용할 수 없게 눈치를 주거나, 현장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거나, 점심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통제하는 등의 경우였습니다.

인터뷰 중에 학교 직원이 와서 취재가 중단되기 전, 63살 대학 청소노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학교를 깨끗하게 하려 새벽부터 와서 일하는데. 우리 몇 사람 쉴 공간을 이렇게 못 해주나." 

(* 취재 과정에서 신정은 수습기자와 김하예슬, 박지운 스크립터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 화장실 바닥에 장판 깔고 휴식…쉴 곳 없는 노동자들 (2018.01.08 / 8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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